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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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장인 정신이 깃든 마스터피스 뮤지컬 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1961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7년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공연 중 하나인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해 제34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명작이다.

이 작품을 리메이크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뉴욕 맨해튼 어퍼 웨스트 사이드(Upper West Side) 슬럼가를 배경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전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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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첫 번째 뮤지컬 넘버 'Prologue'의 휘파람 소리와 함께 버즈 아이 뷰로 링컨 공연 예술 센터(Lincoln Center)가 들어설 철거 지역 모습을 내려다보며 롱 테이크로 훑어 담아낸다.

20세기 초 미국 상류사회 주축인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는 같은 백인이지만 뒤늦게 이민 온 다른나라 유럽인들을 차별했다. 그중에도 '화이트 니거', '폴락'으로 불리며 차별당하던 폴란드인들은 영화 속에서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유대인도 떠난 슬럼가에 남아있는 마지막 백인 하층민으로 묘사된다.

아이리시 펍이 크리올 요리 식당으로 바뀐 것을 보여주듯 백인이 떠난 자리는 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에서 넘어온 히스패닉들이 차지한다. 슬럼가의 백인과 히스패닉은 주거지, 일자리 등을 놓고 반목하며 인종 갈등을 일으킨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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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의 동화된 폴란드인들과 달리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정체성을 잊지 않고 커뮤니티 안에서 뭉쳐 살아간다. 이런 부분은 특히 언어를 통해 그 정서가 전달된다. 영화에서는 푸에르토리코인들의 스페인어 대사에 의도적으로 번역된 한국어 자막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모르는 영어권 사용자들과 똑같이 한국 관객들도 푸에르토리코인들에게서 소통의 벽을 느끼도록 연출된다.

이런 갈등 속에서 갱단도 폴란드계 백인은 제트파, 푸에르토리코계 히스패닉은 샤크파로 나뉘어 서로의 영역을 놓고 다툼을 벌인다. 이런 싸움에 제트파의 리더 리프(마이크 파이스트)는 폭행죄를 짓고 가석방 중인 친구 토니(안셀 엘고트)를 끌어들이려 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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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는 리프와 함께 제트파를 만든 인물로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불량배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과거를 청산하고 성실하게 살기로 한 상태라 그 어떤 싸움에도 휘말리지 않으려 한다.

한편 경찰 슈랭크(코리 스톨)로 대표되는 백인 기득권은 물과 기름 같은 제트파와 샤크파 두 집단을 기니피그처럼 섞어 어울리게 하려는 사회 실험적인 댄스파티를 주선한다. 한창 정비사업 중인 슬럼가 지역의 말썽꾼들을 화해시켜보자는 목적이지만 한자리에 모인 제트파와 샤크파는 불협화음을 이루며 서로를 향한 으르렁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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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편한 자리에 친형제 같은 리프의 부탁을 받고 마지못해 참석한 토니. 그는 우연히 18세 히스패닉 소녀 마리아(레이첼 지글러)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든다.

금지된 사랑이 시작되는 이 순간은 원작 영화가 주변을 블러 필터로 지우고 두 사람만을 강조했던 연출을 계승해 발전시켰다. 무대 뒤 둘만의 공간에서 아나모픽 렌즈의 눈부신 플레어 효과에 둘러싸여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빠져드는 토니와 마리아. 이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은 제트파와 샤크파의 갈등 속에서 더 깊어져만 간다.

이 작품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원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 또한 엔드 크레딧에 나오는 'For Dad'에서 알 수 있듯 원작을 너무나 사랑했으며 아들인 자신에게 이 작품의 가치를 알려준 아버지에 대한 헌사도 함께 한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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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1961년 원작의 시대 배경, 플롯, 인물 등 큰 틀을 대부분 유지해 리메이크했다. 하지만 연출에는 있어서만큼은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왔던 호화로운 블록버스터의 미장센과 영화 철학을 담았다.

원작은 뮤지컬 공연을 필름에 옮겨 놓은 듯한 무대 세트, 연기 등 연극적 요소가 강조된 고전 작품이다. 이와 달리 이번 리메이크 작품은 생생한 현장감을 살린 장면들로 구성되어 영화가 가진 재현 예술의 특징을 잘 살려냈다.

대표적으로는 도로에 늘어선 멋진 유선형 올드카들과 그 시대 맨해튼 슬럼가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거리를 배경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배우들의 군무와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라이브 촬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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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뮤지컬 영화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인 군무에서는 단연 'The Dance at the Gym'와 'America' 시퀀스를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이 두 장면에 모두 등장하는 샤크파의 리더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와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 커플의 댄스 퍼포먼스는 최고의 뮤지컬 넘버와 함께 하며, 등장 순간만큼은 영화의 주인공 커플인 토니와 마리아의 존재감을 능가해버린다. 특히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해온 전문 뮤지컬 배우 아리아나 데보스가 신들린 듯 춤추는 장면의 퍼포먼스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Jet Song', 'Something's Coming', 'Maria'를 비롯해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뮤지컬 넘버인 'Balcony Scene (Tonight)'까지 모든 노래는 출연 배우들이 직접 가창했으며 인종에 맞춰 히스패닉 배우를 캐스팅해 원작보다 사실감과 디테일을 세밀하게 높였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원작의 아니타 역을 맡았던 리타 모레노는 오리지널 캐릭터 발렌티나 역으로 등장해 작품의 정통성을 이어준다. 이 명배우는 마리아와 사랑에 빠진 토니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조력자, 인종 갈등을 넘어선 화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롤모델 그리고 모든 사건을 지켜보는 증인으로 극 속에서 함께 한다.

한편 원작에서 토니를 돕는 애니바디는 남자들만 있는 갱단 제트파에 들어가는 게 소원인 톰보이 캐릭터였다.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논 바이너리 배우 아이리스 미네스가 그 역을 맡았다. 이로 인해 일부 중동 국가에서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상영이 제한됐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이번 작품은 디아스포라, 인종 갈등, 젠트리피케이션 등 당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점을 좀 더 세밀하게 다뤄 60여 년이 지난 현재도 현재진행 중인 현실을 되짚게 한다. 계층 갈등 문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눈먼 사랑이라는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는 현대에 와서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우아하면서도 매혹적인 선율 속에 흐르는 시대 불변의 명곡들, 배우들의 강렬하고 역동적인 퍼포먼스는 모든 단점을 잊게 한다.

특히 영화의 기술적 진보를 모두 담아 구현한 장인 정신이 깃든 세련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만의 연출력은 오프닝부터 클로징 크레딧까지 클래식하게 수미상관을 이룬다. 고전적인 뮤지컬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극장 관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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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원제: West Side Story)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안셀 엘고트, 레이첼 지글러, 아리아나 데보스, 데이비드 알바즈, 리타 모레노

◆ 제작: 이십세기 스튜디오

◆ 수입·배급: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 러닝 타임: 156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개봉일: 2022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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