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에스알 타임스) 박현주 기자] "내 비상금 털지마"
삼삼오오 빗자루 들고 골목 청소하던 분이 다른 분에게 내 구역의 쓰레기는 본인이 치우겠다며 우스개 소리로 이 같이 말했다. 골목청소로 비상금을 타시는가보다.
하지만 기자는 '비상금 털지말라'는 이 말이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진지하게 다가왔다. '내 비상금이 털릴 것 같은' 두려움에서다.
비상금이란 뜻밖의 긴급한 사태에 쓰기 위해 마련해 둔 돈이다. 비상금이 있을 때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하지만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위기 속에서 위기에 쓸 비상금 마련은 커녕 빚이 늘고 있다.
가계 빚은 국내총생산(GDP)규모의 2배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민간신용 레버리지(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202.7%로 GDP의 2배를 상회했다. 가계 빚만 문제가 아니다 기업 부채도 쌓였다. 유통 대기업들 중 부채비율 100%미만인 곳은 드물다. 대다수 자본(회삿돈)보다 부채가 더 많다는 얘기다.
일종의 기업 비상금 같은 이익잉여금(사내 유보 자금)도 축이 나고 있는 듯하다. 부채비율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가 회삿돈인 이익잉여금 감소다. 이 돈을 자금삼아 투자도 하고 배당도 확대해야 하는데 내수가 살지 않다보니 벌어들이는 돈이 줄어 앞으로 대기업들의 밸류업 계획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 지 우려된다.
시장경제를 멱살잡고 끌고가줘야 할 대기업에 재정난이 잠식하면 다 무너진다. 대형 마트 하나가 사라지면 실상 그 인근의 골목상권도 함께 죽게 되는 것을 봐도 그렇지 않나.
당연히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경기에 더 취약하다. 계엄사태 단 일주일뒤 만 해도 바로 매출 감소 영향을 받은 것은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한다. 명동상권 소상공인들은 당시 "밤되면 사람이 없다, 가뜩이나 힘든 데 더 어려워졌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내수부진에 따른 수익악화에 돈 털려가는 소리만 들린다.
돈이 바닥나지 않으려면 돈이 들어오고 나가고 선순환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악순환이다. 민간영역이 힘들어지면 공공영역이 도와줘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하지만 국가 비상금인 예비비 마저 삭감에다 책임공방하기 바쁜 터라 뭘 도와달라고 기댈 언덕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기획재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해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확정·발표해 내수경기의 빠른 회복을 위해 공공재원을 총동원해 18조원 경기보강 패키지를 시행하고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의 상반기 재원 집중 투하 식의 '민생 신속지원'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한다.
또, 대외신인도 관리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를 촉진하겠다고 한다.
앞으로 미국 신정부 정책 구체화 양상, 경제지표 흐름, 민생경제 상황 등 감안해 경제여건 전반을 1분기중 재점검해 필요시 추가 경기보강방안 강구하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성장률은 올해 1%대 저성장일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과거 탄핵정국 전례에 근거해 정치변동성 확대에 따른 부정적인 변수를 배제하더라도 저성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하면 내수 경기의 회복을 위해 신속하게 민생지원한다지만 내수악화를 막아내는 수준이지 국민들이 체감할 정도로 내 재정이 안정되고 있다고 느낄 리 만무할 것으로 예상해본다.
이럴 때일수록 '존버(끈질기게 버티다)'의 자세가 요구된다. 먹을 거 잘 먹고, 잠 잘자고, 쓸 거 적당히 쓰면서 민간영역이 무너지지 않게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방어하는, 존버의 자세. 함께 존버하면서 2025년 푸른 뱀의 해를 지혜롭게 헤쳐나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