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위 낮추기보다는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 반드시 필요"
"소리 지르고 울부짖는 연기하며 카타르시스 느껴"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국제경쟁 장편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작품상을 받은 바디 호러 영화 '어글리 시스터'는 오는 8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작품이다.
아름다움이 권력인 시대에 엘비라가 외모를 위해 그로테스크한 행위를 감행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 속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잔혹한 집착과 광기가 그려진다. 엘비라 역을 맡은 노르웨이 배우 겸 모델인 레아 미렌은 북유럽 Z세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녀는 아그네스의 의붓동생인 엘비라를 맡아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치면서, 관객에게 극한의 몰입감을 안겨준다. SR타임스는 이번 영화제에 참석한 레아 미렌 배우를 만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바디 호러 장르라서 강한 묘사와 표현이 필요한 캐릭터다. 준비 과정이 궁금하다
신체적으로, 메이크업 쪽으로 여러 가지 준비를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바디 호러 장르고, 표현 자체가 굉장히 익스트림하게 들어가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준비가 필요했죠. 그리고 제가 극 중에서 10대 캐릭터로 나오기 때문에 그 느낌을 살리려고 했죠. 고통스러운 장면이 많다 보니까, 신체적인 통증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서도 굉장히 신경을 썼어요. 그런 감각을 몸에 익히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였어요.
가장 중요했던 건 사실 메이크업이에요. VFX보다는 특수 분장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영화 들어가기 반년 전부터 토마스 폴드버그 특수 분장 아티스트와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과 함께 제 몸을 바디 스캔하고 전체 분장 설계를 준비했죠. 이런 걸 VFX로만 처리하면, 우리가 말하는 '불편한 골짜기'라고 하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고 불편한 느낌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점을 줄이기 위해 비교적 아날로그적으로 리얼하게 표현하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Q. 신데렐라 동화의 전복적 이야기다. 처음 대본을 읽었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처음에 대본을 보고 정말 충격받았어요. 이런 이야기는 처음 봤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고요. 그래서 더더욱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페미니스트로서 여성들이 자기 몸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대상화하는지에 대해 늘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거든요.
자기 몸을 스스로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그래서 정치적인 관점과 함께 예술 작업에도 이런 것들이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영화에는 여성 캐릭터는 완벽해야 한다거나 흠이 있으면 안 된다는 시선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젊은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담겨 있어요. 그런 비판 의식과 메시지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었어요.

Q. 신데렐라 원작에서 의붓자매를 악인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는 의붓자매인 주인공 엘비라가 원래는 다정하고 동정심이 많았지만, 아그네스에 대한 질투심으로 인해 변해가는 설정이다. 감정 변화 연기에 중점을 둔 지점이 있다면
굉장히 큰 변화죠. 그리고 연기하기에도 정말 어려웠어요. 처음 이 캐릭터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이 친구가 굉장히 순진한 상태예요. 약간 꿈꾸듯이 살아가는 느낌이랄까요. 저도 어렸을 땐 그런 꿈들을 꿨던 것 같아요.
사실 어릴 땐,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 몸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엘비라도 그랬었는데 신데렐라 같은 존재 아그네스와 자신을 비교하게 돼요. 그러면서 '나는 아름답지 않은 것인가?', '내 몸이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결국, 가부장적인 시선 아래에서, 내 모습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식의 자기 판단을 해요.
처음엔 자신을 모르고 그저 순수하게 살아가던 아이가, 비교당하면서 '내가 사랑받기 위해선 달라져야 한다', '행복하려면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 좌절과 분노가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방식이 되고,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로 발현되기도 해요. 순진했던 엘비라가 분노로 인해 변해가는 감정의 흐름과 그 과정을 잘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Q. '서브스턴스'를 연상할 수 있는 바디 호러 영화다. 문제의식 전달을 위해 더 많은 관객이 수용할 수 있는 수위 조절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이런 이야기는 정말 하기 어려운 것이죠. 여성의 몸이라든가, 페미니즘 같은 주제를 얘기할 때는 어떻게 보면 아직도 터부시하는 게 있죠. 그래서 저는 오히려, 여성에 대해 이렇게 익스트림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현실은 굉장히 잔혹하거든요.
사실 남자들도 비슷한 걸 겪어요. 특히 요즘엔 소셜미디어나 여러 콘텐츠에서 남성성이라는 걸 아주 극단적으로 강조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어요. 청소년 남성성 문제를 다룬 시리즈 '소년의 시간'도 있고요. 현실이 훨씬 더 잔인하다고 생각해요. 코를 부러뜨리고 눈썹을 꿰매고 살을 빼기 위해 촌충을 먹는 것도 17세기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해요. 촌충 같은 경우는 요즘에도 인터넷으로 구해서 살을 빼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더군요.
가부장적인 제도 안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고, 또 얼마나 잔혹한 현실을 겪고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현실 자체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에밀리 블리크펠트 감독과의 작업이 어땠나. 특별한 연기 디렉션이 있었나
에밀리 감독님이 이 작품의 스크립트를 구상하고 완성하는 데 거의 8년 정도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이 이야기 안에는 감독님의 개인적인 경험이 굉장히 많이 투영돼 있어요. 본인도 어렸을 때,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자기 몸에 대해 많은 불만을 느꼈고, 그런 경험들이 이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거죠.
감독님은 이 이야기를 함께하려면, 서로 같은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랑도 엘비라라는 캐릭터에 대해 테스트 촬영도 많이 해보고, 스크립트 리딩도 여러 번 했고요. 무엇보다 그냥 커피 마시면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에 대해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나 저나 장편 영화 첫 데뷔작이라서 우리에게 이 작품은 정말 큰 경험이었어요.
현장에서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고, 놀이하듯 해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엘비라 라는 인물의 핵심은, 사실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거든요. 어린아이 같은 감정이 중심에 있는 캐릭터라서,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연기했어요. 그래서 어떤 장면에서는 오버 플레이를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다운 플레이를 하기도 했죠. 감독님이 그런 부분의 디렉션을 조율해 주셨어요.
실제로 영화 촬영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워낙 많이 해둬서, 막상 세트장에서는 별다른 디렉션 없이 정말 편하게 호흡할 수 있었어요. 특히 연기 디렉션보다는, 그냥 제가 몰입해서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많이 내버려 두셨던 것 같아요.
바디 호러 파트는 특히 준비를 정말 많이 했었기 때문에, 감독님은 저에게 완전히 믿고 맡기셨어요. 어떤 장면에서는 제가 비명을 원래보다 2분 넘게 계속 지르고 있었는데, 그걸 끝까지 내버려두셨어요. 그 정도로 자유롭게 몰입해서 연기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어요.

Q. 아름다움에 관한 집착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본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가 있다면
아름다움은 외면이 아니라, 힐링, 자연에 대한 감사, 그리고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또 진짜 아름다움은 무용이나 예술, 움직임, 시 같은 데에도 담겨 있고요. 간단히 말하자면, 결국 영혼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외적으로 예쁜 모델이라고 해도, 사람이 못됐으면 순간적으로 어글리하게 보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진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어요. 이 영화 원제가 'Ugly Stepsister'인데 많은 분이 엘비라를 보고 전혀 추하지 않다고 말씀하세요.
사회가 엘비라에게 어글리하다는 이름을 붙인 거고 본인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신데렐라 이야기 속에 의붓자매에게 어글리함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도 그 이야기 구조 자체였죠. 이 영화를 통해서 못생겼다는 건 누가 정의하는가?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질문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 단어들이 갖는 위험한 함의에 대해서도요.
어글리함이란 개념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감독님과 이야기했고 문제의식을 담아 제목을 그렇게 지었죠.
Q. 엘비라처럼 외모로 인해 일어났던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면
일할 때는 외모 때문에 평가하거나 프로젝트를 못 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어릴 때는 있었어요. 8살 때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남자애가 와서 제가 털이 많다면서 원숭이 같다고 놀렸어요. 그 이후로 한여름에도 스웨터를 벗지 않았죠. 그리고 항상 제모했어요.
이제 더는 제모하지 않아요. 이것도 저에게는 일종의 정치적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왜 우리가 화장하고 제모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몸에 있는 그대로가 사실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성형수술도 자기 불안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봐요. 그리고 이런 것을 과연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해요.
Q. 아그네스, 알마, 레베카 역의 배우들과의 연기 앙상블이 중요했는데 현장에서는 어땠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아그네스와 알마 역의 배우들과는 촬영하면서 아주 친해졌어요. 사실 여성 감독이 만들고 여성 스태프가 많은 현장이라 안전하고 편하게 느꼈어요. 레베카 역의 배우분은 노르웨이 최고의 배우라서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영광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요. 숲에서 알마 배우랑 촬영하는 장면을 찍는데 뒤에 말 두 마리가 사랑을 나눠서 굉장히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웃음)

Q. 특별히 어려웠던 장면이 있었다면
촌충 장면은 기진맥진해지는 그런 장면이었어요. 근데 사실 재미있기도 했어요. 제가 원하는 만큼 소리 지르고, 울부짖고 이랬던 게 저한테 되게 카타르시스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 찍으면서 엘비라를 너무 사랑하게 됐어요. 그냥 엘비라 때문에 울었던 적이 진짜 많았어요. 안아주고 싶었어요. 마지막에 다 토해내고 완전히 공허해졌지만, 다 빠져나갔으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었지만, 정말 제가 좋아하는 신이죠.
Q. 질투, 분노, 절망의 감정 연기로 에너지 소모가 컸을 것 같다. 촬영 후에 정신적 충전은 어떻게 했나
사실 정말 힘들었어요. 모든 배우가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두 달 동안 하루에 거의 14시간씩 찍었어요. 그래서 완전히 잊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촬영 들어가기 전에 준비를 정말 많이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지점이 있었어요.
엘비라는 제가 너무 사랑하는 캐릭터지만, 동시에 나는 엘비라와 다르다고도 생각했어요. 엘비라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저는 제 자신을 너무 사랑하거든요. 그래서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던 것 같아요.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남자친구랑 이야기 나누고, 요가도 하고, TV도 보면서 저 자신으로 돌아올 방법들이 있었어요. 항상 저는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에게 부서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지금도 엘비라를 자주 떠올리지만, 그 캐릭터가 저를 삼켜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늘 있습니다.
Q. 앞으로 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지금 사실 노르웨이에서 몇 개 영화 프로젝트 이야기가 오가고 있긴 한데, 제작비 투자가 잘 안 되고 있어서요. 요즘 영화 산업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힘들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제 노르웨이 안에서만이 아니라, 노르웨이 밖에서 뭔가 할 기회가 있다면 찾아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