이달 3일, 상법개정안이 ‘3% 룰’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화를 포함한 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장치로 평가되지만, 산업계에선 경영 불확실성 우려가 강하게 제기된다. 특히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일수록 외부 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 전반의 긴장감이 감지된다. 반면 소수주주 권리 보호와 이사회의 투명성 제고라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SR타임스는 이번 상법개정안의 의미와 파장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와 산업계 반응을 시리즈로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상법개정안이 이달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픽사베이
▲상법개정안이 이달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픽사베이

"상법 개정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될 것"

오너기업 반복되는 내부거래 논란…대표 사례 '현대차·한화' 그룹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개정안이 이달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재계에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본회의 막판까지 줄다리기 했던 '3% 룰'은 그동안 제기돼 온 소수주주 권리 보호 미비와 대주주의 전횡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번 개정안은 상장회사의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회와 별도로 분리 선출하고,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사실상 기업 이사회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소수주주가 견제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11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상법 개정안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강화 내용이 빠지면서 3% 룰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는 여야 간 이견이 컸던 쟁점 조항을 제외함으로써, 최소한의 제도 개선이라도 우선 추진하자는 '절충안' 성격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재계는 3% 룰이 포함되는 것에 대해 '지배구조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규제'라고 반발해왔지만, 정치권은 기업의 책임경영과 시장 신뢰 회복이라는 대의명분을 우선시한 것으로 보인다. 

3% 룰은 법안 공포로부터 1년 간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이는 여야 협상 과정에서 기업이 제도 변화에 적응할 기간을 고려했다. 

사외이사 명칭 변경도 1년 간 유예를 두며, 전자 주총 의무화 또한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지만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는 공포 즉시 적용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개정은 투자자 보호뿐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 가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향후 집중투표제 등 추가 개정까지 이어진다면 한국 기업 전반의 밸류에이션 개선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오너기업 고질적인 내부거래에 책임 경영 강화 효과 전망
그동안 대기업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개정을 통해 소수주주 권익 보호와 기업의 책임 경영 기반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현대차, 롯데, 한화 등 일부 대기업 집단은 오너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계열사에 그룹 내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기업 가치를 부풀린 뒤, 이를 지배구조 개편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대표적 경영권 승계 사례로 현대차그룹이 꼽힌다. 정의선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글로비스는 수년간 그룹 계열사의 물류를 독점 수행하며 매출과 수익성을 크게 키웠고, 이는 결과적으로 정의선 회장의 자산 가치 상승으로 직결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18년 추진됐던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 간 분할합병안은 정의선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핵심 퍼즐로 평가됐지만, 외국인 투자자와 국민연금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화그룹의 사례도 유사하다.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김동관·김동원·김동선)은 IT 계열사 한화에스앤씨 지분을 보유한 상태에서 이후 2017년 에이치솔루션과 사업회사로 분할된 뒤, 한화에스엔씨는 한화시스템과 합병됐다. 

2021년 한화에너지는 에이치솔루션을 되려 흡수합병했고 이 과정에서 김동관 부회장(지분 50%)과 두 동생(각 25%)의 지분율은 변함없이 유지됐고, 세 형제는 비상장사인 한화에너지의 지분만으로 그룹 내 에너지 사업 전반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편인 지주회사는, 대주주의 사익편취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 리스크 때문에 다른 업종보다 더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할인율 축소로 인한 리레이팅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사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소송 리스크 증가, 경영권 공격 및 주주관여활동 확대, 주주 간 이견 발생 시 의사결정 지연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일상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하는 데 다소 차질을 빚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 상법 개정, 견제 장치 마련될까
이번 상법개정안은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신뢰 회복과 공정성 제고를 위한 첫 단추다. 그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온 지배주주 중심의 폐쇄적 경영구조와 소수주주 권리 침해 문제에 대해 제도적 보완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기존에는 최대주주가 이사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감사위원 선임도 좌지우지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내부감시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인해 소액주주들도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는 곧 회사 경영진의 회계투명성과 법적 책임성을 높이는 견제 수단이 된다.

시장에선 이번 개정이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긍정적인 신호를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장기 투자 성향이 강한 글로벌 연기금이나 기관투자자들은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여부를 주요 투자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상법 개정안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장기적인 우상향 흐름을 통해 투자자, 기업, 정부 등 모두가 선순환 구조 안에서 안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강화 내용이 제외된 것과 관련해서는 "다만 모든 법과 제도를 단번에 바꿔버리면 기업 입장에서는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새로운 법을 도입하기 전에 실제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사전에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입장의 기업 의견도 충분히 듣고, 애로사항도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며 "증시가 호황이 되고, 부동산 자금도 증시로 유입되는 흐름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그동안 이사회는 회사만을 위해서 일했지만, 상법개정안을 통해 특정 주주가 손해를 볼 수 있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동안 한국 주식이 기업의 경영 투명성 부족, 배당 미지급, 소액주주 무시, 회계 부정 등으로 실질적 가치가 없었다면 상법개정안 실행 이후부터는 주주 자본주의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내재가치가 생겨 주식이 제 값을 받는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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