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 매너리즘에 빠져...할 수 있는 건 연기뿐이라 오래하고 싶어"

"애드리브 못 해...캐릭터 대사 자체로 완벽해지고 싶어"

"봉준호 감독과 식사하며 애티튜드에 감동해"

▲'데드맨' 김희애. ⓒ콘텐츠웨이브
▲'데드맨' 김희애. ⓒ콘텐츠웨이브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7일 개봉을 앞둔 영화 '데드맨'은 이름값으로 돈을 버는 일명 바지사장계의 에이스가 1,000억원 횡령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 후, 이름 하나로 얽힌 사람들과 빼앗긴 인생을 되찾기 위해 추적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퀸메이커', '윤희에게', '허스토리' 등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작품에 품격을 더해주는 베테랑 배우 김희애는 이번 작품에서 타고난 지략과 강단으로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컨설턴트 ‘심여사’ 역을 맡아 대체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며 희열을 느꼈다”는 소감을 전한 김희애 배우는 상대방을 압도하는 분위기와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무장한 새로운 얼굴을 영화 '데드맨'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SR타임스는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김희애 배우를 만나 이번 영화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데드맨’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감 말씀 부탁드린다.

좋은 시기에 공개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부끄러워서 제가 출연한 걸 잘 못 보는 편이에요. 배우는 자기 연기만 보잖아요. 지나가다 걸려서 보게 되면 왜 저렇게 했을까? 좀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많아지고 반성도 하고 그래요.

Q. 배우님의 디테일한 연기와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들이대지도 못하겠다고 조진웅 배우가 밝혔는데 이번 작품 연기에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으시다면.

전 오히려 조진웅 씨가 그랬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바지사장 얘기를 조사해서 5년 동안 공부하고 쓰신 것이지만, 허구의 세계랑 섞어서 쓰신 거기 때문에 시나리오 안에 있는 심여사의 캐릭터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Q. 신인 시절 인터뷰를 보면 감정에 몰입한 연기를 하셨을 때 짜릿했다고 하셨다. 이번 작품에서도 연기적 전율을 느낀 부분이 있으셨는지 궁금하다.

전율을 느끼는 연기는 막 토해내고 감정이 끝까지 가는 대사나 상황일 때 느껴요. 그런데 심여사는 이성적이고 삶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 그런 것과는 좀 다른 색깔의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부부의 세계’처럼 감정의 기복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런 걸 할 때죠. 심여사는 그런 캐릭터에 비해서 굉장히 이성적인 인물이에요.

영화에서 전율을 느낀 부분이 있다면 오프닝의 이만재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던 부분이죠. 지옥의 관에 들어갔던 사람을 구출하고 만나자마자 따귀를 때리고 이런 건 평상시에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라면 ‘데드맨’에서 그런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보는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겠죠.

Q. 평소의 성품과 연기의 격차가 너무 크신 것 같다. 냉철한 모습이 혹시 배우님에게 내재해 있으신지 궁금하다.

전혀 없어요. 그래서 명랑한 생활 대사도 하는, 저와 아주 비슷한 부분도 나올 수 있는 걸 해보고 싶어요. 대사 톤이나 분위기가 현실적이지 않고 자연적이지 않은 부류의 캐릭터를 자꾸 맡게 되는 것 같네요. “밥 먹었니?” 같은 대사를 좀 해보고 싶어요. (웃음)

또 반면에 심여사 캐릭터로 다른 옵션의 역할이 주어진다면 또 도전해보고 싶은 그런 욕망이랄까요? 숙제랄까요? 아이디어가 막 생각이 나요.

Q. 곧 공개될 시리즈 ‘돌풍’에서는 경제부총리 역할이다. ‘데드맨’에서 전문용어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두 캐릭터를 비교한다면 어느 쪽이 더 힘들었나.

아무래도 시리즈물이 대사량이 더 많죠. ‘데드맨’에서는 조진웅 씨 분량이 많았고 ‘돌풍’에서는 설경구 씨랑 저랑 반 나눠서 했어요. 제 일생에서 쓰지 않을 한국어인지 외국어인지 모를 정치 경제 용어를 쓰면서 연기했어요.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나중에 꼭 봐주세요. 근데 고생이라고 하면 좀 과분하긴 해요. 제가 복이 많아요. 그래서 두 작품 모두 행복하게 촬영했습니다.

Q. 하원준 감독님은 대본에 충실한 배우라고 밝혔다. 애드리브를 안 하시는 편인가.

전 그런 재주가 없어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서요. 순발력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못 해요. 배우로 발전하려면 자신을 버리고 최대한 그 역할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꾸 대사를 제 입맛에 맞게 바꾸면 제가 끌려 나오는 것밖에 안 되는 거죠. 캐릭터의 대사 속에 제가 흡수되고 싶어요. 제 원칙이 그렇다 보니 혀가 꼬여요. 그래서 그 대사 자체로 완벽해지고 싶죠.

Q. 시각적으로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셨다. 이번에는 컬러렌즈도 착용하셨다.

좋았어요. 더는 더 했으면 했어요. 완전히 제가 안 보였으면 좋겠더라고요. 제 눈이 라섹 수술도 겨우 할 정도로 약해서 애먹었어요. 근데 어차피 인간의 몸이라는 게 소모품인데 배우로서 쓰지 뭐 아껴서 뭐하겠어요.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데드맨' 김희애. ⓒ콘텐츠웨이브
▲'데드맨' 김희애. ⓒ콘텐츠웨이브

Q. 새로운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으신 것 같다.

모든 배우가 다 그렇죠. 어릴 때는 철이 없어서 이렇게 일을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일이 재미있지도 않았죠. 어떻게 운명적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하고 있고 그만두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요. 지금은 연기에 대한 생각이 더 커졌죠.

Q. 오래 연기할수록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을 텐데 반대로 열정이 생기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대 시절에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어요. 저는 연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그걸 안 하면 저는 뭐가 되겠어요? 정말 이것밖에 없어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최대한 오래 하고 싶어요.

Q.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시는 것 같다.

제가 하는 건 사실 관리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냥 행복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죠. 배우는 캐릭터로만 살아가다 보면 인기에 예민해지고 그 안에서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이 없는 채로 착각 속에서 붕 떠 있게 되는 건데 정신적으로 결핍이 생기는 거죠. 저의 일을 하고 제 인생을 인간으로서 살아나가는 게 배우로서의 삶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는,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작품을 하셨었다. 그래서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괴물’에서 안도 사쿠라 배우가 연기한 어머니 역할이 배우님과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고레에다 감독님께서는 한국 배우들과 협업하고 싶다고 밝히셨는데 혹시 해외감독님들과의 작품 계획은 없으신지 궁금하다. 

전혀 없어요. 프러포즈가 없어요. (웃음) 있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새로운 환경에서 왜 안 해보고 싶겠어요. 그 감독님께서 저를 알아주시려나요? 같이 할 수 있다면 영광이죠. (웃음) 같이 협업해보고 싶은 외국 감독님들은 너무 많아요. 

Q. 봉준호 감독님과 GV를 하셨다.

이렇게 언급하는 게 감독님께 누가 될까봐 조심스럽네요. 세계적인 감독님이 지도해주셔서 행복했어요. 같이 식사했는데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시구나 했어요. 가끔 자신이 유명해졌다고 착각하고 왜 저러나 싶은 행동을 하는 감독들도 보는데 좀 안타깝죠. 그런 분들은 세월이 지나면 다 사라져 있거든요. 정의는 이기는 거죠. (웃음) 반면 봉준호 감독님은 큰 상을 받으신 것과 더불어 애티튜드가 너무 멋지세요. 감동 받았어요. 저런 마인드를 갖고 계셔서 그런 결과물을 내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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