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나주 사옥 전경. ⓒ한전
▲한국전력 나주 사옥 전경. ⓒ한전

[SRT(에스알 타임스) 최형호 기자] 내년 전기요금 인상이 유력하다는 전문가들의 전망과 달리 정부와 한국전력이 내년 1분기(1~3월) 전기요금을 20일 동결했다. 

업계에서는 한전의 올해 적자를 4조3,800억원을 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때문에 탄소 중립 등 에너지 전환 정책 비용까지 고려하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여기에 한전은 적자 손실 최소화를 위해서라도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전기요금은 최근 1년간 연료비인 '기준연료비'에 최근 석달간 연료비인 '실적연료비'를 합산해 산출된다. 올 1분기 실적연료비는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급등 등으로 올해 적용된 기준 연료비 대비 1kWh당 29.1원 올라야 정상적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세 동결한 이유에 대해 '정부 몸사리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요금 인상 시 '탈원전 청구서' 관련 비판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간과하지 않았을 것이란 의미다. 이에 따라 전기 요금 인상 여부는 차기 정권에서 책임져야 할 과제로 남았다. 일각에선 원전을 재가동해야 전기요금 안정화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높은 물가 상승률에 따른 국민생활 도모"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로 '물가 상승'을 꼽았다. 실제 올해 1~9월 소비자 물가는 전년 대비 6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하다, 10월 3.2%, 11월 3.7%까지 올랐다. 2011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내년 물가도 2%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하면서, 당장 통제가 가능한 공공요금 잡기에 나섰다.

이날 한전은 홈페이지를 통해 내년 1분기 최종 연료비 조정단가를 지난 4분기와 동일한 kWh당 0.0원으로 책정했다고 공지했다. 내년 1분기 조정단가는 29.1원/kWh이다.

한전 측은 전기요금 동결에 대해 "정부로부터 통보받은 유보 사유는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 상승률로 국민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에 따르면 올해 9월부터 11월까지의 유연탄, 액화천연가스(LNG), BC유의 무역통계격에 따른 1분기 실적연료비는 kg당 467.12원으로, 기준연료비 대비 61.6% 상승했다. 

이에 한전은 분기별 최대 조정폭인 kWh당 3.0원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정부 유보로 내년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는 kWh당 0원으로 확정됐다.

전기요금은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협의 등을 거쳐 결정되면 한전이 발표한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 당시 정부가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연료비 조정단가 적용 유보를 결정하면 한전이 이에 따르도록 하는 권한을 둔 바 있다.

결국 전기요금 동결은 정부가 연동제를 유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말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면서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이 때문에 한전은 올해부터 분기마다 석유,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발전 연료비를 요금에 반영 중이다.

미조정액은 추후 요금 조정시 총괄원가로 반영해 정산되는데, 내년 차기 정권에서 전기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국제유가 등 연료비가 최근 큰 폭으로 올랐지만, 실상은 전기요금 변동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4분기 요금 분을 한 차례 인상했지만, 지난 1분기에 낮춘 요금을 원상태로 되돌린 것에 불과했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다음 정권에 미룬 것에 대해 업계에선 '탈원전'기조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표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책임을 차기 정권에 떠넘긴 셈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 수립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신한울 1호기(1.4GW)·신한울 2호기(1.4GW)·신고리 5호기(1.4GW)는 이미 가동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수립, 원전 가동을 전면 중단하거나 연기했고 대신 기저전원 부족분을 값비싼 LNG가 메우며, 전기요금 인상 원인을 제공했다. 

지난달 원자력의 발전 단가는 1kWh당 41.5원으로 LNG의 4분의 1 수준이다. 현 정부들어 급속히 보급한 신재생에너지는 이전 정부 대비 3GW 이상 늘어난 11.87GW(설비용량 기준)에 달하지만 발전 간헐성 때문에 실제 발전량은 설비용량의 20% 내외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전기요금 동결로 발전 공기업의 경영부실이 한층 심화돼, 결국 몇 년 뒤 국민세금으로 이를 메워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전기요금 동결로 이미 142조원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는 한전의 재무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4조를 조금 넘겼던 한전의 내년 손실 규모를 4조9,177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한전의 대규모 적자에 6,680억원의 예산을 긴급 투입했다는 점에서, 몇 년 뒤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한전 측은 "내년에 적용할 기준 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을 산정하고 있으며 국민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요금에 반영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 공기업 부채 더욱 증가 전망…국민 부담 늘어날 것

잘못된 탄소중립 정책으로 인해 요금을 올려야 함에도 국민 눈치만 보는 정부 때문에 공기업 부채는 더욱 늘어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앞서 연료비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가스요금도 지난 7월 이후 계속 올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9월부터는 LNG(천연액화가스)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7월에 한차례 낮춘 요금도 회복시키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국가스공사의 연료비 미수금만 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의 경우 3분기까지 누적 기준 1조5,814억원의 적자다. 특히 여름철 전기사용량이 많아 흑자구조로 돌아서는 3분기에도 적자 규모가 1조259억원에 달했다. 한전은 국회 제출한 2021~2025년 중장기재무관리계획에서 올해 영업손실 규모 4조3,845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가스공사도 올해 2분기(-562억원) 적자로 돌아선 데 이어 3분기(-893억원)에는 적자 폭을 키웠다.

정부가 요금 인상을 계속 회피하면 에너지 비용은 물론 탄소 중립으로 인한 정책 비용까지 다음 정권에 떠넘길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올해부터 기후·환경요금을 분리 고지하면서, 매년 환경 정책으로 발생한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환경 요금을 올리기 쉽지 않다.

최근 정부는 미세먼지 감축과 탄소 중립을 위해 LNG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까지 오르면서 한전의 전력 구입비도 치솟았다. 실제 지난달 전력시장 도매가격(SMP)은 월평균 127.06원/㎾h으로 1월 SMP(70.65원/㎾h)와 비교해 약 79.8% 올랐다.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은 자신의 SNS에 "정부는 (공공요금) 인상을 통제하면서 부담을 줄인다고 생색까지 내는 것도 모자라 국민이 지게 될 부담을 오히려 혜택으로 포장하고 있다"며 "한전은 전기요금 적자 누적으로 70조원을 차입해 국민 1인당 140만원의 부채를 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인상 요인을 모두 반영해도 당분간 국민 부담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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