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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패전 이후 빠르게 경제를 재건한 일본은 1980년대 들어 전자제품 등 2차 산업분야에서 세계최고 수준을 이룬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1980년대 후반 일본은 투자자본 집중에 따라 부동산 가격과 주가가 끝없이 폭등했다. 일본은 버블 경제라고 불리는 자기 역사에 다시 없을만한 최대의 경제 호황기를 누린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하며 이제서야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려던 1988년 당시, 일본은 이미 세계 100대 기업순위에 1위 NTT를 비롯, 자국 회사를 무려 53개나 포진 시키고 있었다. 당시 유례없는 호황으로 일본 기업들은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렸고 구직자들은 회사들이 제공하는 면접비만으로도 생활비 충당은 물론 새 차를 구입해 타고 다닐 정도였다.

일본의 대기업과 금융기관, 투자자들은 넘쳐나는 자본을 가지고 앞다퉈 해외자산 투자에 열을 올렸다. 록펠러센터, 콜롬비아 픽쳐스, 유니버셜 등이 일본에 팔리면서 제2의 진주만 공습에 비유될 정도로 미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전 세계를 모두 사들일 듯했던 일본의 버블경제는 결국 자신의 무게를 감당해내지 못한 채 붕괴했다. 전자제품으로 전 세계 1위를 휩쓸던 마쓰시타, 소니, 도시바 등 일본의 대표적 기업들은 미래 경쟁력 확보에 실패하고 R&D투자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 그 자리를 삼성과 LG를 필두로 하는 한국기업에게 넘겨줘야 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1988년 6.79%를 기록한 이후 버블경제 붕괴 시점인 1990년대 초부터 연평균 1%대를 오가게 된다. 화려했던 과거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추락에 가까운 하향세를 보인 일본경제는 지난해 경제성장률 1.14%를 기록했다.

이렇게 정체된 일본경제의 몰락을 막고 그나마 현상유지를 할 수 있게끔 견인해준 것이 바로 일본의 부품∙소재∙장비 수출산업이다.

일본이 부품∙소재∙장비 산업에서 강점을 보이는 이유는 1980년대부터 일본기업들이 착실히 다져온 시장선점에 따른 독과점적 위치확보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모노즈쿠리(物作)’라 불리우는 장인정신 기반의 중소기업군이라는 탄탄한 뒷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디지털기술과 클라우드 펀딩 등의 활성화 속에 폐쇄적인 일본 모노즈쿠리 진입장벽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금형·공작기계 등 고도의 정밀기술과 내구성, 노하우가 요구되는 분야에서만큼은 아직도 강력한 글로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뛰어난 양산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그 양산능력의 근간인 양산화설계(DFM)기술 경쟁력은 일본 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어 그 영역을 쉽게 넘보기 힘들다. 이는 한국기업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소재 수출제한 및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배제 역시 일본정부가 자국이 보유한 부품∙소재∙장비와 관련, 독보적인 경쟁력의 무기화 가능성을 이미 오래전부터 염두에 뒀기 때문에 전격적인 실행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산업은 수출 증대와 비례해 대일본 부품∙소재∙장비 의존도를 높여왔다. 국내는 물론 중국 유럽 등에 대체재가 존재하고 국산화 기술개발도 가능했지만 지정학적 위치, 단가상승, 물류비용 등을 염두해왔던 탓에 현재에 이르렀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한일수교 이래 지금까지는 정치∙외교적 분쟁이 산업 및 무역제재 등으로 번졌던 예가 거의 없었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한일 양국 재계의 신뢰관계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크게 훼손된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은 소재나 부품 등 일부 국산화에 돌입하거나 대체 수입루트를 확보해 현상황을 타계해 나가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정부 역시 지난 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통해 100대 핵심 전략품목에 대한 조기 공급안정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장 일본의 모노즈쿠리 기업들이 최소 1980년대부터 꾸준히 쌓아온 기술경쟁력과 노하우를 우리나라가 하루아침에 확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 시점에서는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국내기업 자생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독자적 제조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한다. 또한 비단 일본만이 아닌 중국 등 여타 경쟁국가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기술경쟁력에 대한 장기적 비전과 집중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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