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바이오 사업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든 삼성, LG, SK외에도 롯데, HD현대, CJ, GS, 오리온 등이 참여해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기업들의 이 같은 행보는 장기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우리나라의 신약 개발 역량을 키우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반면 기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새로운 플레이어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바이오 사업에 진출한 대기업들의 현황을 살펴보고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명해 봤다. <편집자주>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옥.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옥. ⓒ삼성바이오로직스

◆ 삼성·롯데, CDMO 주력…LG·SK, 신약개발 '박차'

[SRT(에스알 타임스) 방석현 기자]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삼성바이로직스의 실적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삼바로직스는 지난 9일 미국 소재 제약사와 12억9,464만달러(1조8,001억원) 규모의 의약품 위탁 생산(CMO)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창립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로 계약 기간은 2029년 12월31일까지다. 

이 계약으로 삼바로직스는 올해 누적 수주 금액 5조2,435억원을 기록했다. 8개월만에 전년도 수주 금액(5조4,035억원)에 육박한 상태다. 지난 1월 유럽 제약사와 맺은 2조원 규모 계약에 이은 초대형 수주 계약이기도 하다. 연결기준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4공장의 매출 기여 증대와 바이오시밀러 판매 호조 등에 힘입어 전년비 각각 23%, 46.7% 늘어난 2조 5,882억원, 9,623억원을 기록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삼바로직스의 올해 매출액은 4조원에 달하며 영업이익도 2조원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에 더해 올해 4월부터 가동되고 있는 18만 리터 규모의 5공장 매출이 본격적으로 반영될 2027년부터는 영업이익 추가 성장도 전망된다. 5공장 수주가 활발하게 진행됨에 따라 삼바로직스는 6공장 증설에 대한 내부 검토를 마치고 이사회 승인을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6공장은 2027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될 예정이며 향후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따라 해외 증설 여부도 검토할 예정이다. 삼바로직스 관계자는 “관세 영향에 따른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 후발 주자인 롯데바이오로직스(이하 롯바)도 가파른 성장이 예상된다. 롯바는 이달 초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바이오 기업과 의약품 CMO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은 면역 혁신 신약 과제의 임상3상과 상업화에 대한 프로젝트 수주다. 롯바는 파트너사의 임상 파이프라인 확대와 신약 개발에 기여하는 한편, 환자들의 혁신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데 핵심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향후 품목 허가 시 추가적인 협력 가능성도 모색할 계획이다. 고객사는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으며, 계약 기간은 2030년까지다. 이번 파트너십으로 글로벌 시장 내 상업생산 역량과 품질 경쟁력을 재입증하며, 미국 내 생산 거점이 지닌 지리적 이점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롯바는 미국 시러큐스 바이오 캠퍼스와 2027년 가동 예정인 한국 송도 바이오 캠퍼스를 단일 품질 시스템으로 운영하면서 미국 제약바이오 기업과의 협력 확대는 물론 안정적인 공급과 신속 유연한 수요를 대응해 나가고 있다. 지난 2022년 출범한 롯바는 출범 이후 2년여간 새 고객사 수주가 전무했었다. 다만 올해 미국 생산 거점을 기반으로 3건의 수주를 성사시키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했고 미국 현지 기업과 협력을 확대해 글로벌 고객 기반을 넓히며 부진을 딛고 반등을 노리고 있다.  

롯바 관계자는 “자사는 시러큐스 생산시설에서의 추가 수주와 함께 국내 CDMO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 내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글로벌시장에서 지리적 이점이 높다”고 말했다. 

LG, 신약 개발 R&D 투자 확대…SK바이오팜, 엑스코프리 ‘독보적’

▲서울 여의도 LG화학 사옥. ⓒLG화학
▲서울 여의도 LG화학 사옥. ⓒLG화학

LG와 SK는 일찌감치 신약개발에 뛰어들며 차별화 행보를 보이고 있다. LG는 LG화학 생명과학사업부문에서 제약바이오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LG화학의 지난해 전체 매출액 23조원 가운데 생명과학사업부문은 비중이 2.6%에 불과해 상대적인 주목도가 떨어진다. 다만 생명과학사업부문은 당뇨신약 '제미글로'를 비롯해 성장호르몬제 '유트로핀', 관절염주사제 '시노비안', 류머티스 관절염 치료제 '유셉트', 5가혼합백신 '유펜타', 소아마비 백신 '유폴리오', 신장암 치료제 '포티브다' 등 다수의 자체 개발 신약을 보유하고 있다.

LG화학은 향후에도 주요 제품의 시장지위 강화와 매출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글로벌 신약 개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R&D 투자 역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언맷니즈(미충족 의료 수요)가 존재해 성장성이 큰 항암 영역과 오랜 연구개발 경험을 보유한 당뇨·대사 영역에 집중하고, 기반기술을 통해 카테고리 리더십을 확보해 혁신 신약을 글로벌 시장에서 상업화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LG화학 관계자는 “자사는 두경부암 치료제 파이클라투주맙에 대한 임상3상과 암악액질 치료제 릴로그로톡(임상1상), 면역항암제 LB-LR1109 등의 R&D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다”며 “이는 모두 언맷니즈 치료제인 만큼 임상 진전에 따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은 최근 자체 개발한 뇌전증 혁신 신약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엑스코프리)의 적응증 확장을 위해 진행한 청소년 및 성인 일차성 전신 강직·간대발작(PGTC)에 대한 임상3상에서 긍정적인 탑라인 결과를 확보했다.

세노바메이트는 현재 성인 부분발작 환자를 대상으로 승인돼 처방되고 있다. 이번 임상 시험 결과를 기반으로 PGTC 환자 군으로 적응증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번 임상3상은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12개 국가 내 122개 임상시험 기관에서 만 12세 이상 PGTC 환자 169명을 대상으로 세노바메이트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했다. SK바이오팜은 12월 열리는 2025 미국뇌전증학회(AES)에서 임상 세부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PGTC 발작은 대표적인 전신 발작 유형으로, 발작 관련 부상과 뇌전증 돌연사(SUDEP) 위험을 높이는 심각한 발작 형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PGTC 발작에 대한 효능으로 승인받은 치료 옵션은 제한적이어서, 이번 임상 결과는 언맷니즈를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K바이오팜은 이번 성과를 토대로 미국식품의약국(FDA)에 PGTC 적응증 추가를 위한 허가 신청(sNDA) 절차를 추진할 예정이다.

삼바·롯바 등 가세…신약 개발 ‘속도전’ 예고

▲롯데바이오로직스 송도 공장. ⓒ롯데바이오로직스
▲롯데바이오로직스 송도 공장. ⓒ롯데바이오로직스

이처럼 삼성과 롯데가 CDMO에 힘쓰고 있는 반면 LG와 SK는 신약개발에 주력하며 바이오 사업에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다만 향후에는 대기업들의 신약 개발 투자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R&D 투자면에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과 글로벌 제약기업 간의 격차는 매우 크다. 2023년 기준 국내에서 R&D 투자 금액이 가장 높은 기업이 연간 약 4,000억원을 투자한 반면 글로벌 1위 기업은 약 17조원으로 4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국내 상장 제약바이오 기업의 2023년 총 R&D 투자액 역시 약 4조 7,000억조원으로 글로벌 1위 기업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첨단기술 측면에서는 국내 파이프라인 중 신규 모달리티(새 치료 접근법)의 비율이 32%인데 반해, 글로벌 기업의 신규 모달리티 비율은 48%로 양적 격차는 적으나, 자본력이나 임상경험이 열세다. AI 신약개발에서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글로벌 제약기업과 비교할 때 기술과 자금력, 그리고 협력에서도 격차가 커서 단기적으로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 확보가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3년간 통계를 보면 바이오헬스 분야에 매년 9,000억원에서 1조7,000억원이 투자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신약개발에 투입되는 금액은 20%이하로 추정된다. 장기간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신약개발의 특성상 단계별 위험관리가 필요하고, 성공확률이 매우 낮은 산업의 특성으로 인해 자본시장에서 외면받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다수 대기업들의 바이오 사업 진출은 신약개발에 긍정적으로 향후에는 전통 제약사와의 경쟁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삼바로직스나 롯바가 향후 신약개발에 적극 도전해 시장의 규모를 키울 것으로 기대된다.

장우순 제약바이오협회 미래비전 위원장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글로벌 신약개발은 여전히 많은 도전과제에 직면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신약에 대한 혁신가치 인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궁극적으로 이들 신약의 해외 진출에 많은 제약을 주고 있으며, 전통 제약회사들의 상당 수가 신약개발에 투자하기보다는 여전히 손쉬운 제네릭 경쟁을 통한 외형확대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 위원장은 이어 “이러한 과제들을 정부와 민간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슬기롭게 극복해야만 신약개발 선도국으로의 진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대기업들이 CDMO를 통해 자금을 확보한 이후 신약개발에 나서는 사업모델은 바이오 사업 경험이 없던 대기업 입장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보이며 오히려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대기업들이 신약 개발로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삼바로직스의 경우 삼바에피스의 분할을 통해 바이오시밀러에 집중된 사업 구조를 신약 개발로 확장시킬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조헌제 신약개발조합 전무는 “대기업 입장에선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영위하기 위해 혁신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대기업들이 바이오 사업에 첫 단추로 CDMO를 선택했지만 중장기 계획에는 필수적으로 신약개발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 전무는 이어 “앞으로는 대기업들이 독점권이 큰 퍼스트인클래스(계열내 최초) 개발과 선점에 열을 올리는 신약개발 경쟁시대가 본격화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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