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상승 흐름을 이끌어 온 반도체 대형주가 단기 조정 구간에 들어서면서 시장의 시선이 향후 업황 전망으로 옮겨가고 있다. ⓒ픽사베이
▲코스피 상승 흐름을 이끌어 온 반도체 대형주가 단기 조정 구간에 들어서면서 시장의 시선이 향후 업황 전망으로 옮겨가고 있다. ⓒ픽사베이

사이클 길이가 향후 주가 가른다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코스피 상승 흐름을 이끌어 온 반도체 대형주가 단기 조정 구간에 들어서면서 시장의 시선이 향후 업황 전망으로 옮겨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단기간에 급등한 뒤 숨 고르기에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곧바로 추세 전환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황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며 AI 데이터센터 확장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증가라는 구조적 성장 요인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성장 속도와 수급의 강도는 이전만큼 일방적이지 않을 수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반도체 장세가 끝난 것이 아니라, 속도를 조정하는 구간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주도 섹터의 지위는 유지되지만 가격이 급하게 오른 만큼 실적 확인·수율 안정·고객 확보 속도와 같은 '증명 과정'을 거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장 마감 기준 삼성전자는 9만7,900원, SK하이닉스는 58만원으로, '10만 전자', '60만닉스' 등 최근 고점 대비, 단기 조정을 거치는 모습이다. 

앞서 지난 5일에는 AI(인공지능) 거품론이 촉발한 미국 기술주 투매 여파로 국내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2.85% 하락한 4,004.42에 마감했고, 장중 한때 3,800선 후반까지 밀렸다.

뉴욕증시에서는 팔란티어가 호실적에도 7.94% 급락하며 거품 논란을 자극했고, 엔비디아(-3.96%), AMD(-3.70%), 테슬라(-5.15%) 등 AI 대표주들이 일제히 조정을 받았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종목들의 주가에 대해 여전히 긍정적이다. 삼성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단기 변동성 확대는 가능하나, 반도체 수출과 D램 단가 상승이 지속되는 한 중장기 조정 국면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류형근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DRAM 수요가 AI·고성능 서버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메모리 구매 경쟁이 뚜렷하게 심화되고 있다"며 "단기 업황은 분명히 강화되는 국면으로, 시장의 관심은 이제 이 사이클이 어디까지 연장될 수 있는지에 맞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26년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는 2,784억 달러로 전년 대비 약 40% 성장할 것"이라며 "성장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전망 역시 상향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도 최근 기사에서 "AI 인프라 투자는 일시적으로 완만해질 수 있으나, 데이터센터 기업들의 장기 CAPEX 계획은 여전히 상향 기조"라며 "이번 메모리 반등은 경기순환형 사이클이 아니라 구조적 수요 확장에 기초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업황의 관건은 얼마나 오를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업황의 방향성이 유지된다고 해서 모든 변수가 제거된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특히 수율 안정과 패키징 경쟁력을 관전 포인트로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기술 우위와 주요 고객사 확보 면에서 우세하지만, 증설 과정에서 수율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가 핵심 변수로 지적된다. 수요가 급증한 만큼, 공급 안정성·제품 믹스 전략이 향후 실적 변동성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HBM3E와 차세대 제품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으나, 패키징 공정에서의 수율 확보는 여전히 개선 과제로 남아 있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HBM 경쟁의 핵심은 공정 미세화보다 패키징 수율 안정에 있다"며 "삼성이 패키징 효율을 끌어올리기 시작할 경우, 시장 점유 구도에도 변화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하이닉스는 '선도 유지·확장', 삼성은 '추격·전환'의 과제를 각각 안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 CAPEX 상향은 사이클 연장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변수다. 마이크로소프트·메타·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는 올해 AI 계산·추론 인프라 구축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TSMC가 CoWoS 패키징 생산능력을 2025년까지 두 배 이상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동안 HBM 공급을 제한해 왔던 패키징 병목이 완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면 미·중 수출 규제는 지역별 수요 흐름을 재편할 수 있는 리스크로 거론된다. 엔비디아는 중국향 GPU 제품군 조정을 검토 중이며, 이에 따라 HBM 공급 배분 및 가격 협상력이 고객사별로 차등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류형근 연구원은 "범용 메모리 가격은 공급자 우위 속에서 4분기에도 추가 상승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DRAM은 전분기 대비 30% 이상, NAND는 15% 내외의 가격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사이클이 연장되는 구간에서는 조정이 곧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실적 확인을 전제로 한 점진적 분할 매수 전략이 유효하다"고 조언했다.

게다가 AI 거품론도 반도체 업종에겐 변수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마이클 버리는 최근 AI 기업들이 버블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헤지펀드 사이언에셋매니지먼트는 9월 말 기준 보고서에서 엔비디아·팔란티어 풋옵션을 10억달러 이상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버리는 X(구 트위터)에 “때로는 버블을 보고도 게임에서 빠지는 것이 유일한 승리일 때가 있다”고 올리며 과열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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