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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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예측 가능한 일시적 경영악화, 임금 미지급 적용 안 돼" 

[SRT(에스알 타임스) 최형호 기자]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제기한 6,300억원대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소송은 통상임금 소송 중에서 소급분 지급 기준을 대법원이 판단했다는 점에서 재계와 노동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아왔다.

이번 대법원 판단으로 인해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제기될 다른 통상임금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한진중공업 ▲현대오일뱅크 ▲현대제철 ▲현대로템 ▲한국GM, SK에너지 등 약 150개 회사들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 지급 기준에 대한 근거를 지금보단 보다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 셈이다. 

현대중공업 측도 이번 대법 판단에 대해 "견해 차이가 있다"며 "판결문을 받으면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까다로워진 '신의칙'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 근로자 A씨 등 1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2012년 소송 제기 이후 9년 만에 나온 대법원의 판단이다. 

현대중공업이 지급해야 할 4년 6개월(2009년 12월∼2014년 5월)치 통상임금 소급분은 최대 6,300억원대로 추정된다.

재판의 쟁점은 '신의성실의 원칙', 이른바 '신의칙'이다. 기준을 어디에 어떻게 뒀느냐에 따라 1·2심 판결이 좌지우지 된 적이 있어, 대법원은 이번 재판 신의칙 적용과 관련해 상당이 신중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1심은 신의칙을 부정해 노동자들의 손을 들었고, 2심에서는 신의칙이 적용돼 사측이 승소했다.

앞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법정수당과 퇴직금 등의 차액을 청구했다. 

통상임금이란 '회사가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줘야 하는 임금'을 뜻한다. 보통 월급으로 대표되며 지시간, 일급, 주급 역시 이에 해당된다. 이외에 직무수당처럼 회사가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

다만 통상임금 소급분을 줘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면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칙을 위반한 것이므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대법원은 현대중공업의 회사 경영 악화가 지속성을 지닌 것이 아닌 '일시적'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기업이 일시적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이런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추가임금 지급분을 두고 이어져 온 소송전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근로자들의 승리로 일단락된 것이다.

ⓒ연합뉴스TV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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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칙 인정하지 않은 판결…기업경영 불확실성 가중"

경영계는 이번 판단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로 예측하지 못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해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 우려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은 올해 3분기 누적 3,200억 원 적자를 기록하는 등 기업경영이 매우 어려웠다“면서 ”이번 판결에서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아 통상임금 관련 소모적인 논쟁과 소송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통상임금 소송이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사 간 형성된 신뢰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며 ”부가적으로 경영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통상임금 논란의 본질이 입법 미비에 있는 만큼 조속히 신의칙 적용 관련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이번 대법 판단에 기업이 막대한 규모의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에 유감을 표했다.  

경총은 "대법원은 기존의 신의칙 판단 기준을 더욱 좁게 해석해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예측을 했다면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신의칙을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또 "대법원이 해외의 경제상황 변화에 따른 영향을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판단한 것과 달리 오늘날 산업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며 ”코로나19 등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와 변화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급변하는 경제환경을 기업의 경영자가 예측해 경영악화를 대응해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라면서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단으로 산업현장에 혼란과 갈등만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임금 지급'이라는 기업의 중요한 의무를 법이 강제됐다는 점을 거론하며 "기업이 교훈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과)는 "통상임금은 기본급이 골격이 돼야 하고 나머지(상여금, 퇴직금 차액 등)는 제외돼야 것이 맞다"며 "기업마다 상황과 사정이 다른데 기본급 외 수당까지 통상임금으로 치면 해당 기업 뿐만 아니라 통상임금으로 소송 중인 기업들 또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일시적인 어려움 때문에 (통상임금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생각을 했다면 이번 판결을 통해 지급하는 쪽으로 다시 생각해야 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며 "임금은 다른 의미로 1순위 채권에 해당되는데, 기업 입장에선 가장 먼저 갚아야 할 채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임금은 지급하는 것인지, 회사 스스로 줄지 안 줄지 정해선 안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현대중공업과 노조의 통상임금 소송은 파기환송심의 판단이 나온 뒤에야 최종적으로 결론이 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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