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현
지난해 겨울 국내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인턴’은 고령화 사회, 청년실업에 허덕이는 지금 우리 현실과 겹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인턴.‘회사나 기관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에 앞서 훈련을 받는 사람, 또는 그 과정’을 말한다. 한마디로 정식사원이 되기 위한 훈련생이다. 원래는 의사 등 극히 일부 직업에 국한되었던 것이 청년들과 은퇴자들의 실업문제가 부각되면서 취업전반으로 확대됐다.

무슨 제도든 처음부터 취지가 나쁜 것은 없다. 인턴 역시 조직에 적응하는 시간을 주고, 개인의 능력과 개성을 발견하고, 업무를 미리 익히도록 해 가능한 서로가 가장 적합한 인물과 직장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일도 배우고, 정식 취업의 기회도 얻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문제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제도가 목표로 하는 방향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우리의 인턴제도도 마찬가지다. 회사나 공공기관이 정말 본래의 목적으로 도입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억지춘향으로 받아들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인턴’의 여주인공인 온라인 쇼핑몰업체의 젊은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도 그랬다. 그래서 기업의 사회공헌 이미지를 위해 마지못해 채용한 인턴인 청년과 노인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냥 서너 달 가만히 앉아있게 하고 월급 몇 푼 줘서  내보내면 그만인 존재로 생각한다. 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은 꿈에도 없다.

이것이 미국의 기업들, 아니면 그녀만의 모습일까. 물론 ‘인턴’은 영화이기 때문에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영화처럼 행복하게 끝나지 않는다. 특히 우리의 현실은. 벌써 청년인턴 채용제도가 도입된 지 10년도 더 지났고, 이제는 대기업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줄스와 같은 생각과 태도를 가진 기업과 공공기관 CEO들이 수두룩하다.

공공기관들은 정부가 청년고용확대에 앞장서라고 다그치자 숫자만 늘리기 위해 잠시 채용했다가 내보내고, 은행과 대기업들 역시 인턴을 일시적인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의 지원금이 나오는 동안만 부려먹고 버리는 중소기업도 있다. 그 피해는 정규직의‘희망’이 좌절된 청년들이다. 인턴에 매달리느라 그들은 다른 취업 기회까지 박탈당하면서 ‘절망’에 빠져든다.

인턴은 높은 임금도, 편안한 근무도 바라지 않는다. 오로지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고 꿈이다. 그나마 희망적이라면 기업들이 그 꿈을 갈수록 이루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인턴의 정규직 전환비율은 70% 수준이다.

물론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인턴까지 다 채용하라고 할 수는 없다. 취지에도 안 맞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웬만한 정규직보다 훨씬 까다로운 지원 자격과 채용 절차, 청년실업률 12.5%까지 치솟은 현실을 반영하듯 높게는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감안하면 ‘시행착오’란 변명은 이제 구차하다. ‘인턴’이야말로 사실상 정규직으로 가는‘수습사원’이어야 한다.

기업들이 인턴채용을 점차 늘리고 하고 있다. 삼성, 현대, SK, 기아 등 대기업들도 벌써 올해 대졸신입사원(정규직)과 함께 인턴을 뽑았거나, 뽑고 있다. ‘인턴’이 취업난으로 신음하는 청년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금 부족하고 못마땅하더라도, 애정으로 가르치고 다듬고 채워서 자기 식구로 만들어보겠다는 것이 ‘인턴 채용’의 진정한 목적이 아닌가.
<주필ㆍ국민대 겸임교수ㆍ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guriq@naver.com>
 
▲ 영화 '인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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