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가 2016년 1월 우리나라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년을 앞두고 있다. 넷플릭스는 2007년부터 영화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스트리밍 방식으로 국내 공급해왔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말 전 세계 구독자 수 3억명을 돌파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물론 글로벌 미디어 업체들은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관련 기업의 인수합병에 나서며 몸집 키우기에 나섰다. 이들의 선택이 향후 미디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조성현 티빙 최고사업책임자(CBO)가 지난 9월 19일 서울 강남구 쿤스트할레에서 '티빙·웨이브 뉴 웨이브 2025' 행사를 열고 티빙과 웨이브의 통합 광고 플랫폼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티빙
▲조성현 티빙 최고사업책임자(CBO)가 지난 9월 19일 서울 강남구 쿤스트할레에서 '티빙·웨이브 뉴 웨이브 2025' 행사를 열고 티빙과 웨이브의 통합 광고 플랫폼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티빙

공정위, 티빙·웨이브 조건부 승인에도 주주동의 '난항'…KT 대승적 결단 필요

[SRT(에스알 타임스) 문재호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6월 OTT 티빙 운영사 씨제이이엔엠(CJ ENM)과 웨이브 운영사 콘텐츠웨이브 간 임원겸임 방식의 기업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렸다.

양사는 합병을 통해 제작과 유통 과정에서 중복되는 비용을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구상이다. 향후 합병 성사 시 통합 법인이 글로벌 시장에서 넷플릭스에 맞설 수 있는 경쟁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CJ ENM에 이어 티빙의 2대 주주(지분율 약 13.5%)인 KT가 티빙과 웨이브 간 합병이 주주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낸 게 걸림돌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KT가 대승적 결단을 내려 국내 미디어 산업이 넷플릭스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티빙의 매출은 전년도(3,264억원) 대비 33.4% 상승한 4,355억원을 기록했다. 순손실은 같은 기간(1,523억원) 대비 49.4% 감소한 77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웨이브의 매출은 2023년(3,339억원) 대비 0.8% 감소한 3,313억원을 기록했다. 순손실은 같은 기간(1,191억원) 대비 25.8% 상승한 1,49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티빙의 순손실은 악화하고 있다. 티빙의 올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줄어든 1,884억원, 순손실은 10.2% 상승한 571억원을 기록했다.

티빙과 웨이브는 기업결합을 통해 중복되는 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웨이브 운영사인 콘텐츠웨이브의 모회사였던 SK스퀘어는 콘텐츠웨이브의 올 상반기 실적을 공시하지 않았다. 앞서 SK스퀘어는 지난 17일 자회사 콘텐츠웨이브의 계열 회사 제외 사실을 공시했다. 계열에서 제외되더라도 SK스퀘어가 보유 중인 주식 비중은 36.7%를 유지한다. SK스퀘어 자회사에서 탈퇴한 콘텐츠웨이브는 CJ ENM의 종속회사로 편입된다.

데이터 테크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운영하는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8월 OTT 분야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넷플릭스가 1,475만명으로 압도적으로 1위를 유지했다. 2위는 티빙으로 757만명을 기록했고 3위 쿠팡플레이(729만명), 4위 웨이브(430만명)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기준 합병에 따른 티빙과 웨이브의 MAU를 단순히 합산하면 1,159만명으로 넷플릭스 MAU 1,475만명의 뒤를 바싹 따라붙게 된다.

티빙과 웨이브는 합병을 위한 최종 관문인 주주동의를 끝내지 않았지만 양사의 사업 협력과 플랫폼 통합을 이미 추진하고 있다.

티빙과 웨이브는 지난 10월 1일부터 단일 통합 광고 플랫폼을 선보이고 있다. 양사는 통합 광고 플랫폼에 송출되는 지상파, CJ ENM, 종합편성 채널 등을 합친 방송 시청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고 강조했다. 또 콘텐츠 시청 이력과 CJ가 보유한 커머스·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연계해 광고주가 고가치 소비자에게 더 정밀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게 양사의 설명이다.

웨이브는 지난 1일 ‘웨이브X티빙 더블 광고형 스탠다드’ 광고형 상품을 출시했다. 소비자는 웨이브가 티빙과 함께 운영하는 웨이브X티빙 더블 광고형 스탠더드 상품에 가입하면 웨이브와 티빙 두 서비스 모두 즐길 수 있다.

▲서울 상암동 CJ ENM 본사. ⓒCJ ENM
▲서울 상암동 CJ ENM 본사. ⓒCJ ENM

◆KT, 티빙·웨이브 합병 반대…세 가지 이유와 업계의 우려

티빙과 웨이브는 주요 주주 중 유일하게 합병에 동의하지 않은 KT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KT 그룹 미디어 사업을 총괄하는 김채희 미디어부문장은 지난 4월 티빙과 웨이브 간 합병 추진에 대해 “웨이브의 지상파 콘텐츠 독점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합병이 티빙 주주가치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KT가 티빙과 웨이브간 합병에 난색을 보이는 이유로 크게 3가지를 꼽고 있다.

먼저 KT가 티빙의 2대 주주로 참여한 가장 큰 목적은 'KT스튜디오지니'의 안정적인 유통 창구 확보였는데, 합병이 단행되면 콘텐츠 유통 패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KT는 티빙 내에서 2대 주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KT스튜디오지니의 콘텐츠가 우선적으로 편성되고, 마케팅 지원을 받는 등 보이지 않는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합병 법인이 출범하면 티빙 2대 주주로서 누렸던 혜택이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통합 OTT의 콘텐츠 저장소(아카이브)는 CJ ENM과 지상파 2~3사(KBS, MBC, SBS)가 수십 년간 쌓아온 방대한 자료로 채워지게 될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KT스튜디오지니 콘텐츠는 이 자료들과 경쟁을 통해 통합 OTT내 편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종전처럼 안정적인 유통 창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지배구조 재편과 의사결정 영향력 축소도 문제다.

티빙의 최대 주주는 현재 지분 48.9%를 차지한 CJ ENM이며 2대 주주는 각각 지분 13.5%를 보유한 KT와 사모펀드인 미디어그로쓰캐피탈이다. 그 뒤를 SLL중앙(12.7%), 네이버(10.7%) 등이 잇고 있다. 웨이브 주요 주주는 SK스퀘어(40.52%), KBS(19.8%), MBC(19.8%), SBS(19.8%)다.

티빙이 웨이브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합병이 진행될 경우, KT의 지분율은 13.5%에서 5~7% 수준으로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이는 단순히 숫자의 변화를 넘어, KT가 플랫폼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논의에서 사실상 배제될 수 있음을 뜻한다.

또 티빙과 웨이브 통합 OTT가 핵심 사업인 IPTV와의 충돌 가능성이 최근 부각되는 모양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5월 공개한 ‘2024년 하반기 유료방송 가입자 수 및 시장점유율’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KT의 '지니 TV'는 약 899만명(24.7%)의 가입자를 확보한 국내 유료 방송 시장 1위 사업자이며 이어 SK브로드밴드 678만명(18.7%), LG유플러스 554만명(15.2%) 순이었다.

그동안 KT는 OTT 열풍 속에서도 국내에는 ‘유선 해지(코드 커팅)’의 징후가 약하다고 보고 티빙을 KT 통신 및 IPTV 상품과 결합해 가입자 유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통합 OTT가 출범하면 IPTV 가입자가 감소하는 등 보완이 아니라 대체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KT가 자세를 바꿔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있는 대형 OTT 탄생을 위해 티방과 웨이브의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적자 상황인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을 하면 비용을 줄이고 구독자를 늘려 효유성이 좋아져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두 합병 법인이 (넷플릭스의 공세를) 버틸 수 있을 때 합의를 해 주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조영신 동국대 영상대학원 대우교수는 ‘티빙-웨이브 통합, 국내 OTT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묻다’ 기고문을 통해 “KT의 반대로 합병이 최종 무산된다면 이는 단순히 '거대 토종 OTT'의 탄생이 좌절되는 것을 넘어 국내 영상 산업이 넷플릭스 외엔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처해진다”며 “KT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 즉 자사의 이익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체를 조망하는 대승적 결단을 촉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미디어콘텐츠 업계 또한 대형화해야 글로벌 OTT 사업자와 경쟁이 가능하다”며 “넷플릭스 자본 크기가 너무 큰 만큼 이에 맞서려면 규모를 키워 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