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언젠가 늙어...자기 일처럼 공감하길 바라”

“가미카제 특공대 = 국가 재정을 위한 죽음...풍자 대사 넣어”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심우진 기자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심우진 기자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오는 7일 개봉을 앞둔 파격적인 설정의 문제작 ‘플랜 75’는 '초고령 사회의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적으로 노인에게 죽음을 권한다'는 세계관을 갖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뉴욕 3대 아트 스쿨 중 한 곳인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졸업 후 독학으로 영상을 공부했으며 다수의 실험적인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창작자로 단편 '나이아가라'로 제67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되었으며,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플랜 75'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프로젝트 '10년'의 에피소드 하나인 동명의 단편 작품이었다. 이를 각색·확장하여 자신의 첫 장편 영화로 선보인 것.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마포구 한 북카페에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을 만나 영화 ‘플랜 75’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 영화를 구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작품의 포인트는 무엇인가.

2016년에 일본에서 발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일본의 카나가현에서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던 이전 직원이 19명을 살해한 잔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장애인은 필요 없다, 삶의 가치가 없다는 식의 진술을 했는데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생산성이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강렬한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 사건의 대상은 분명히 장애인분들이었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늙으면 고령자가 되기 때문에 (관객이) 자기 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공인 미치는 자립해 살아가려는 인물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필요 없습니다’라는 사회로부터의 메시지를 받게 되어 선택에 내몰립니다. 사회로부터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라는 것에 영화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Q. 작품을 연출하시면서 초고령화라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고민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일본의 경우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자기 책임론이 굉장히 강합니다. 정부 역시 스스로 해결해보다가 정 힘들면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식의 자세죠. 그러므로 불만과 불안이 커진 사회 구조가 형성되어 있어요. 이 화살이 정부가 아닌 고령자를 향하게 될 것에 대해 저는 굉장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고령자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자기 일로 받아들이는 그런 마음가짐이 먼저 필요하다고 봅니다.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심우진 기자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심우진 기자

Q. 극 중 일본인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왔다는 대사가 나온다.

일본에는 가미카제 특공대가 있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게 미덕인 시대가 분명히 있었으며, 자기희생은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했습니다. 

그것이 기저에 깔려 있으므로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정신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조금 견해를 달리해서 보면 ‘플랜 75’ 역시 국가 재정에 이바지하기 위해 죽는다는 형태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부분이죠. 그래서 그런 것을 풍자하기 위한 대사입니다.

Q. 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하게 되는데 기대하는 점이 있으시다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작년에 개봉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늦게 개봉하는 편인데요. 한국 관객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궁금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굉장히 유사한 부분이 많으니까요.

Q. 미국과 유럽의 반응은 어땠나.

세계 어느 나라나 고령화 문제는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제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일부 국가는 안락사를 합법화했죠. 안락사 합법화 후 발생하는 문제들을 영화 속에서 어느 정도 봤다고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Q.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한 ‘10년’ 속 단편으로 만들어진 이후 다시 장편으로 개발해낸 과정이 궁금하다.

원래는 처음부터 장편으로 구상한 영화였습니다. ‘10년’이라는 작품에 딱 적합한 것 같아 단편으로 먼저 만들었죠. 5명의 인물 중 1명의 이야기를 단편으로 만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장편화 과정 중 팬데믹이 발생했고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원래는 더 어두운 설정이었는데 현실 세계 곳곳에 죽음이 존재하는 가운데 제가 사람들의 불안감을 더 부추기는 영화를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장편 영화로 만들면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했고 마지막 부분을 많이 바꿨습니다.

Q. 주인공 미치 역으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 역을 맡았던 바이쇼 치에코 배우를 캐스팅했다. 

미치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궁지에 몰려 어려움을 겪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불쌍하거나 처참하게 그려지길 원하지는 않았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아름다움이 있는 캐릭터였으면 했죠.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이 캐릭터가 더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연기자로는 바이쇼 치에코 배우가 떠올랐습니다.

Q. 이 영화의 연출 목표는 무엇이었나.

자칫하면 멜로드라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제를 흐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감성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냉철한 톤으로 그려내려고 했습니다.

Q. 마리아라는 이주 노동자 캐릭터를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간병 노동자가 부족하다 보니 일본에서 이주 노동자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했습니다. 필리핀인으로 한 것은 그들이 가족관계 등에 끈끈한 연대를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부상조하는 문화가 과거 일본에도 존재했었는데 지금은 유대 관계가 굉장히 약해졌죠. 그래서 고립감이 존재하는 일본 사회와 대조적으로 그리기 위해 그렇게 캐릭터를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 일본인 캐릭터들은 맹목적으로 규범을 따르려는 인물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행동하는 패턴을 보이죠. 하지만 마리아는 자기 신념대로 행동합니다.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규범을 위반하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죠. 일본인과의 대조성도 강조되어 있습니다.

Q. 평범한 일반 국민인 약자들의 군상극이다. ‘플랜 75’를 주도하는 정부 관계자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일부러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할 때는 국가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볼 수 없어요. 물론 TV에 그들이 나오지만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에게 호소하면 좋을지 우리는 알 수가 없죠. 그런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불쾌감을 그려내기 위해서 그러한 인물들은 그려내지 않았습니다.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심우진 기자
▲'플랜 75' 하야카와 치에 감독. ⓒ심우진 기자

Q. 냉철한 톤이지만 미치와 요코의 관계는 따뜻하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 간의 관계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코나 히무로의 경우 그런 부분이 마비된 사람처럼 등장합니다. 그런 마음조차 움직이게끔 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고 고귀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Q. 취재 과정은 어땠나.

각본을 쓰면서 15명 정도의 60대에서 80대 여성들과 인터뷰를 했고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제 어머니가 81세의 고령이신데 혼자 생활하십니다. 어머니의 일상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할 수 있었죠.

Q.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담론을 불러일으켰으면 하시는지.

일본에서도 유명한 분들이 고령자,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젊은 관객들이 자기들이 사는 세상과 고령자의 세상은 완전 다르다고 생각했다면서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노인분들에게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한국에서도 청년과 고령자의 격차가 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차기 작품은 무엇인가.

다음 작품은 이 작품과는 완전히 다르게 어린이가 중심이 되는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 엔딩 장면이 인상적이다. 노래에 담긴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해는 저물지만 내일 다시 사과나무 아래서 만나요’라는 노래 가사인데요. 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오늘은 해가 지지만 내일은 다시 또 해가 뜰 것이며 나도 내일을 살아나갈 것이라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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