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 ⓒ SR타임스
▲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 ⓒ SR타임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 삶을 조종하고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소설과 영화가 그 의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1984>는‘빅 브라더’에 감시당하고 통제되는 인간의 삶을 그리고 있다. <트루먼 쇼〉에서는 주인공 주변의 가족과 친구는 텔레비전 쇼를 위한 연기자이고, 직장과 살고 있는 마을은 거대하게 꾸민 스튜디오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꿈마저 침범 당한다. 이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되묻는다. 문학과 영화의 상상이지만 자신 있게 모두 허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누군가 내 삶을 침범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그 불안은 어떤 존재가 내 삶을 모두 조종하고 있다는 의심으로 연결된다. 그것이 점점 현실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듯, 현실에서도 곳곳에 설치된 CCTV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다. 가상세계에서도 음식의 맛을 볼 수 있고, 상대방의 모든 움직임을 직접 느낄 수 있는 4차원 영상시대다.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화면 속에 들어가 전투를 펼치는‘모션 컨트롤러 시대’는 이미 옛날 일이 됐다. 지금은 나의 감정까지 읽어내는‘이모션 컨트롤러 시대’이다. <인셉션>처럼 누군가 내 꿈속에 들어와 조작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해질 수 있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다른 사람에게 강탈당하는 〈본 아이덴티티〉나 〈언노운〉같은 영화들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이미 그런 세상이 온 건 아닌지.

사람은 50세가 넘으면 잠재의식으로 죽음을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죽는 꿈을 가끔 꾼다. 사형수가 되어 집행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상황을 맞는다. 죽을 죄를 지었다면야 마땅히 참회하며 최후를 맞이할 텐데, 그게 아니다.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도망가려 해도 소용없다. 공포에 떨며, 울부짖으며 사형을 당하는 순간, 깬다. 꿈이다.

꿈도 반복하면, 꿈속에서도 ‘이건 꿈’이란 자각을 갖게 된다. 그런데 누군가 옆에서 속삭인다. “지금 이게 꿈이라고 생각하지? 천만에”라고. 꿈속에서 꿈을 깨 본다. 정말 그의 말대로 꿈이 아닌 현실이다. 꿈이 아니니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구나 절망하며 발버둥치다 눈을 뜬다. 〈인셉션〉처럼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고, 꿈속의 상황을 누군가 조작하는 일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지만,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꿈까지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

<조정 팀>의 SF 소설가 필립 K. 딕은 아이작 아시모프처럼 외계인의 존재나 우주전쟁,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하지는 않는다. SF 명작으로 꼽히는 리틀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나 영화 〈토탈 리콜〉의 원작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등에서 그는 전쟁이나 오염으로 인간의 존재가 위협받고, 인간의 삶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이야기한다.

<조종팀〉도 마찬가지다. 조정국의 요원들이 주인공의 일과 사랑, 미래를 감시하며 그가 계획에서 벗어날 때마다 나타나 조종하고 통제한다. 자신들만의 비밀통로를 통해 공간이동을 하면서 인간의 행동을 마음대로 바꾸지만, 그들은 실수도 하고 인간적인 감정도 드러낸다.

조지 놀피 감독은 이 작품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보험회사 세일즈맨인 주인공 데이비드(맷 데이먼)를 앞날이 유망한 젊은 하원의원으로 설정하고, 무용수 엘리스(에밀리 블런트)를 등장시켜 일과 사랑사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시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이 자유의지의 산물임을 인식하고, 그 의지를 소중하게 생각할수록, 누군가 자신의 삶을 조종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만약 데이비드가 자유의지를 버리고 조정국의 계획을 따랐다면, 그는 영화의 주인공일 이유가 없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 인간의 진정한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 주려했다. “중요한 건 내가 누구냐는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딕은 소리친다.

작가 필립 K. 딕은 왜 누군가 인간의 미래까지 하나하나 계획하고 통제한다고 상상했을까. 일종의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불신이다. 사실 인간은 그동안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했다.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은 여전히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는 미숙한 존재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은 로봇이나 인형과 다름없다. 그래서 누군가 그것을 뺏으려 한다면 그가 외계인이든, 초능력을 가진 조정자든, 신이든, 사이비 교주든 데이비드처럼 용감히 맞서 지켜야만 한다. 삶은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만들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분노와 절망과 치욕에 빠뜨린 ‘최순실게이트’도 결국은 자유의지를 포기한 대통령과 사악한 ‘컨트롤러’와 그에 빌붙어 사리사욕만을 채우려한 하수인들의 짓이다. 이 어이없고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길은 하나다. 국민들에는 ‘자유 의지’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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