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동혁 감독의 작가주의적 색채가 강한 작품"
"한국 영화 더 많이 알릴 방법 고민"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전 세계에 유례없는 신드롬을 일으킨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시즌3를 공개하며 화려한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인간성이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만들 능력과 힘이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성기훈 역을 맡은 이정재는 집념과 의지를 가진 입체적인 인물의 섬세함을 연기해냈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이정재 배우를 만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오징어 게임'의 엔딩 그리고 기훈 캐릭터의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시청자분들 반응을 보면, 마지막 엔딩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엔딩 안이 많았고 그거에 대해서는 저도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만한 방향도 당연히 있었을 텐데, 지금의 엔딩을 선택했을 때 호불호가 갈릴 거라는 것도 감독님이 예측하고 계셨을 거예요.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황동혁 감독님이 이 프로젝트의 대미를 내가 직접 마무리 짓겠다는 결심이 정말 크셨던 것 같아요.
솔직히 이렇게 성공한 프로젝트라면 대부분 시즌5 이상까지 쭉 이어가잖아요. 그럼에도 이 작품의 완결 결정을 딱 내리셨다는 점에서 이분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작가구나 생각했죠.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던지고 싶은 주제가 있었던 것이죠. 많은 유혹과 고민이 있었을 텐데 완결 결단을 내리신 게, 전 솔직히 좀 놀라웠어요.
처음에는 시즌3 엔딩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어요. 시나리오 주실 때도 "그냥 한번 읽어봐"라고만 하셨기 때문에 전혀 예측을 못 했죠. 13화 전체를 읽고 나니까 이건 정말 작가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이구나 했어요.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이 매우 크신 분입니다. 그래서 비즈니스적으로 시즌을 이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과 철학으로 만드신거죠.
Q. 성기훈은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담은 캐릭터다. 시즌3에서는 딜레마의 극치로 치닫는 게임 속에 놓이는데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이게 한 캐릭터를 오래 하다 보니까, 그만큼 고민도 많아지고 에피소드도 많아지잖아요. 사실 총 22개의 에피소드 안에서 성기훈이라는 캐릭터가 계속 나오게 되고, 그 안에서 수많은 캐릭터와 다양한 사건,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 상황 속에서, 창작자가 원하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었죠.
그러면서도 이걸 어떻게 표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이 장면과 이 에피소드 그리고 이 시즌의 본질적인 목표는 뭘까? 생각을 계속하게 됐어요. 거의 5~6년 동안 해오다 보니까,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징어 게임'에는 워낙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고, 또 그런 캐릭터들의 죽음까지도 함께 그려지니까, 시나리오에 나와 있지 않은 영역까지도 자연스럽게 상상이 확장되더라고요.
기훈은 이 선택을 했는데,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기본적이고 1차원적인 생각에서 시작해서, 나중엔 '나는 죽을 때 어떤 식으로 죽는 게 가장 좋을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며 계속 확장됐던 것 같아요. 시즌1이 워낙 큰 성공을 했고,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기 때문에, 어떤 메시지와 재미를 드려야 만족하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연속이었어요.
인간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또 나의 양심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하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돼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감독님과도 많이 얘기를 나눴어요. 감독님은 연출적인 측면에서, 저는 연기자로서 감정 표현에 대한 부분에서요. 서로 그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Q. 시즌1에서의 캐릭터 매력을 시즌3까지 가져오지 못하지는 않았나 아쉬워하는 반응도 있는데
시즌1에서는 기훈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여러 감정을 표현하는 게 하나의 재미였다면, 시즌3에서는 오히려 더 다양한 캐릭터들의 감정과 상황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면서, 메시지나 재미도 그쪽을 통해 전달하는 구조로 시나리오가 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시즌1 때와는 달리, 시즌3로 넘어가면서부터는 기훈이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려는 노력과 또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우여곡절이 있잖아요.
또 자기가 반란을 일으켜서 실패했는데, 그걸 마치 대호(강하늘)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면서, 전가해버리잖아요. 그러면서 내가 대호를 죽이는 걸 정당화하기도 하고 또 좌절하기도 합니다. 기훈은 일종의 그물 같은 역할을 하면서 각 캐릭터들의 모습을 충분히 지켜보는, 그런 관찰자 역할을 하는 게 되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죠.
그 부분은 연출을 맡으신 황동혁 감독님의 선택이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더 다양한 캐릭터들의 애절한 사연이나, 피할 수 없는 선택 같은 것들을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구조가 된 거죠. 만약 기훈만이 계속 중심에 있었다면, 이야기의 다양성이 확보됐을까? 아니면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각각의 이야기를 조금씩 나눠 갖는 방식이 더 좋은 선택일까? 그런 고민이 감독님께 분명히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총 13개의 에피소드 안에서 더 다양한 시도를 하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오징어 게임이 본인에게 영향을 준 부분이 있다면
'오징어 게임'은 이제 제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이 됐죠. 너무나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오징어 게임'을 계기로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서 정말 많이 주목을 받게 됐잖아요. '오징어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한국 작품들을 해외 분들이 많이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고, 진짜 어떤 문이 확 열린 느낌이 있었는데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과 바람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지금 국내 영화 시장이 사실 너무 안타깝게 위축돼 있잖아요. 그래서 예전처럼 좀 더 활발해질 수는 없을지 그리고 해외에 한국 영화를 더 많이 알릴 방법은 없을지 요즘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Q. 최근 배우들의 개런티 문제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제작비가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있는데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제작비가 적절하냐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예전부터 있었어요. 방송 3사 시절에도 출연료나 제작비가 일정 선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게 선을 정해보자고 했던 적도 있었고, 그런 게 몇 년간 유지되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올라가는 일이 반복됐죠. 결국엔 다 같이 적정선을 잘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제들 때문에 문화 산업이 위축되거나 뒷걸음질 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전체 게임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이 있었다면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이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안전유리지만 깨질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2.5m 정도였는데, 체감상 그보다 더 높았던 것 같고요. '저게 과연 진짜 안 깨질까?'라는 의심은 항상 있었고, 그래서 뛸 때마다 조심스러웠죠. 긴장해서 발바닥에 땀이 많이 나니까 유리 위에서 실제로 몇 번 넘어지기도 했어요.
Q. 결국, 기훈은 영웅적이고 어려운 희생을 선택한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비양심적인 반대편 참가자들을 응원하고, 양심적인 선택을 한 성기훈을 바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글쎄요, 그런 반응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과연 지배적인 건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정말 다수의 의견인지, 아니면 그냥 일부 시청자분들이 재미 삼아 표현하신 건지는 조금 더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비난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성기훈의 양심적 선택을 응원해달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웃음)

Q. 전체 시즌에서 어떤 인물이 가장 인상 깊었나
저는 개인적으로는 상우(박해수)였습니다. 동네에서 제일 똑똑하고, 자랑스러운 친구이자 동생이었거든요. 그런 애가 어떻게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저런 선택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하게 됐을까 하고 안타까움이 훨씬 더 컸죠.
어떻게 보면 우리 일상 속에서도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인물이죠. 저 사람은 저렇게 안 해도 되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싶은 그런 친구들이 간혹 있잖아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마음 아픈데 그게 딱 상우였어요.
Q. 긴 세월 끝에 '오징어 게임'을 마무리한 소감은
촬영도 오래 했고, 그 과정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 사이에 추억도 많이 쌓였어요. 그래서 이제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해요. 특히 호흡도 잘 맞고 손발도 척척 맞는 스태프, 배우분들이랑 함께했던 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된다는 게 제일 아쉬운 부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크게 성공한 프로젝트를 통해서, 제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해봤다는 것도 정말 커요. 해외에서는 일을 이렇게 하는구나, '오징어 게임'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구나,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는 수많은 경험이 저한테는 가장 큰 의미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