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관세 협상 향방에 현대차 이익·손실 규모 갈려
[SRT(에스알 타임스) 안병용 기자] 현대자동차·기아가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꿩 대신 닭'을 잡는 모양새다. 수출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25%의 고율 관세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유럽으로 눈을 돌려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갈 수 있을 지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20일 현대차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달 오스트리아 승용차 시장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2% 늘어난 1,966대를 판매했다. 시장 점유율 7.6%로 독일 폭스바겐(14.3%), 체코 스코다(10.8%)에 이어 브랜드 순위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1만1,364대의 판매량으로 브랜드 순위 6위에 올랐던 현대차는 올해 1∼9월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증가한 8,604대를 판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현대차의 대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모델인 ‘투싼’의 약진이 눈에 띈다. 지난 9월 한 달간 455대가 판매돼 모델별 판매 순위 6위를 기록하며 현대차 유럽 전체 판매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판매량이 증대하자 차량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등을 보유한 투싼은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모토 운트 슈포트’의 친환경성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형 전기 SUV인 ‘아이오닉9’은 독일 자동차 전문 기자단으로 구성된 지코티(GCOTY)가 발표하는 ‘2026 독일 올해의 차’에서 ‘올해의 프리미엄 자동차’에 올랐다.
지코티는 콤팩트, 프리미엄, 럭셔리, 뉴에너지(전기차·수소전기차), 고성능차 등 5개 부문에서 부문별 1위를 정한다. 아이오닉9은 독일에 출시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현지 최고 프리미엄 차량에 뽑혔다. BMW와 벤츠, 포르쉐 등 고급 자동차 브랜드가 즐비한 독일에서 현대차의 경쟁력이 입증된 모습이다. 현대차의 유럽 전략형 모델인 i20과 i10도 각각 터키와 체코 공장에서 생산돼 빠른 물량 공급과 가격 경쟁력 확보에 기여하며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유럽 전략형 모델을 바탕으로 점유율을 지속해 확대할 것”이라며 “친환경 모델과 SUV 중심 라인업을 통해 유럽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의 제네시스도 유럽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는 중이다. 현대차는 독일, 영국, 스위스에 이어 내년에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GV70의 연식 변경 모델인 ‘2026 GV70’이 선봉에 선다.
제네시스 관계자는 “연식 변경을 통해 고급스럽고 트렌디한 취향의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GV70의 상품성을 다듬었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유럽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지만, 세계 자동차 시장의 최대 큰손은 역시 미국이다. 미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실적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
신율철 키움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품목관세율 인하만으로도 더 이상 어닝은 역성장이 아닌 최소 올해 수준을 유지하는 방향을 전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시선도 전 세계에 전방위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우선적으로 향해 있다. 정 회장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일·대만 기업 총수 회동’ 자리에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이날 골프 라운딩에선 정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참석했다.
재계는 이번 회동에서 투자와 관세 등과 관련해 폭넓은 논의가 오갔을 것으로 추측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관세 협상에서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관련해 ‘선불’을 조건으로 관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인들의 의견 개진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31일부터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할 예정이어서 정 회장을 비롯한 재계 총수들은 기업 입장을 관철할 마지막 기회로 보고 이번 만남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이번 회동에서 정 회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 방문에 대해 모두의 기대가 크고, 모두가 합심해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하며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관세 협상에 따라 기업의 이익과 손실 규모는 천문학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3분기 손실만 2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유럽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관세 인하까지 이어지면 견고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정부와 함께 끝까지 설득을 위한 총력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