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유통업계는 '가격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함축된 한 해를 보냈다. 지난 2022년에 이어 올해 계속된 원자재값 상승에 따라 유통업계는 품목을 가릴 것 없이 너도나도 제품가격 올리기에 나섰다. '안 오른게 없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서민 체감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한 가운데 정부의 가격인상 제재도 별 소용이 없는 한 해였다. 특히 경기침체 여파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경영난 극복을 위한 업계의 고심이 지속되고 있다. SR타임스가 올해 유통업계의 주요 이슈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SRT(에스알 타임스) 박현주 기자] 올해 유통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고물가·고금리 흐름이 이어지면서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물갈이 인사, 희망퇴직 권고 등 조직개편을 큰 폭으로 단행하고, 젊은 인재 기용을 통한 세대교체, 오너 3세의 실무 편입 등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인 움직임이 보다 가시화됐다.
◆"가격인상 한다, 안한다, 오락가락"
올해 정부의 가격인상 제재가 한층 강화되면서 유통업계는 '가격책정'에 매우 민감했다. 올해 원자재값 상승세가 지난해보다는 둔화되면서, 이를 반영해 가격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이러한 가운데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와 물가 상승 현상인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인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문제가 대두됐다. 제품가격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제품용량'을 줄이는 일부 업체들의 '꼼수' 가격인상이 원인이다.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총 9개 품목 중 37개 상품에서 용량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이같은 변칙적인 가격인상 등 가격감시를 보다 강화하겠다고 공표했다. 유통업체는 원자재뿐 아니라 인건비, 연구개발비 등 다른 비용 들도 상승해 제품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정부의 물가 상승 자제 동참 압박에 오뚜기, 풀무원, 롯데웰푸드 등 유통업체는 가격 인상 계획 철회를 선언하는 일도 발생했다.
◆물갈이 인사, 오너 3세 속속 경영 전면 등판
올해 유통 대기업들은 경영위기난을 타개하기 위해 큰 폭의 조직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신세계그룹은 대표이사의 약 40%를 교체했다. 이마트·이마트에브리데이·이마트24 등 오프라인 유통 사업군을 'One 대표체제'로 전환하고 한채양 조선호텔앤리조트 대표를 선임했다.
롯데그룹은 계열사 대표 14명을 교체했다. 60대 롯데 계열사 대표 8명이 퇴진했고 40대 대표 3명, 여성대표 3명이 됐다. 동시에 오너3세가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은 그룹의 신사업을 담당하는 업무에 배치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는 전무로 승진하면서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이자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직하게 됐다.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김정수 부회장 부부의 장남인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은 상무로 승진하면서 그룹의 미래식품개발, 콘텐츠 개발 등을 담당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전략부문장 겸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통합' 경영체제 구축
국내 대형 유통사는 핵심 부처를 중심으로 통합 경영체제로의 전환을 서둘렀다. 경영위기난 속에서 수익성과 성장가능성이 높은 그룹의 핵심 사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룹 지주사인 현대지에프홀딩스를 공식 출범했다. 앞으로 이 지주사가 그룹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투자, 리스크 관리, 인수·합병 등을 추진한다. CJ그룹 지주사 CJ는 전략기획 조직과 사업관리 조직을 통합하고, 재무전략실과 재무운영실은 재무실로 합쳤다.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에 맞춰 분리돼 있던 관리 부서, 계열사 담당 부서 등을 하나로 통합해 운영함으로써 사업 전개 시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 신세계그룹은 기존 전략실을 경영전략실로 개편했다. 신임 경영전략실장에는 임영록 신세계프라퍼티 사장이 임명됐으며, 기능 중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했다.
◆인수, 매각, 희망퇴직…격변 중인 이커머스
국내 이커머스 업계는 '격변'을 맞고 있다. 지난해부터 흑자전환으로 돌아선 쿠팡의 존재감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이커머스 업체들은 각각 인수, 매각, 희망퇴직 등을 통해 통폐합을 진행하고 있다. 싱가포르 이커머스 업체 큐텐은 지난해 티몬에 이어 올해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를 인수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했던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의 모기업 SK스퀘어는 11번가를 다시 사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상장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11번가가 본디 예정했던 상장 미션을 달성하지 못한 탓이다. 희망퇴직도 단행됐다. 올해 초 위메프가, 올해 말 11번가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또,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했던 G마켓, 옥션 등은 올해 적자를 기록했다. 아울러 중국 알리익스프레스가 초저가를 내세우며 국내에서 공세를 펴기 시작하면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어떻게 재편될 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온·오프라인 통합 가속에 "시장 경계 모호"…CJ올리브영, 과징금 철퇴 피해
유통업체들은 온·오프라인 통합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엔데믹 시대에 돌입하며 오프라인 활동이 늘자 기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몰·모바일앱을 연계해 소비자 유입을 높이도록 통합을 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온·오프라인 시장의 경계 기준이 무너지면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 지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오늘드림서비스' 등으로 온·오프라인 스토어 연계를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평가받던 CJ올리브영이 도마 위에 올랐다. CJ올리브영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 지위는 오프라인 시장일 때냐, 온·오프라인 시장일 때냐에 따라 달라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H&B(Health&Beauty) 시장에서 온·오프라인 스토어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CJ올리브영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지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공정위 판단으로 CJ올리브영은 당초 수천억에 이를 수도 있었던 과징금 철퇴를 피했다.

◆반값, 초저가, 초특가…PB 주목
고물가에 자체브랜드(PB)가 주목받고 있다. PB는 유통업체가 자체적으로 상품을 기획, 유통, 마케팅하기 때문에 중간유통과정에서 드는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어 제조업체 브랜드(NB)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특히 마트, 편의점의 PB상품이 이목을 끌었다. 마트 PB로는 롯데마트 '오늘좋은', 이마트 '피코크', 홈플러스 '시그니처', 농협 '하나로쿡' 등이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PB에다 시즌별 '반값' 할인행사를 병행했다. 편의점 업계는 고물가 기조를 반영해 저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초저가', '초특가'를 내걸었다. 올해 판매량이 높은 PB 상품은 각각 세븐일레븐 '세븐카페', CU '득템시리즈', 이마트24 '아임e 라면·커피·생수·우유', GS25 '맑은샘물·카페25·라면' 등이다.
◆유통업계, 테크 활용 늘어
유통업계 전반에서 테크 활용이 늘고 있다. 외식업계에서는 푸드테크 활용이 두드러진다. 이 푸드테크는 유통, 제조, 외식, 농업, 식품에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로봇, 식품공학 등을 접목한 것이다. 한 예로 식당 예약 등을 온라인을 통해 할 수 있고, 포스(단말기 시스템)에 기반한 스마트 오더 시스템 구축 등이다. 서빙·제조 로봇 활용도 늘고 있다. 이외에도 숙면을 돕는 슬립테크, 작물 재배에 첨단 기술을 도입한 스마트팜 등 다양한 테크들이 활용되고 있다.
◆멤버십(유료회원제) 경쟁 치열
유료회원제인 멤버십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고물가 탓에 멤버십 혜택을 받아서라도 지출을 줄이겠다는 고객들이 늘면서, 롯데, CJ,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주요 대형 유통업체들 뿐 아니라 쿠팡, 컬리 등 이커머스 업체들이 차별화된 멤버십 혜택을 늘려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멤버십의 성공 여부는 가입 후에도, 얼마나 자주 매장이나, 모바일앱, 온라인몰을 '재방문'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만큼 멤버십 혜택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해외로 뻗어나가는 'K라면'
유통업체들의 해외사업 확장이 가속화되고 있다. 포화상태인 내수시장보다 마진율이 높은 해외시장으로 눈 돌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해외시장에서 선방한 품목은 라면이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라면의 해외판매량이 늘었다. K문화 열풍을 타면서 매운 K라면이 전세계적으로 알려졌고, 현지 주요 유통업체 입점을 통해 유통망을 확대하고 공장증설에 힘쓰면서 해외시장에서 '가성비' 식품으로 자리매김한 덕분이다. 이같은 성장세에 발맞춰 농심은 2025년까지 미국 제3공장 증설할 계획이다. 오뚜기는 앞으로 베트남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방침이다. 삼양식품은 미국·중국법인을 중심으로 불닭볶음면 생산·입점을 확대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 '헬스케어'
국내 유통기업들이 헬스케어를 미래 먹거리로 삼고 사업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건강·면역 관리에 대해 관심이 늘어서다. 헬스케어는 질병예방 등 건강관리과정 전반을 포함하고 식품·의료·스포츠 분야 등 다양한 산업이 IT 분야의 첨단기술과 융합되기 때문에, 그 수요와 시장이 매우 광범위하다. 산업이 이제 부각되는 만큼 각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 신사업으로 삼고 사활을 걸고 있다. 국내 주요 유통사들은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 등 헬스케어 플랫폼 개발 및 치료제, 백신, 마이크로바이옴, 유산균 등 고기능성 제품 개발, 건강기능성분 연구 등을 통해 헬스케어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