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금융당국 “주주가치 제고 위한 상법개정안 도입해야”

재계 “경영권 침해 우려” vs 투자업계 “오너 리스크 손실이 더 커”

[SRT(에스알 타임스) 유수환 기자] 22대 국회 개원 후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서 상법 개정안 도입을 검토한 것에 대해 재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상법개정안 도입은 그동안 정치권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꾸준히 제기해 왔던 내용이다. 현재 상법안(382조 3항)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명시돼 있다.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상법상 이사의 선관의무 조항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보호’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재계는 상법개정안 도입 시 경영권이 흔들리거나 행동주의 펀드에 휘둘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굴지의 경제인 단체가 상법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다. 

반면 금융당국과 정치권은 “‘상법개장안’ 도입에 대해 해외 자본시장은 이미 적용돼 있다“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되지 않았거나 오너 리스크가 표면화된 기업일수록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 정치권·금융당국 상법개정안 도입 논의…재계 반발

상법개정안 도입은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포문을 열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일반주주 권익보호법(상법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총주주’를 추가해 이사에게 주주에 대한 보호 의무를 부여하고 이사 보수 정책에 대한 주주 승인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다.

예를 들어 분할 자회사의 상장으로 모회사의 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등 기업의 지배구조 조정 과정에서 이사의 행위가 회사에는 영향이 없지만, 일반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지배주주와 소수주주간 이해상충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상법개정안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4일 상법 개정 이슈 관련 출입기자단 브리핑에서 “회사법 영역에서는 지배주주 이외 소액주주 등 제3자 보호가 미흡하다”며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로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 투자자는 물론 국내 개인 투자자도 이 현상을 해소해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상법상 ‘회사’에 한정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넓히면서 그 부작용인 남소(소송 남용)를 막기 위해 배임죄 폐지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이 같은 입장에 반발하고 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영권 위축, 배임죄 처벌 등 소송 남발로 기업 경영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에서는 ‘상법개정안’이 도입되면 인수합병(M&A) 추진하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상장기업 153개사(코스피 75개사·코스닥 7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기업 절반 이상(52.9%)이 M&A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철회하겠다고 응답했다.

◆ “오너 리스크로 인한 기업 손실…주주행동주의 초래했다”

반면 상법개정안 도입이 대기업 오너들의 주주가치 훼손 행위를 제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여러 대기업들이 지배주주(혹은 오너일가)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사례는 왕왕 있어왔다. 

일례로 동원그룹은 지난 2022년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 합병 당시 두 기업의 지분 비율을 1대 3.8385530로 결정해 투자자로부터 반발을 샀다. 당시 시장에서는 김남정 회장의 승계를 위해 동원산업 가치를 저평가시켰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결국 동원그룹은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 비율을 기존 1대3.8385530에서 1대2.7023475로 변경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은 지난 2021년 9월 공시를 통해 보유하고 있던 광주신세계 지분 52.08%를 신세계에 매각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공시가 발표되자 광주신세계 주가는 15%까지 급락했다. 정 부회장이 지분 가치에 약 20%(400억원)에 달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2300억원을 거머쥔 것과는 반대로 소액주주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됐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강승부 대표는 ‘좋은기업 나쁜주식, 이상한 대주주’라는 저서를 통해 “오너 일가들은 자신들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주주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편취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히려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 문제가 있는 기업일수록 사모펀드의 타킷이 된 사례가 많다. 실제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는 ▲삼성물산 ▲한진칼 ▲DL그룹 ▲BYC ▲DB하이텍 ▲태광산업 등 오너 리스크가 불거진 기업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다만 지배주주나 오너일가에 부과되는 막대한 상속세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50%가 넘는 상속·증여세율은 재벌가에게도 부담이다. 한미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고 임성기 회장의 증여 주식에 대한 상속세가 촉매제로 작용했다. 유족들은 총 4,500억원 규모의 상속세 마련을 위해 주식담보대출이나 주식 조건부 매매를 해야 했다. 하지만 자금력에 한계에 부딪치자 OCI홀딩스를 우군으로 확보하는 과정에서 가족 간 갈등이 불거졌다.

이에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공정거래법이 강화되면서 오너 일가들의 이익을 위한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나 비상장 자회사를 활용한 자금 편취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결국 상장기업 오너들의 돌파구는 대출을 통해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주가가 쌀 경우가 아니라면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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