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1932년,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은 알 카포네가 지배하던 시카고의 갱단 생활을 청산한 후 약간의 돈을 들고 고향 미시시피로 돌아온다. 그들은 백인에게서 사들인 창고를 '주크 조인트'라는 비밀 술집으로 운영해 돈을 벌기로 하고 천부적인 블루스 뮤지션인 사촌 새미(마일스 케이턴)를 끌어들인다. 

흑인 노동요와 영가에 뿌리를 둔 새미의 델타 블루스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영혼을 울리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스모크와 스택은 새미의 뛰어난 재능이 큰돈을 벌게 해 줄 것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선한 치유의 힘인 동시에 악을 불러들이기도 하는 새미의 블루스가 그들만의 공간에 울려 퍼지자 핏빛으로 물들어갈 공포의 밤이 시작된다.

'씨너스: 죄인들'은 '블랙 팬서' 시리즈의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그의 외할아버지가 나고 자란 1930년대 미국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하룻밤의 사건을 다룬 영화로, 장르적으로는 고딕 공포물에 속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공포물에 그치지 않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계층의 역사와 함께해온 영혼이 가득한 델타 블루스와 함께 차별 받는 노동자 공동체의 연대 정신을 함유한 정치적·문화적 메타포로 가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작품이 1932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은 인종차별, 폭력, 생존, 공동체의 와해와 재건이라는 주제를 전개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이 시기 미국이 대공황, 금주법 말기, 갱스터 시대의 정점, 짐 크로우 법 체제의 강화라는 혼돈과 불균형의 교차점에 있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미리 알고 본다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마이클 B. 조던의 인상적인 1인 2역 연기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커다란 축이 된다. 그가 연기한 쌍둥이 스모크와 스택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태도나 신념은 대비를 이룬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이들을 통해 흑인 남성성의 매력과 함께 생존과 저항 사이에서 갈등하는 양가적 내면을 해부한다. 한쪽이 인간성을 지키고 견디고 살아남는 남성이라면, 다른 한쪽은 폭력과 쾌락의 유혹에 지배당해 공동체까지 위협하는 인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두 존재는 하나이며, 동일한 역사와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억압과 차별의 트라우마 속에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자화상을 상징한다.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마일스 케이턴이 연기한 새미는 이들 사이의 매개자인 동시에 희생자다. 그는 흑인 정체성을 고수하며 고대 아프리카 대륙 선조의 영적 힘을 이어받은 블루스로 공동체에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흑인 공동체의 축소판이자 상징 공간인 주크 조인트 안에서 새미의 블루스가 과거와 미래를 넘어 흑인의 영혼을 소환하는 장면은 흥미롭고 신선하다. 

한편, 흑인 영혼의 상징인 새미의 첫등장은 의도된 비선형 구조의 장면 배치로 인해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백인의 종교를 설파하는 신실한 목사의 아들인 그는 블루스를 포기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피비린내 나는 광란, KKK단의 테러 등을 피해 끝까지 살아남는다. 또한, 블루스라는 영적이고 역사적인 저항 음악의 계승자이자 시대 비극의 산 증인으로서 극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를 이끈다.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범블비', '호크아이'의 헤일리 스타인펠드가 연기한 스택의 옛 연인 메리는 백인과 흑인 사회 양쪽에 걸쳐 있는 중간자로서 혼재된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인다. 운미 모사쿠가 연기한 스모크의 아내 애니는 흑인 공동체 공간을 백인 침략자들로부터 지켜내는 지혜로운 주술사 그리고 가족의 유대감으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게 하는 캐릭터로 활약한다. 

공포의 시발점이자 공동체 파괴와 침탈의 존재인 렘믹 역을 맡은 잭 오코넬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주크 조인트 안으로 초대받지 못하는 렘믹의 무리는 흑인 문화에 매혹되어 스스로를 그 일부로 위장하지만, 결국 공동체를 파괴하고 흡수하려는 식민주의적 어둠의 존재들이다.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들이 백인 식민 권력의 예술적 자기과시로서 벤조를 연주하고 스텝댄스를 추는 퍼포먼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일랜드계 미국인 문화 교차점을 보여줘 공포영화 사상 유례없는 복합적인 감흥을 일으킨다. 또한, 렘믹의 대사들은 흑인 문화에 대한 식민주의적 태도를 나타내며 영화가 지닌 중심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한편, 이 영화에서는 식민주의의 렘믹과 백인 우월주의의 KKK단을 통해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인종 폭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재미있는 지점은 '씨너스: 죄인들'이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같은 소재를 사용한 공포 스릴러라는 공통점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씨너스: 죄인들'이 공동체의 과거 신화를 통해 역사와 음악, 종교적 트라우마를 은유하는데 초점을 뒀다면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철저한 염세주의적 유머와 폭력의 엽기극에 무게를 뒀다는 차이점이 있다.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음악과 서사 그리고 미장센의 공명이다. 파나비전과 70mm IMAX로 촬영된 화면을 통해 탁월한 밀도의 영상미를 자랑한다. 1930년대 미시시피 분위기를 담은 세련된 촬영 기법과 함께 루드비히 고란손의 매혹적인 사운드트랙은 인물의 내면 그리고 서사의 감정선을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한다. 다만, 장르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액션과 공포 연출의 본격적인 전개는 중반부부터 시작되므로 관객의 관점에 따라서는 단점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씨너스: 죄인들'은 과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억압에 맞서며 생존해온 흑인 공동체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치유하고자 하는 진지한 시도에 도전하는 가장 미국적인 고딕 공포영화다. 오스카 노미네이트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다.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씨너스: 죄인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목: 씨너스: 죄인들(Sinners)

감독: 라이언 쿠글러

출연: 마이클 B. 조던, 헤일리 스타인펠드 외

제공/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러닝타임: 137분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국내개봉: 2025년 5월 28일

평점: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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