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3일 ‘3% 룰’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장치로 평가되지만, 업계에선 경영 불확실성 우려가 함께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일수록 ‘3% 룰’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점에서 재계 전반의 긴장감이 감지된다. 반면 소수주주 권리 보호와 이사회의 투명성 제고라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SR타임스는 이번 상법 개정안의 의미와 파장을 각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와 산업계 반응을 시리즈로 전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제한된 의결권, 변화 앞에 선 기업들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 최대주주 측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사회 장악을 기반으로 승계 전략을 짜왔던 재벌가 2~3세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특히 지분율이 높지 않음에도 내부 이사를 통한 실질적 경영권을 유지해온 일부 대기업들은 향후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결정적 제약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개정된 상법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가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에는 사내이사, 사외이사로 구분해 각각 3%씩 행사할 수 있었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합산 기준이 도입되면서 우호 지분 쪼개기를 통한 우회 전략도 봉쇄됐다.
◆ 지배구조 흔들리는 재벌들
이번 상법 개정으로 주주권한이 강화되면서, 복잡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해온 기업들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빙그레는 지난해 11월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두 달 만에 이를 철회했다.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유상증자를 통해 지배력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는데, 그룹 핵심 자산을 존속회사에 몰아주려는 구상이 사실상 오너 3세 승계를 위한 설계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부담이 커졌다. 특히 김호연 회장이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에 찬성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가중됐다. 개정된 상법에는 이사에 대한 주주의 손해배상 청구 근거가 포함돼 있어, 향후 법적 책임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이트진로는 오너 3세 박태영 부사장이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사인 하이트진로에 대한 직접 지분은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신, 박 부사장은 가족회사인 서영이앤티의 최대주주(지분율 58.44%)로서 지주회사 하이트진로홀딩스를 간접 지배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이트진로홀딩스는 하이트진로 지분 약 50%를 보유하고 있으며, 서영이앤티는 다시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주요 주주 중 하나로 기능한다. 이처럼 복수의 법인을 거친 지배구조는 외형상 ‘합법적 간접 지배’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축으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안에 따라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 박 부사장의 간접적 이사회 장악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하이트진로는 소액주주 비중이 높은 편이어서, 외부 주주의 주총 영향력이 이전보다 커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상법 개정의 영향권 안에 있다. 정의선 회장의 지배력 강화와 관련해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0.3%에 불과하며,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7.3%)을 합해도 7.6% 수준이다.
실질적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15%를 확보하려면 추가 지분 매입과 함께 2조원이 넘는 상속세 재원이 필요하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더욱이 현대모비스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의결권이 기존 14.3%에서 4.7%로 축소될 가능성이 커, 향후 지배력 행사에도 제약이 불가피하다.
롯데그룹 역시 복잡한 순환출자와 해외 법인을 활용한 간접 지배구조를 통해 총수 지배력을 유지해온 대표적인 사례다. 그룹의 실질적 지주사는 일본 롯데홀딩스로, 이 회사가 한국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호텔롯데를 지배하고, 다시 호텔롯데가 롯데지주와 주요 계열사에 영향력을 미치는 구조다.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일본 롯데홀딩스와의 특수관계를 통해 그룹 전반을 통제해 왔다.
그러나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 지주회사나 중간 지배 법인을 통한 우회적 영향력 행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상장 계열사 내 이사회 구성에서 외부 주주들의 견제력이 강화되면, 기존의 ‘보이지 않는 통제력’이 약화되며 지배구조 전반에 변화를 요구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이처럼 총수 일가가 복잡한 소유구조를 통해 지배력을 행사해온 기업들은, 외부 주주의 영향력이 커지는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상법개정안으로 그동안 기업을 지배하고 있던 소수 인제, 즉 주주들은 더이상 편법을 쓰지 못하게 돼 괴로워질 것"이라며 "승계라는 것이 세대에서 세대를 물려주는 일인만큼, 흔히 말하는 한국의 대기업 재벌 집단들은 반드시 또 편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연성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상법개정안 통과로)당장은 기업 입장에서 힘들 수 있겠지만, 그간 한국 주식이 저평가 된 원인 중 하나가 대기업 재벌들의 편법 등으로 주식시장의 투명성이 워낙 없었기 때문"며 "전체적으로 보면, 상법개정안 통과로 저평가됐던 기업 가치가 올라가고, 외국 자본들도 들어오게 되면 이번 개정안 통과는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회피에서 전환으로…기업 지배구조의 기로
이번 상법 개정이 기업들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지배구조 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다. 외부 주주의 견제력이 강화된 이상, 기존처럼 내부 이사와 특수관계인 중심의 이사회 구성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미 삼성이나 SK 등 일부 대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의식해 독립성이 높은 사외이사를 대거 영입하거나, 지배구조보고서를 통해 내부 통제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는 단순히 규제를 피하기 위한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와 투자 유치에도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물론 회색지대를 활용한 새로운 우회 전략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복수의 가족회사를 통해 지분을 분산하거나 비상장 회사를 활용해 의결권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재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규제가 한층 강화된 상황에서, 이 같은 시도가 시장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높다.
결국 이번 상법 개정은 오너 일가에게 단순한 '규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외부 견제를 피하려는 과거의 방식이 점차 힘을 잃어가는 가운데, 이제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지배구조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그동안 30% 지분을 갖고있던 지배주주가 (오너 승계 작업 등을 위해)합병을 진행시켜 7~80%를 보유한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편취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앞으로는 이사들이 회사는 물론, 주주들을 위해서도 일하게 되니 불합리한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기업에게도 승계 등 기업을 물려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며 "현재 상속세가 60%인데, 적정 수준으로 인하를 해주던지, 세금을 충실하게 낸 기업 승계자에 한해서 상속세를 인하해 준다던지 등의 제도적 보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