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조훈현(이병헌)은 1980년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응창기배 세계 바둑대회에서 세계 최정상 섭위평을 꺾고 우승한다. 그는 일본과 중국의 높은 벽에 가려 바둑계 변방에 머물던 한국을 단숨에 세계 최강국으로 끌어올렸다.

전국에 바둑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그는 스스로 바둑의 신과 대결해도 이길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이 충만했고 더는 천하에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 조훈현은 스승 세고에 겐사쿠에게 '답이 없지만, 답을 찾는 것이 바둑'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만큼 바둑의 길이 고독하고 험난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9세 최연소 입단 기록을 가진  조훈현은 자신에게 바둑을 배울 제자 또한 천재가 아니면 안 된다는 확고한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이창호(유아인, 아역 김강훈)가 나타난다. 조훈현은 프로 기사들조차 단숨에 물리치는 기세의 총명함을 지닌 이창호가 자신이 찾던 바둑천재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이 원석을 갈고 닦으면 과연 어떤 보석이 될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첫 번째 큰절을 받고 제자로 자신의 집에 들인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누굴 가르칠 인성은 못 된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아왔던 조훈현이었다. 이창호는 그런 스승 조훈현의 내제자로서 한 지붕 아래에서 먹고 자며 매몰차고 혹독한 바둑수련을 이어나간다.  

제자 이창호를 최고로 키워내겠다는 조훈현의 욕심은 너무나도 컸다. 흉내바둑을 두지 말라는 스승 조훈현의 엄한 다그침 속에서 이창호에게서는 어릴 적 당돌함과 자신감 넘치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다.

과묵해진 이창호는 자신만의 기풍을 찾아내지 못한 채 답이 없는 바둑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때 조훈현의 라이벌 남기철(조우진)이 던진 '배우려고만 하지 말고, 스승을 이겨보라'는 한마디에 절치부심한 이창호는 스승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바둑을 묵묵히 완성해 나간다.

드디어 조훈현과 이창호의 첫 사제 대결이 펼쳐진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조훈현은 제자 이창호에 의해 바둑 왕좌에서 끌어내려 진다. 충격에 빠진 조훈현은 그토록 바라던 최고가 된 제자 이창호의 모습을 보며 기뻐할 수 없었다. 패배의 고배를 마시며 처량하게 주저앉은 조훈현.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승부수를 던지며 최고의 왕좌에 오른 제자 이창호에게 도전한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바둑은 호구, 묘수, 활로, 포석, 자충수 등 다양한 용어가 일상생활에 알게 모르게 사용될 만큼 동양권에서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보드게임 스포츠다. '보안관'(2017)으로 데뷔한 김형주 감독의 '승부'는 스승과 제자의 치열한 승부라는 관전 포인트에 방점을 찍고 있는 작품이다.  

바둑의 본질은 전투와 공격이라면서 화려하고 강한 속공 바둑을 두는 조훈현과 모든 경우의 수를 분석해 장고 끝에 한땀 한땀 신중한 수를 두는 돌부처 이창호. 두 바둑천재가 벌이는 극과 극의 기풍 대결은 정적인 보드게임에서 벗어나 스포츠물과 스릴러 영화의 장점을 균형 있게 조합한 바둑 액션으로 구성됐다.

무심(無心)과 성의(誠意)의 격돌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단단한 연기력에는 빈틈이 없다. 조훈현 역의 이병헌은 정중동의 치열한 내면 감정을 폭발시키며 자존심 강하고 올곧은 바둑천재의 모습부터 국민적 영웅의 인간 냄새나는 옹졸하고 나약한 일면까지 다층적 연기 스펙트럼으로 표현해낸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유아인은 돌부처 이창호의 우직하고 무게감 있는 기풍을 재현하면서 이병헌의 뜨거운 감정 연기를 받아내 때로는 투박하게 때로는 차갑게 비워 낸다. 어린 창호를 연기하는 김강훈은 또랑또랑한 연기 톤으로 성인 연기자들에게 조금도 지지 않는 캐릭터를 구현해 일 인분 이상의 몫을 해내며 극 서두에서 유머와 재미를 책임진다. 

정미화 역을 맡은 문정희는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왕좌를 놓고 격돌하는 남편 조훈현과 아들이나 다름없는 이창호의 아이러니한 관계 사이에서 강단 있는 동반자 역할을 맡아 두 사람의 성장을 돕는다. 여기에 천승필 역의 고창석, 이용각 역의 현봉식 그리고 조훈현의 인생 맞수 남기철 역으로 특별출연한 조우진이 각자 완벽한 연기 내공을 발휘하며 극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조우진은 짧은 출연 분량 속에서도 조훈현과 이창호 모두의 조력자로 활약하며 담백한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시대상을 그대로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한 미술, 소품, 의상, 공간 등 프로덕션에 공들인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지도기는 픽션을 가미한 치열한 감정 액션 신이 돋보이는 명장면이다. 두 사람의 대국 장면은 격한 감정을 담은 섬세하고 느린 템포의 첫 번째 대결과 승부에 초연해진 둘이 바둑을 즐기는 두 번째 대결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스포츠 중계를 보는 듯한 촬영과 음악으로 몰입감 높은 장면들이 연출된다. 

다만, 김형주 감독의 설명대로 바둑을 몰라도 문제없이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맞지만, 바둑판 위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수 싸움의 재미를 놓칠 수 있는 부분은 이 영화의 단점일 수 있다.  

출람지예(出藍之譽)의 이창호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조훈현이라는 드라마틱한 실화의 사제관계를 잘 짜인 각본과 담백한 연출을 통해 완성해낸 웰메이드 작품이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승부' ⓒ바이포엠스튜디오

 

제목: 승부

감독: 김형주

각본: 김형주, 윤종빈

출연: 이병헌, 유아인, 조우진,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김강훈 외

제공/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제작: 영화사월광

공동제작: BH엔터테인먼트

러닝타임: 114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5년 3월 26일

스크린 리뷰 평점: 7.5/10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