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脫 엔비디아 가속화…메타 등 자체 칩 개발 ‘속도’
전력 반도체 등 국내 기업 기회될 듯
[SRT(에스알 타임스) 방석현 기자] 미국 AI 반도체 시장의 탈(脫) 엔비디아가 빨라지고 있어 국내 기업들에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회장과 샘 울트먼 오픈AI CEO의 상호 협력 의향서(LOI) 체결을 시작으로 국내 기업들과의 협업에도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전날 방한한 샘 울트먼 오픈AI CEO와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상호 협력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LOI 체결 삼성 관계사는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 4개사다.
삼성은 오픈AI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반도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해양 기술 등 각사의 핵심 역량을 결집해 전방위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먼저, 삼성전자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오픈AI가 고성능·저전력 메모리를 원활하게 공급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오픈AI가 글로벌 기술·투자 기업들과 함께 슈퍼컴퓨터와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삼성전자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오픈AI가 메모리 솔루션 수급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오픈AI는 웨이퍼 기준 월 90만매의 고성능 D램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삼성과 오픈AI의 협업은 미국 AI 반도체 시장의 탈 엔비디아 경향이 발현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는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장치(GPU)가 AI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왔으나 최근 오픈AI, 메타, 구글, 아마존 등 주요 기업들이 자체 칩 개발에 나서며 판도가 바뀌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맞춤형 AI 칩 내재화 움직임은 세계 반도체 생태계의 새로운 수요를 촉발하며 한국 기업에도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픈AI는 엔비디아 GPU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섰다. 외신 등에 따르면 오픈AI 는 TSMC의 3나노미터 공정을 활용해 첫 맞춤형 칩 설계를 마무리하고 실제 생산을 위한 최종 준비 단계까지 진행했다. 이 칩은 행렬처럼 배열된 연산 유닛으로 AI 연산 속도를 높이는 ‘시스톨릭 어레이’ 구조와 데이터 전송 속도를 크게 향상 시킨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그리고 AI 서버 간 빠른 연결을 지원하는 고속 네트워킹 기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반도체는 범용 GPU보다 대규모 언어모델(LLM) 추론 효율을 크게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업계는 이를 두고 오픈AI가 장기적으로 자체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메타도 엔비디아 GPU 의존도를 줄이고 AI 인프라 비용을 낮추기 위해 자체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인 메타 훈련 및 추론 가속기(MTIA)를 개발하고 있다. 2023년에는 추론용 칩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추천 시스템에 적용해 내부 서비스 최적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메타는 반도체 스타트업 리보스 인수도 추진 중이다. 리보스는 올해 8월 투자를 유치하며 20억달러(약 2조8,132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메타의 리보스 인수 추진 이유는 비용 절감과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관계자는 “최근의 맞춤형 AI 반도체 개발은 개별 기업의 단순한 기술 투자 차원을 넘어,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움직임이자 ‘탈 엔비디아’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라며 “오픈AI, 메타, 구글, 아마존 등이 자체 칩을 내놓으며 특정 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동시에 각사의 서비스 특성에 맞춘 최적화된 연산 성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맞춤형 AI 반도체 경쟁은 칩 자체의 성능 경쟁을 넘어, 글로벌 소재∙부품∙장비 산업 전반에 새로운 수요와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스타트업들은 특정 기술 분야에 집중해 차별화된 방식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2년 설립된 에치드(Etched.ai)는 대형 언어모델의 핵심 구조인 트랜스포머 연산에 최적화된 전용 주문형 반도체(ASIC) ‘소후’를 개발하고 있다. 트랜스포머는 단어와 문맥 간의 관계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최신 챗봇과 번역 모델 같은 AI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알고리즘이다. 에치드는 특정 연산에 최적화된 전용 칩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에치드는 현재 TSMC와 협력해 칩 생산을 준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시장에서 독보적인 것은 맞지만 추론형 시장도 못지않게 커지고 있는 만큼 국내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등이 이 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고대역폭메모리(HBM) 뿐만이 아닌 AI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한 전력 반도체 등 관련 업체들은 여전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