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랑봉투법, 기업에는 부담되는 것이 현실"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노랑봉투법'에 대해 '당연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 만큼 해당 법안이 빠른 시일 내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기업과 노조는 노랑봉투법을 두고 분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노랑봉투법을 두고 노동계에서는 '노동조합 활동권을 보호할 획기적 조치'라며 환영하는 반면, 경제계에서는 불법파업 조장 등 법안 악용 등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 등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노사 상생의 법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기업의 손과발이 묶일 수 있어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며 "기업의 현실도 감안한 균형 잡힌 노동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노랑봉투법, 왜 '노랑봉투'인가?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제3조를 개정한 법이다. '사용자' 개념을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하고, 노조의 쟁의행위로 손해가 발생해도 사용자에게 이를 엄격하게 증명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즉,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도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가 파업, 태업(일부러 천천히 일함), 피케팅(출입 방해 시위) 등을 통해 기업에 금전적 손해가 발생할 때 사용자(기업)가 손해 범위를 매우 엄격하게 증명해야만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랑봉투법에서 '노랑봉투'는 2009년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때 처음 나왔다. 당시 회사는 2,646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예고, 쌍용차 금속노조는 77일 동안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이후 회사는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법원은 손해배상 47억원을 일부 인정했다. 이로 인해 일부 조합원은 퇴직금, 급여, 통장 압류 등 실질적인 경제적 피해를 겪게 됐다.
당시 시민들이 "개인에게 수십억 원씩 물게 하는 건 너무하다"며 노조 간부들에게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전달한 것이 '노란봉투법'의 시초다. 기업이 노조에게 손배소를 남발하는 것을 막고, 노동자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후 민주노동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각 당에서 수차례 노랑봉투법을 발의했지만 윤석열 대통령 때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2차례 폐기된 바 있다.
올해 2월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단독으로 노조법 2·3조 개정법률안을 제출, 같은달 이재명 대통령(당시 후보)은 한국노총 간담회에서 "노랑봉투법을 당론으로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이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대법원 판례가 이미 인정하고 있다"며 "국제노동기구에서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당연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보호, 해외 사례 살펴보니
해외에서도 노란봉투법과 유사한 사례가 있다. 특히 노동자의 파업권 보호와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은 국제노동기구 기준을 반영해 여러 나라에서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다.
먼저 프랑스에서는 노조가 합법적 절차에 따라 파업을 할 경우, 사용자는 이에 따른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실제로 2010년 Air France 조종사 파업 때, 항공사 측은 하루 손실 1,500만 유로 이상의 손실이 났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다.
독일도 합법적 파업에 대해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는 불가능하다. 독일은 '기업의 경제적 손실보다 노동자의 단결권이 우선'이라는 원칙에 따라 파업이 공익을 심각하게 침해하거나 과도하면 위법이 될 수 있지만, 정상적인 범위 내의 파업에 대해서는 손해 발생 자체를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는 노동관계법(NLRA)에 따라 노동자가 파업할 권리가 있지만, 불법 파업이나 폭력적 행위가 있을 경우에는 손해배상이 가능하다.
국제노동기구는 파업권을 기본적 노동권으로 보고 있으며, 손해배상청구는 과도한 제재로 분류된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제87호, 제98호)을 국회에서 2021년 비준했지만, 여전히 ‘파업 손해배상’ 관행이 유지되고 있어 국제사회에서는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23년에는 국내 주요 노동단체들이 "한국 정부는 노동자들이 구금·금전적 손해를 입는 구조로 운영해 노동권을 억압하고 있다"며 국제노동기구 총회에 정식으로 고발한 바 있다.
◆ 노랑봉투법, 기업에겐 '하이 리스크'
경영계는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원청기업에게까지 노동쟁의 책임이 전가되는 구조로 해석될 수 있어 리스크가 크다고 우려한다.
특히 하도급 구조가 일반화된 제조업이나 물류업 등 산업 현장에서는 법적 책임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개정안은 노조 활동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사용자 측이 이를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입증하지 않으면 배상을 요구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쟁의행위 대응 수단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조치로, 사용자 입장에선 단체행동이 가져올 경영상 피해를 방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은 노사관계 등에 예기치 못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만큼, 기업 현장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고려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제까지 노랑봉투법이 법안을 통과하지 못했음에도, 과거 국내 판결을 보면 노조 권리 및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거나 기업 손배소 전략에 제동을 건 사례가 있다.
앞서 노랑봉투법이 추진 전인 2022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내하청 노동자 925명(당시 하청 근로자)이 '현대제철 노동자'임을 인정해달라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1심 승소한 적이 있다.
당시 현대제철은 하청노조의 통제센터 점거·파업에 대해 641명 대상, 246억1,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이들의 정규직성을 인정하며 제동을 걸었다.
2023년에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와 직접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음에도, 법원이 원청의 단체교섭 및 사용자 책임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
전국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 및 처우 개선 요구(주 5일 근무, 휴일·휴가 보장, 수수료 인상 등)를 제출했지만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이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맺고 있어, 원청(자사)과의 교섭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은 1심에서 "근로자의 노동3권 보호를 위해 형식적 계약 여부보다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어 항소심(2심)에서는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확정했다.
판결 직후 진경호 택배노조위원장은 "오늘의 판결은 '진짜 사장 나와라'며 7여 년을 넘게 외쳤던 택배 노동자들을 비롯한 특수고용직 노동자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절규와 외침이 옳았다는 것을, 그리고 노조법 2, 3조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이 법률에 반하는 행위였음을 법적으로 확인받은 역사적 판결"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조합원 1인당 2,000만원의 ‘통상임금 위로금’을 회사 측에 요구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산입해야 한다고 판결해 소송을 제기했던 현대차 조합원(2명)과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 현재 같은 쟁점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소송 당사자들에 대해서만 소급 적용했는다.
이에 노조는 소송을 제기했더라면 승소했을 조합원들에게도 위로금 또는 격려금 형태로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위로금만 약 8,200억원 규모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현대차 노사는 오는 18일 임단협 교섭을 시작할 예정이다. 특히 위로금 외에도 주 4.5일제와 정년 연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사항인 만큼 노사 간 입장 차이를 좁히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김기승 한국노동경제연구학회 회장은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의제는 헌법상 노동권 보장이라는 취지에는 부합하지만, 실제 경제 여건이나 산업계 수용성과는 충돌 가능성도 크다"며 "또 워라밸 중심의 노동정책 기조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단순한 근로시간 단축을 넘어서 '러닝 라이프' 또는 평생학습을 포함한 능동적 삶의 질 정책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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