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감독 해촉으로 영화 이슈 생겨 안타까운 마음…창작자 권리 존중받아야"

"할리우드 영화 착각 들 정도로 몰입해 영어 대사 연기"

"'두 번째 시그널'·'모범택시 3' 보여드릴 수 있어 감개무량"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와 드라마의 주역 배우, 단편영화 감독 뿐만 아니라  매니지먼트사를 운영하며 비즈니스 역량까지 발휘하고 있는 이제훈. 그가 영화 '소주전쟁'으로 스크린에 컴백했다.

이제훈은 오로지 성과만을 추구하는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직원으로서 자신의 욕망과 목표가 명확한 최인범 역으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다. 극 중에서 '일은 일이고, 인생은 인생'이라는 모토로 살아가는 인범에게 회사를 위해 죽고 살면서 모든 것을 거는 종록(유해진)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국보그룹을 삼키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 인범 역을 연기하는 이제훈은 중요한 순간마다 종록에게 마음을 흔들리는 딜레마 연기를 펼치며 극의 몰입감을 높인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이제훈 배우를 만나 이번 작품과 관련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소주전쟁'이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소감을 밝힌다면

영화를 보시고 영화에 흠뻑 빠져서 잘 봤다는 표정과 눈빛들을 볼 때마다 영화를 되게 열심히 잘 찍었구나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전체적인 영화 시장 흐름을 보면 예전보다 극장을 찾는 관객의 수가 줄어든 것이 체감되어 아쉬움이 큽니다. 부디 극장에서 영화를 즐겨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물론 영화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를 통해 감상할 수 있지만, 영화가 가장 깊이 있고 최적화된 방식으로 감동을 전하는 순간은 어두운 극장 공간에서 큰 스크린과 좋은 사운드를 통해 만났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Q. '소주전쟁'을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전한다면

1997년 IMF 시기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누구나 귀를 기울일 만한 매력적인 소재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소주라는 매개체를 통해 삶의 가치관이 다른 두 인물의 갈등과 우정을 풀어내고 있어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라고 봐요.

저 역시 IMF를 직접 겪은 세대로서 이 이야기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중학생 시절이었고, 이후 2003년까지는 20대 초반을 보냈죠. 당시 저희집은 자영업을 했는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버지께서 일용직 근로자로 나서셨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어요. 그래서 이 영화의 이야기들이 저에게는 더욱더 피부에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20여 년이 훌쩍 지난 현재를 돌아보면, 과연 그 시절과 달라진 게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세상은 분명 발전했고, 사람들의 시야도 넓어졌지만, 여전히 윤리적 해이나 도덕적 무감각 같은 문제들이 팽배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가 그런 지점들을 건드리며, 관객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런 주제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영화가 충분히 그런 역할을 할 힘을 지녔다고 믿습니다.

Q. 영어 대사 연기는 어떻게 소화해냈나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고, 영화 속에 나오는 경제 용어들도 대부분 처음 접하는 생소한 것들이라 쉽지 않았습니다. 극 중 인물은 설정상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도 전문적인 인물로 보여야 했어요. 그래서 대본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보고, 영어 선생님의 가이드 음성을 매일 듣고 따라 하면서 인범이라는 인물이 소화할 수 있는 최대치를 표현하려고 애썼어요. 

발음, 억양, 속도 같은 부분도 다양하게 연습하면서 준비했고, 현장에서는 그걸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있었겠지만, 관객분들께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가길 바랐습니다.

Q. 바이런 만 배우가 연기한 고든의 대사에는 거친 표현이 많다. 캐릭터 연기 케미는 어땠나

진짜 금융 종사자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너무 정제된 대사보다는, 조금 더 과격하거나 저급한 표현들이 넣으면서 수위 조절을 해 서로 현실감 있는 톤을 맞춰갔다고 생각해요. 

정말 월스트리트나 여의도에서 실제로 들을 법한 대화 같다는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그런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진짜 금융계 종사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이 됐고요. 바이런 만 배우와 할리우드 영화를 찍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죠. 덕분에 저도 인범이라는 인물에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고, 진심으로 몰입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Q. 인범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다른 인물과의 관계를 구축했나

밑바닥부터 치열하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 그런 열망을 가진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일부 편집되었지만, 그는 아버지 세대를 떠올립니다. 가정을 위해, 회사를 위해 묵묵히 희생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느끼면서 또 한편으로는 어리석게 느끼죠.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의 일에 의미를 두지만, 종록을 마주하며 조금씩 균열이 생깁니다.

반면, 구영모 같은 인물을 통해선 또 다른 감정을 느낍니다. 인범도 반칙을 쓰고 야비한 방식으로 성공하려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그런 사람을 보면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일종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거죠. 그 선을 지키는 것과 넘나드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죠. 결국, 그는 돈도 벌고 존경도 받고 싶은, 두 가지를 다 가지려 했던 인물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상쇄시키며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하고, 또 한편으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과욕을 가진 인물이죠. 그래도 인범이 멋있어 보였으면 했어요. (웃음)

과욕에 대한 결과가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데 보통 우리가 말하는 모럴 해저드인 거죠. 이런 사례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작금의 현실을 이 영화를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좀 느끼셨으면 했고 인범을 통해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서는 그것보다 더한 상황들이 많잖아요. 경제 활동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배반을 당하신 분들이 상당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속지 마셨으면 해요. 

Q. 유해진 배우와 함께 연기한 소감을 밝힌다면

제가 배우라는 꿈을 꾸던 시절, 9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영화를 관통하는 배우 중 한 분이 유해진 선배님입니다. 한국 영화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주유소 습격 사건' 때부터 오랫동안 동경해 왔습니다.

배우가 된 후에는 언젠가 유해진 선배님과 함께 작업할 수 있기를 늘 기대해 왔어요. 이번에 드디어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설렜고, 현장에서 선배님과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선배님의 인간적인 매력을 직접 느낄 수 있었는데, 정말 유머러스하고 언어유희에도 능하셔서 촬영장에서 웃는 일이 많았어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시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우정을 나누면서 갈등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선배님과 함께한 순간들은 긴장보다는 늘 편안함이 컸어요. 그래서 연기할 때도 훨씬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장면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오래오래 함께 호흡하고 싶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건, 대본과 스토리보드가 있는 촬영 현장에서도 선배님은 늘 그 틀을 깨고 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셨다는 점입니다. 준비된 것을 그대로 하면 자칫 딱딱하게 굳을 수 있잖아요. 그 틀에서 벗어나 생동감 있게 표현하려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 많은 자극을 받았고, 큰 귀감이 되었어요. 이번 작품은 그런 면에서 제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선배님과 함께한 경험 덕분에 이 영화에 대한 애착도 더 커졌습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작품에서, 또 다른 인물로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Q. '소주전쟁'은 제작 중에 감독이 해촉된 영화다. 배우 입장에서 전할 말이 있다면

감독 해촉으로 영화에 이슈가 생겨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이런 일은 비단 감독뿐만 아니라 배우, 스태프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아요. 제가 했던 모든 작품에서도, 크고 작은 이슈들이 늘 존재해 왔거든요. 여러 사람이 모여 작업을 하다 보면, 의견차이나 문제가 생겨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또 반복될 수 있기에 이 사건을 통해 창작자의 권리와 목소리에 대해 한 번쯤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창작하는 모든 사람이 좀 더 존중받고 이해받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Q. 배우 외에도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를 겸업하게 됐는데 자신의 시야가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배우로서 활동하던 모습을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돌아봤을 때 열심히 잘 살았구나 하는 만족감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 만족감은 결과나 성과를 떠나, 과정에 최선을 다해 제 역량과 재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을 때 느끼겠죠. 그래서 소중한 추억이 되기를, 또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미래를 바라봤을 때, 함께하는 식구들이 저와 함께 꿈을 꿀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그래서 제가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 되새기고 있어요. 회사 식구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앞으로도 꿈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배우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일에서도 쉼 없이 고민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그 방향에 대해 저 역시 끊임없이 고민하는 중입니다.

▲'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소주전쟁' 이제훈. ⓒ쇼박스

Q. '소주전쟁', '협상의 기술'에 이어 '두 번째 시그널', '모범택시 3'도 선보일 예정이다. 배우로서 지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좋은 영화나 드라마 작품을 봤을 때 가장 행복하고 에너지를 얻고 기쁜 것 같아요. 살아 숨 쉬는 것 같고 근데 그러면서 아 나도 저런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혹은 저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에 대한 그런 오만 가지 상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연기 열정이 남아 있는 한 계속 끊임없이 활동하고 싶습니다. 너무나 운 좋게 '두 번째 시그널'과 '모범택시 3'를 통해 시리즈를 이어서 보여줄 수 있게 된 점이 감개무량합니다. 정말 잘 만들어서 어 시청자분들 혹은 관객분들께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된다면, 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Q. OTT를 통해 한국 작품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작가, 감독, 배우 등 인적·물적 자원의 쏠림 현상으로 영화 시장 회복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극장 지킴이 활동도 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서, 그리고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로서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바가 있다면

지금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영화 산업이 상당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극장이라는 공간과 영화 산업 자체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희망을 완성하는 건 결국 만드는 사람들이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얼마나 높은 퀄리티로 대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느냐, 그게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영화나 드라마로 직조해 나아가는 창작자들의 재능이 더 많이 발굴되고 더 많이 세상에 나와야 합니다.

저 또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감동하며 배우라는 꿈을 키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꿈을 꾸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줄어든 게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독립영화를 통해 그런 기회를 만들어가려는 시도들은 계속되고 있어요. 이런 영화들은 예산도 없고, 여건도 열악한 가운데 오로지 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함께 모여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부터도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를 통해 배우로서의 기술을 다지면서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열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은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많은 관객분들이 극장을 찾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더 좋은 연기와 스토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 있다고 느낍니다. 제 배우로서의 인생 방향성에서도 그런 무게감과 책임감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어요. 관객분들께서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더 좋다고 느끼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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