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따라 사면 안전할까…수급 쏠림의 명암 ⓒ전지선 기자
▲국민연금 따라 사면 안전할까…수급 쏠림의 명암 ⓒ전지선 기자

수조 원 단위 비중 조정, 시장을 흔들다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국내 증시에서 이른바 '연금 따라 사기'가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새로운 매매 공략법처럼 자리 잡고 있다. 고금리의 장기화와 글로벌 변동성 확대 속에서 시장 방향성이 뚜렷하게 잡히지 않자, 막대한 자금을 장기적으로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수급을 '안전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특정 종목을 순매수하면 단기적으로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일부 종목은 '연기금 테마주'라는 이름까지 붙으며 개인들의 매수세가 붙는 모습도 나타난다. 

하지만 수익 실현을 목적으로 한 맹목적인 '따라 사기'와 국민연금의 매도에 따른 기업 가치 하락 가능성은 개인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며 또 다른 변동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1998년 설치 이후 누적 수익률은 약 6.82% 수준으로 집계됐으며, 올해(1~8월) 잠정 연간 수익률도 8%대(약 100조원)를 기록하는 등 장기 수익 창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연금의 성과는 특정 종목의 단기 판단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전체를 조정하는 장기 전략에서 나오는 만큼, 이들의 매매는 구조적으로 개인 투자자의 판단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매수·매도는 수천 개 종목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매매'라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의 해석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국민연금은 중기자산배분(MAP)에 따라 국내 주식·해외 주식·채권·대체투자 비중을 조절하며, 특정 종목을 사거나 파는 것은 대부분 벤치마크 대비 비중을 맞추기 위한 리밸런싱에 가깝다. 즉, 국민연금의 매수는 해당 기업의 실적 개선이나 주가 상승을 확신했다는 신호가 아니며 매도 역시 기업 펀더멘털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해석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특정 기업의 향후 주가 흐름을 예고하는 시그널처럼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시장에서도 국민연금 비중 조정이 미치는 영향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국민연금 규모는 올해 8월 말 기준 전체 기금 적립금 약 1,322조원 가운데 국내주식 약 196조원, 약 14.8%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워낙 크다 보니, 국내 주식 비중을 1%포인트만 조정해도 수조 원 규모의 매매가 발생하며, 이는 대형주 중심으로 단기 수급 왜곡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국민연금은 네이버 지분을 2020년 말 11.56%에서 2024년 3월 말 7.96%까지 줄이는 동안 네이버 주가는 같은 해 6월 25일까지 연초 대비 약 26% 하락했다. 반대로 LG이노텍 지분은 8.32%에서 10.02%로 늘렸고, 같은 기간 주가는 9% 상승해 연기금 수급에 따른 '희비 쌍곡선'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시장 과열 시 매도, 하락할 때는 매수하며 시장의 급등락이나 변동성을 완화해주는 긍정적인 역할도 기대할 수 있지만, 압도적인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기 때문에 시장 전체의 수급이나 투자 주체들의 투자심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의 투자는 대부분 시총이 크고 유동성이 풍부한 대형주 위주의 투자를 진행하며,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자산배분 목표에 따라 국내증시 혹은 주식의 목표 비중이나 한도를 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에 따라 종목의 펀더멘털과는 다른 방향의 매매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 포트 조절을 매수/매도 신호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시장상황에 따른 수급의 한축으로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면 국민연금 수급을 긍정적 신호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연기금의 매수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거래가 아니라 중장기 투자 성격이 강해, 일정 부분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국민연금이 일정 지분을 보유한 종목은 기초적인 기업가치가 검증됐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아, 이를 추가 상승 가능성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다른 증권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되는 종목은 최소한의 기업가치 신뢰는 확보됐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고, 실제로 이를 추가 상승 가능성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개인들도 있다"며 "연기금 수급은 단순한 매매 시그널이라기보다 시장 참여자들에게 심리적 안전판처럼 작용하는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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