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된 지 3주가 된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 입법부터 논란이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행과정에서 혼란과 부작용이 계속되고 있다.

첫날부터 학생이 준 캔커피 하나 때문에 고발을 당하는 교수가 있고, 아예 이 법이 무서워 아무도 만나지 않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기업이 공익목적으로 만든 문화재단과 언론재단은 모든 사업을 중단했다. 식당은 3만원 이하의 메뉴를 부랴부랴 내놓고, 대학은 취업생들의 학점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쏟아지는 문의에 국민권익위원회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경찰과 검찰조차 어떤 사안에 법을 적용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모습에서 이 법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허술한지를 알게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은 믿으려 한다. 이 법이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줄여줄 것이라고. 당장 이러저런 식사대접과 선물이 줄어들고, 이 법을 핑계로 청탁을 거절할 수 있으니 그 기대가 마냥 헛된 희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법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도덕의 최소이고, 때문에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거나, 그 대상이 온당하지 못하면 오히려 정의와 선을 해치는 것이 된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무조건 존재 자체도 정당한 것은 아니다. 지금 분위기로는 허점투성이 모순투성이의 김영란법을 ‘악법’이라고 비판하고 부정하면, 우리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을 반대하는 것이 된다. 마치 광주민주화운동을 지나치게 과장, 편협하게 그린 영화를 비판하면 그 운동의 의미와 정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몰아버리는 것처럼.

헌법재판소의 합헌판결이 그런 분위기에 정당성을 주었고, 끝없는 검찰 간부와 그 출신 변호사와 권력층의 비리가 그 심리를 부추겼고, 언론인들조차 혀를 내두를 한 신문사 간부의 호화접대가 거들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이 법에 냉정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해야 할 언론이 자신들의 ‘자유’조차 포기하면서 입을 다물고, 겨우 한다는 것이 법 시행 이후의 풍경이나 스케치하고 있다.

자신이 대상자이기 때문에, 자칫 오해를 살까봐 이 법에 침묵해야 한다면, 누가 이 법이 가진 ‘악’과 ‘불합리’에 대해 말하겠는가. 이런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그 모습을 보라. 자신들이, 그것도 가장 부정부패, 청탁에 물들어 있고, 물들기 쉬운 자신들만 쏙 빼고는 제멋대로 엉성하게 만들어 놓고는 국민권익위에 법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스럽다고 질타를 하고 있다. 부정이 아닌 청탁은 어떤 것이고, 또 수수 금지 아닌 금품은 무엇인지 밝히란다. 그런 것도 생각 안 해보고 법을 만들었나?

그래놓고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봐도 납득이 안 되는 것까지 적용대상이 된다"며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다는 게 ‘김영란법’ 위반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국민권익위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먼저 들어야 할 소리를 누가 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국정감사에 국회의원들이 쏟아낸 이 법의 허점과 혼란, 애매모호함의 1차적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법이란 남용을 막기 위해, 그것으로 인한 억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 무엇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이 법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어이없는 것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여야 어느 의원도 자신들이 대상에 제외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다.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가장 기본적인 법으로부터의 특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국회가 ‘김영란법’을 놓고 국정감사를 하니,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지난달, 한국조사기자협회와 SR타임스가 제4회 대한민국신문논술대회를 공동으로 주최했다. 때마침 김영란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어 대학· 일반부의 주제가 ‘부정청탁금지법과 우리사회 부정부패 방지’였다.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 김재훈(경희중 교사)씨는 ‘청렴의 가치, 그 진정한 내면화를 위하여’에서 이 법의 본질적이고 치명적 한계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김영란법을 두고 부패척결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한 일이다. 김영란법은 부정부패 문제와 관련해 우리사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편리한 방식의 해결책이다… 법의 처벌을 두려워하며 파블로프의 개처럼 부정부패를 기피하는 사람에게 과연 우리가 내면화된 청렴의 가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도덕의 문제를, 그것도 지나치게 광범위하면서도 정작 그 도덕을 누구보다 엄격히 지켜야할 대상은 빼놓은 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는 한 그의 이런 주장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치 이 법만 지키면 도덕적으로 완전한 것처럼 여기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니까.

<주필ㆍ국민대 겸임교수ㆍ前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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