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RT(에스알 타임스) 유안나 기자] 금리 하락과 물가 상승이 맞물리면서 시중 자금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주요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한 달 만에 20조원 넘게 줄었고, 일부 자금은 증시와 부동산 등 투자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은행권은 이에 대응해 고금리 예·적금과 증권계좌 연계형 상품 등 ‘예테크족(예금+재테크)’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대기성 자금 감소…요구불예금 20조원 이동
지난달 은행권의 ‘투자 대기성 자금’인 요구불예금이 20조원 넘게 급감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5대(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요구불(수시입출금식)예금 잔액은 10월 말 기준 647조8,564억원으로 전월(669조7,238억원)보다 21조8,674억원 줄었다. 9월만 하더라도 전월 대비 26조원 가량 증가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흐름이다.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워 언제든 되찾을 수 자금으로, 만기 예금이 종료된 뒤 정기 예·적금으로 재예치되지 않고 머무는 ‘대기성 자금’ 성격을 갖는다. 최근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증시와 부동산 등 투자 시장으로 이동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부의 6·27, 10·15 등 강력한 대출 규제로 부동산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서, 가계 자금이 주식 등 다른 투자처로 향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정기예금의 잔액 변동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예금금리 하락과 고물가가 겹치면서 실질금리가 제로(0) 수준으로 떨어져 예금의 매력이 낮아지고 있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수치로, 은행에 돈을 맡겨도 실제 이자 이익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2.4%)은 1년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금리(단리) 2.1%, 우대 금리를 적용해도 2.6~2.7% 수준이다. 자유적립식 적금(단리·12개월) 금리는 1.5~2.95%를 나타냈다. 상대적으로 이자가 높은 79개 저축은행의 1년 만기 평균 예금금리(2.67%)와도 큰 차이가 없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정기예금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금리·통합형 상품으로 ‘예테크족’ 공략
금리 인하로 ‘이자 0.1%포인트’에도 민감해진 소비자가 늘면서, 은행권은 안전하게 목돈을 굴리려는 ‘예테크족’을 겨냥해 고금리 예·적금과 증권계좌 연계형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6월 앱 우리WON뱅킹 내에서 주식 거래가 가능한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연계 서비스를 도입했다. 별도의 증권 앱 설치 주식 계좌 개설, 매매, 잔고 및 수익률 확인이 가능하며, 오는 12월에는 해외주식 거래 기능도 추가될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급여 관리와 투자를 함께 할 수 있는 ‘모두 다 하나통장’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증권계좌로 자금을 별도 이체할 필요 없이 하나은행 계좌 잔액으로 바로 주식 거래가 가능한 파킹통장형 입출금상품으로, 국내·해외 주식 거래를 모두 지원한다.
우리은행이 삼성전자와 협업해 선보인 ‘삼성월렛 머니·포인트’ 연계 예·적금 상품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삼성월렛머니 우리 통장’은 200만원 한도 내 기본금리는 연 0.1%에 각종 우대금리를 더해 최고 연 3.5% 금리를 제공한다. 자유적립식 ‘삼성월렛머니 우리 적금’은 기본금리는 연 2.5%에 우대 조건 충족 시 최고 연 7.5%의 금리를 받을 수 있다. 해당 서비스는 출시 3주 만에 가입자 50만명을 돌파했다.
IBK기업은행은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지급하는 파킹통장 ‘IBK든든한통장’(최고 연 3.1%)을 출시했다. 기본금리는 기본 연 0.1%이며, 급여·연금 수급 또는 최초거래·최근 6개월 수신평잔이 없는 고객은 우대금리를 더해 최고 연 3.1%를 받을 수 있다.
NH농협은행은 ‘e-뱅킹’ 예금 출시 25주년을 기념해 최고 연 7.1% 금리를 제공하는 ‘NH대박7적금’을 내놨다. 이 상품은 11월 12일 오전 9시부터 선착순 3만좌 한도로 판매되며, 월 최대 3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농협은행 첫 거래 고객은 3.8%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으며, 최근 6개월간 예·적금 미보유, 급여 실적, 비대면 가입 등 조건을 충족하면 최고 연 7.1%(기본+우대금리, 세전)가 적용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 하락으로 은행 예금상품 수요가 둔화되고, 가계대출 규제로 대출 이용도 위축되면서 요구불예금 증가세가 둔화되는 흐름”이라며 “연령대와 투자 목적에 따라 다양한 고객 수요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