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위, 국민경제 부담 덜고자 식품유통업계 '담합' 정조준
업계, "가격오름세는 원자재 말고도 기타비용 증가도 감안해야"
[SRT(에스알 타임스) 박현주 기자] 식품·유통업계가 밀가루, 농축수산물 등 생활물가 핵심 품목에 대해 가격 담합 여부·원가 구조를 전면적으로 조사받고 있다. 좀처럼 생활물가가 잡히지 않아서다.
업계는 몇년간 내수 침체와 원자재·물류비 상승이 겹치면서 수익성이 곤두박질 치자 가격인상을 단행해왔다. 이에 정부는 물가안정 차원에서 지속 가격인상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물가 조정이 되지 않자 정부는 가격 인하만으론 대응 불가라 판단하고 원가·유통 구조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이때문에 민생품목을 다루는 주요 유통식품기업이 공정위 조사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각에서는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원가구조에서만 물가오름세의 원인을 찾을 것이 아니라 가격오름세는 원자재 외에도 비용부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올해 식품유통업계를 대상으로 담합의혹에 대해 집중점검하고 있다. 공정위가 올해 주요업무 추진계획으로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민생경제 회복과 미래 대비를 위한 공정거래 기반 조성'을 목표로, 4대 핵심과제를 추진한다.
공정위는 "올해는 내수 회복 지연으로 민생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 따라 경기 하방위험이 커질 우려가 있는 한편 미래에 대비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도 긴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4대 핵심과제로 ▲중소기업 소상공인 경제활력 제고 ▲미래 대비를 위한 혁신경쟁 촉진 ▲소비자 보호 강화 및 권익 증진 ▲대기업집단 제도의 합리적 운영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최근 식품유통업계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담합' 조사는 4대 핵심과제 중 '미래 대비를 위한 혁신경쟁 촉진'에 해당한다. 시장활력을 저해하고 국민의 경제적 부담으로 직결되는 담합 감시를 강화해 '담합 및 불공정 거래관행 개선'을 우선과제로 두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 같은 방침의 일환으로 공정위는 지난 4월 가격담합 의혹을 받는 농심·롯데웰푸드·오리온·크라운제과·해태 등에 대해 현장조사에 나섰으며, 6월에는 대한산란계협회 '계란값 담합의혹'을 조사했다. 최근 제품 가격 인상이 담합에서 비롯된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또, 지난 16일 국내 주요 밀가루 업체의 담합 혐의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대선제분,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삼화제분, 제일제당, 한탑 등 7개 제분사에 대해 현장조사했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가격협의나 출하조정 등을 했는지 여부를 입증하고자한 한것으로 특히 조사의 취지는 민생품목에서 경쟁을 피해 국민생활물가를 높이는 불공정행위를 막겠다는 조치다.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말 국무회의에서 "설탕·밀가루 등 주요 식품 원재료 시장의 담합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라"고 주문했으며,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국제 밀 가격과 국내 밀가루 가격 격차가 최근 4년간 30% 이상 벌어졌다"며 "이 같은 차이를 보면 시장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업계는 이번 조사는 '빵값'이 오르면서 촉발된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나라 빵값이 크게 올랐다는 '빵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빵값이 오른 이유가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값이 올라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통계청의 '9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소비자물가는 전년동월 대비 2.1% 상승한 가운데, 빵의 경우 같은 기간 6.5% 증가했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3배 수준으로, 생활물가지수(+2.5%), 신선식품지수(-2.5%) 등락률 역시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이와 함께 최근 모 경제유튜버가 소금빵을 시중의 3분의 1 가격인 990원에 내놓으면서 우리나라 빵값이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국내 제빵업계는 단기적인 팝업이 아니라 운영을 위해서는 단순 원재료 가격뿐 아니라 인건비, 판매관리비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어 수입산 원재료 국제시세는 글로벌 경기에 따라 변동가능성을 감안해야 비로소 합리적인 가격을 도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쉽게 말해 단순 원자재 가격이 내렸다고 해서 가격은 그대로인 것을 기업의 '폭리' '불공정 운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즉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도 다른 비용부담이 따른다는 것이 줄곧 업계가 내놓은 입장이다. 물가 오름세를 단순 비정상적이거나 불법적인 원가구조 운영 시스템에서 비롯됐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6일에는 농산물 가격을 부풀린 의혹을 받는 롯데마트 이마트 등 대형마트에 대한 현장조사가 이뤄진 가운데, '담합 의혹'에 대한 여부가 점검 중이다. 정부 주도의 할인행사에 이들이 참여하기 전에 농축산물 가격을 미리 올렸다는 의혹에 대한 점검으로, 다만 마트 측은 역시 "농산물은 작황과 선도에 따른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변동이 크기 때문에 행사 지원 직전 시세와 산지 동향 등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가격 오름세가 기업이 무조건 과도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거나, 불공정거래를 일삼고 있다는 방식의 '대기업 프레임'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22년 러우전쟁 발발 이후 수입비중이 높았던 밀 등의 가격이 치솟자 식품제조업계 중심으로 가격이 올렸다. 그러면서 연쇄적으로 이들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되는 상품 가격들도 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물가안정관리 차원에서 줄곧 가격통제를 했다.
그러나 원자재가격 상승 외에도 인건비, 임대비, 물류비 등이 전반적으로 물가가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비용부담이 가중됐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영업이익률이 더 줄기 시작했지만 정부압박 탓에 가격인상 또한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지기 시작했다.
식품유통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국제시세 변동이 큰데다 비용에 원자재 가격만 있는 건 아니다. 인건비 임대비 물류비 등 기타비용이 감안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도 "정부가 물가안정 차원의 독려를 하면 기업은 최대한 참여하는 형태"라며 "비용부담에 따른 경영환경 어려움도 있으며 '무조건 압박'만이 답이 아니라 실용적으로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방안을 도출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