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대한민국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 박정은 씨. 
▲ 박정은 씨. 

대학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노비보다 공노비가 낫다.’라는 말이 유행하곤 했다. 급여가 많지만 업무강도가 높고 불안정한 사기업의 샐러리맨 보다는, 급여는 다소 적더라도 여유있고 안정적인 공무원(혹은 공기업)이 낫다는 뜻이다. 이는 사회적 안전망의 점진적 붕괴로 쉽게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을 추구하지 못하는 청년층의 무력감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또 다른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노비’도 ‘공노비’도, 결국 ‘노비’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대선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공약 이행 여부에 가장 민감한 공약을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대변되는 ‘81만 개 일자리 공약’일 것이다. 이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세계적 불황으로 기업들이 투자가 어려울 때, 이러한 공공일자리 정책을 통해 국가가 실업률을 감소시키고 청년층을 안정시키는 것이 내수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어, 결과적으로 경제적 선순환을 이끌어 낼 것이라 관측한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일자리의 지속성과 효율성을 지적하며, 유연한 고용 등 다양한 제도로 뒷받침 된 민간 차원의 고용만이 결국 건전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주장은 과거 경제 위기가 올 때 자주 거론되던 ‘적극적 국가’와 ‘소극적 국가’를 떠올리게 하는데, 역사적으로는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 시행과 영국의 복지병으로 인한 부작용이 각각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일자리에 대한 시선’이 간과하는 것은 바로 일자리 자체를 늘리는 것이 타개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노비’도 ‘사노비’도 결국 ‘노비’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듯이, 문제의 해결은 고용 자체가 아닌 ‘고용의 질’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미하는 고용의 질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고용 안전성, 적절한 급여, 양호한 복지 혜택, 쾌적한 근로 환경 등의 요소 중 하나로 치환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내포하는 의미이다. 즉, 고용의 질이 의미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인 셈이다. 1차 산업인 농업, 2차 산업인 공업, 3차 산업인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산업의 발전은 점차 인간의 단순한 육체 노동력 보다는 인간의 존재가 지닌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다. 

아직 명확하게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인공지능과 IT로 대변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또한, 인간의 잘 설계된 정신세계의 산물인 것이다. 이는 현재 세계 경제가 실물 경제와 그에 못지 않게 거대한 시스템인 ‘금융’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실체 없는 금융이 실물 경제에 기반하였으나 그 이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듯이, 인간의 가치 역시 처음에는 노동력에 기반하였으나 현재는 그 이상으로 큰 의미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서는 인간의 ‘수’가 가지는 의미보다는 인간의 ‘존재’가 가지는 의미와 인간 사회가 만드는 문화와 시스템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인본주의 사회’가 될 것이므로, 앞으로 모색될 ‘고용 절벽 시대 일자리 창출 방안’과 ‘고용의 질 향상’은 인간 사회의 부가가치 창출과 그 바탕이 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고용의 주체는 더 이상 기업이 아닌 개인이 되어야 한다. 소수의 주주가 거느린 실체 없는 ‘기업’을 위한 고용이 아닌, 집단이 되어 일하는 각 개인을 위한 고용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노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오직 존중받는 개인들을 위한 국가가 존재할 뿐이다. <박정은, 부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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