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3일, 상법개정안이 ‘3% 룰’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화를 포함한 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장치로 평가되지만, 산업계에선 경영 불확실성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일수록 외부 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 전반의 긴장감이 감지된다. 반면 소수주주 권리 보호와 이사회의 투명성 제고라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SR타임스는 이번 상법개정안의 의미와 파장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와 산업계 반응을 시리즈로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상법개정안, 깜깜이 경영에서 견제의 시대로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개정안이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이유로 제도적 기반을 대폭 강화하면서, 기업과 주주 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사회 책임성과 경영 투명성이 제도화되며 그간 법적 분쟁으로 표출되던 지배구조 갈등이 점차 제도 내에서 조정되는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번 상법개정안 통과는 단순한 법률 개정을 넘어, 자본시장 내 권한 구조에 본질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깜깜이 경영'과 '이사회의 거수기화'로 대표되던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병폐가 공론화되면서, 투자자들은 더 이상 침묵하는 소수가 아니라 견제와 감시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상법개정안을 통해 그동안의 주주 소송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제도적으로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게 되면서, 소액주주들이 굳이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소송 아닌 제도로 풀릴까?…소송 사례 '웅진씽크빅'·'DB하이텍'
실제로 상법개정안 통과 이전까지만 해도 소액주주들은 기업과 갈등이 발생할 경우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형사 고소와 주주대표소송 등 실질적인 법적 대응에 나서는 사례가 많았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5월 말, 웅진그룹 계열사인 웅진씽크빅의 소액주주들이 윤석금 회장 등 오너 일가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형사 고소한 바 있다.
주주 측은 웅진씽크빅이 그룹의 프리드라이프 인수를 위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1,000억원 규모 영구채 발행에 보증인으로 참여한 점을 문제 삼았다. 실제 해당 보증은 특수관계인 간 거래임에도 제때 공시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할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웅진씽크빅 측은 "웅진씽크빅 주주들과 대화의 의지가 충분히 있다"며 "주주들이 요구하는 것들이 회사로 전달되면 검토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앞서 DB하이텍에서도 경영진 보수 문제와 물적분할 논란이 겹치며 소액주주들의 반발과 함께 법적 대응으로 확산된 사례가 있다.
2023년 말, 회사가 이미지센서·전력반도체 등 핵심 사업 부문의 물적분할을 검토한 사실이 알려지자, 시장에서는 향후 기업공개(IPO)를 통한 지배구조 재편 시도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분할 추진 여부에 대한 공시가 주주총회 한 달 전에야 이뤄지면서, 사전 설명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이후 지난해 12월, 일부 소수주주들은 김준기 창업주, 김남호 회장, 조기석 대표 등 주요 경영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요청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주주 측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지급된 약 238억원 규모의 보수가 성과와 무관하게 과도하게 책정됐고, 이사회가 이를 견제하지 못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상법에 따라 회사는 이 요청을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스스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응답해야 했지만, DB하이텍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주주들은 올해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직접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며 사측에 법적 책임을 묻고 나섰다. 그러나 DB하이텍은 물적분할은 실제로 추진된 바 없으며, 보수 지급 또한 내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졌다는 입장을 유지 중이다.
이처럼 상법개정안 통과 이전까지는 소액주주들이 직접 법적 대응에 나서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이번 개정을 계기로 기업들이 더욱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설명 책임을 제도적으로 요구받게 되면서, 앞으로는 불필요한 법적 분쟁이 줄고 주주와 기업 간 갈등이 제도 내에서 조정될 수 있는 여지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주주-기업간 신뢰 회복 기대감 높아져
이번 상법개정안 통과로 인해 소액주주들의 권리 행사가 강화되면서, 위에 언급한 사례처럼 기업을 상대로 한 법적 분쟁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기업 경영진의 판단 하나하나가 주주들의 법적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사회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변하거나 의사결정 지연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단기적 마찰을 넘어, 장기적으로 기업과 주주 간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상법 개정안 통과는)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기반강화로 이해 하고 있다"며 "일시적으로 소송이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경영진의 책임성과 투명성이 강화되면서 기업과 주주 간 신뢰는 더 견고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존에는 소액주주가 이사회 내 감시 기능에 실질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반면, 개정안 이후에는 감사위원 선임 구조가 달라지고, 지배주주 견제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면서 시장의 예측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또한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의 낮은 투명성과 지배구조 리스크를 이유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적용해 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제도 개편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의 기업 평판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근본 배경 중 하나는 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구조적 문제"라며 "지배주주가 30%가량의 지분만으로도 이사회를 장악한 뒤, 분할·합병·자산 이전 등 이른바 ‘터널링(tunneling)’ 방식으로 일반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사례가 간혹 발생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상법 개정안은 이러한 불균형 구조를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 장기적으로 한국 증시의 신뢰 회복과 외국인 투자 확대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