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코스피가 4,000선을 넘었다. 숫자만 보면 잔치를 벌여도 될 분위기다. 하지만 정작 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다수의 투자자들의 체감은 반대다. 계좌는 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빠졌다는 하소연도 적지 않다. 지수는 화려하지만 시장은 썰렁하다는 말도 나온다.
한국거래소 통계를 보면 이 괴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지난 6월 코스피가 3,000선을 회복한 이후 4개월 동안 주가가 오른 종목은 약 1,100개에 불과했지만, 하락한 종목은 1,500개가 넘었다. 지수가 약 30% 상승한 같은 기간 동안 상승 종목보다 하락 종목이 더 많은 날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17일에는 하락 종목이 1,900개를 넘어서면서 사실상 '시장 역주행이 연출됐다.
이른바 '빈익빈 랠리'라는 말은 표면만 본 표현이다. 시장의 흐름은 이보다 훨씬 구조적이다. 최근 자금 흐름을 보면 반도체가 사실상 지수를 단독 견인하고 있다.
반면 콘텐츠, 엔터테인먼트, 건설, 항공 업종에서는 주요 종목 다수가 두 자릿수 조정을 받았다. K-콘텐츠지수는 오히려 하락했고, GS건설·현대건설은 구조조정과 실적 불확실성에 발목이 잡혔다. 진에어·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운송업종도 경기 회복 기대와 수익성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 못했다. 지수는 상승했지만, 온기는 확산되지 않았다.
우리는 '왜 매번 좁은 상승만 반복하게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주도 섹터와 주도 기업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시장은 주도권의 확장성이 없다.
최근 삼성전자가 10만원 선을 돌파하고 SK하이닉스가 시가총액 400조 원을 넘어선 것은 이러한 '편중된 상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수는 반도체 양대 기업의 힘으로 끌어올려졌지만, 이 상승의 에너지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새로 등장해 시장을 이끌 기업이 적고, 기존 기업들은 이익을 주주와 적극적으로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상장사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올리기보다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쓰기도 한다.
자본시장이 다시 한 단계 커지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의 순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시장에서 벌어들인 이익이 기업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장기 주주에게, 다시 시장으로, 다시 투자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로 말이다.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해야 유동성이 얇지 않고 특정 종목에만 돈이 몰리지 않으며, 시장의 두께가 생긴다.
세제와 지배구조가 장기 자본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다면, 지수는 오를 수 있어도 시장은 성장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좁은 상승, 얇은 온기가 반복될 뿐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지수를 올리는 힘'이 아니라 '시장을 지탱하는 힘'이다. 장기 보유에 우호적인 세제, 자사주 소각과 배당의 자연스러운 문화, 주주와 기업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지배구조. 이런 것들이 갖춰질 때, 비로소 시장은 넓고 단단해진다.
4,000이라는 숫자는 분명 의미 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진짜 힘을 갖기 위해서는 그 아래 깔린 토대가 바뀌어야 한다. 지표가 아니라 '구조', 속도보다 '방향'으로 말이다. 지금의 4,000은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