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안전대책은 다양하고 세분화됐지만, 실제론 5년 동안 47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 한전이 ALIO에 공시한 안전경영책임보고서 캡처. 
▲한전이 안전대책은 다양하고 세분화됐지만, 실제론 5년 동안 47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 한전이 ALIO에 공시한 안전경영책임보고서 캡처. 

[SRT(에스알 타임스) 최형호 기자] 한국전력 하청업체 직원 김모(38)씨가 지난해 11월 5일 경기도 여주시에서 전기 연결 작업을 하던 중 고압 전류에 감전돼 숨졌다. 한전 측의 관리·감독 부실이 이번 사고의 주 원인이다. 

한전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을 통해 매년 '안전경영책임보고서'를 공시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전은 '국민과 일하는 사람의 생명이 안전한 환경구축 및 일터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크게 ▲작업장 ▲건설현장 ▲시설 등 세분화해 안전을 관리한다. 

이 중 한전은 ▲안전장치 개발 및 보급 확대를 통해 안전사고를 예방 ▲일용직 근로자 보호체계 강화 ▲협력사 안전관리 강화제도 도입 ▲안전 미준수 제재 강화 등 안전규약을 철저히 준수한다고 강조했지만, 현장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한전 측과 배치되는 대목이 한 둘이 아니었다. 

우선 김씨는 전신주 전기연결 작업 당시 10m 넘는 높이의 전신주에 혼자 올라가 작업했다. 한전 안전 규정상 '2인1조'가 돼 작업을 해야 한다.  

또 김씨는 고압 전기작업에 쓰이는 고소절연트럭(활선차량) 대신 일반 트럭을 타고 작업했고, 절연용 장갑이 아닌 일반 면장갑을 끼고 작업했다. 

이와 함께 한전은 전기 작업을 지시하면서도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엄인수 건설노조 강원전기지부장은 "김씨의 업무는 2020년까지 한전 몫이었으나 다음해부터 하청에 떠넘긴 것"이라며 "한전은 위험한 업무를 줄이는 데만 급급해 노동자의 안전을 신경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고로 한전이 위험한 일은 하청업체에 떠넘겼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안전경영책임보고서 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간 총 39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지난해에는 8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사고 주요 원인으로는 ▲감전▲끼임▲떨어짐 등이다. 이 중 한전 직원 사망자는 1명이었고, 나머지 46명은 하청업체 직원이다. 한전이 협력사 안전관리를 얼마나 소홀하게 했는지, 보고서에서 '대책 없는 안전대책'만 내놨다는 방증인 셈이다.

한전의 미숙한 사고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사고 직후 "김씨 작업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이던 한전은 비난의 여론이 거세지자 사고 후 66일 만인 지난 9일 정승일 한전 사장이 언론을 통해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했다. 사고 방지를 위한 안전 대책도 이날 발표했다.

앞서 유족들은 한전이 사고 관련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자, 언론에 김씨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이후 한전 승인 없이 시작될 수 없는 공사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사고 당시 한전 직원이 현장에 있었다는 증언까지 이어지며 한전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이로 인해 이 일은 세간에 주목을 받게 됐고 한전을 향한 비난 또한 거세게 일었다. 그제서야 한전은 부랴부랴 사고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논란이 된 이후에도 정승일 한전 사장은 유족들의 면담을 거절하는 등 '보여주기식 사과'만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씨 유족들은 정 사장의 사과 기자 회견 다음날 한전 본사를 찾아 정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 사장은 "취재진이 동석한 자리에선 만나지 않겠다"며 사실상 유족과의 면담을 거절했다. 유족들은 본사에 진입하려 했지만 방호원들이 가로막아 들어가지 못했다.

이와 관련 한전 관계자는 "(정승일 사장은) 고인과 유족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뜻을 거듭 밝혔다"며 "앞으로 조사 결과에 따라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 사장 유족 면담에 대해선 "직원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고 (유족들과) 만날 의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전이 김씨 사고에 대처하는 자세는 미흡하고 안일했다.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이 사고를 감추려했고, 정 사장은 유족들에게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사고방지 대책도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례로 정 사장의 안전 대책 중 직접활선 작업 폐지는 이미 2016년 발표된 내용인데다, 정전 후 작업 또한 전력이 끊기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유족들은 전남 나주 한전 본사 앞에 김씨의 분향소가 차렸다. 유족과 전국건설노조는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며 당분간 시위를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결국 정 사장이 유족들을 만나 사과하고 현실성 있는 안전 대책을 내놔야 한다. 또 도의적 책임까지 풀어나가야 한다. 그래야 매년 끊임없이 발생하는 근로자 사망사고가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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