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 개혁 필수" 지적 잇달아
[SRT(에스알 타임스) 안병용 기자] 국내 대기업 7곳이 향후 5년간 800조원을 국내에 투자한다. 정부가 미국발 관세 영향으로 수개월간 지속된 경영 불확실성을 한꺼풀 벗겨내자, 이를 고용과 미래 산업 강화 등 성장 동력을 끌어올리려는 행보다. 주요 기업들이 ‘경제활성화’라는 묵은 난제를 푸는 키맨으로 활약할 지 주목된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향후 5년간 연구·개발(R&D)를 포함해 450조원을 투입한다. 승부수는 주요 계열사들의 추가 사업장을 해외가 아닌 국내에 설치하는 방안이다. 평택캠퍼스 5라인(P5) 공사 재개에 약 60조원을 투자하는 삼성은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세웠다. 또 삼성SDS는 전남에 국가 AI컴퓨팅센터를, 구미엔 AI데이터센터를 배치한다. 삼성전자는 공조기기 생산라인을 광주에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SDI는 울산에 전고체 배터리 라인을 추진하고, 삼성전기는 부산에서 설비 및 투자 확대에 나선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전날 이재명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국내 산업투자와 관련해 우려가 있으나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고용 계획에 대해선 “향후 5년간 매년 6만명씩 채용할 것”이라고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30년까지 총 125조원을 집행한다. 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다. 현대차는 인공지능(AI)·로봇 산업 육성과 그린 에너지 생태계 발전에 초점을 맞췄다. 전체 투자액의 70% 이상인 89조원이 AI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로봇, 수소 등 미래 기술에 배정됐다. AI 데이터 센터와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 설립, 로봇 제조·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조성 등 완성차 경쟁력의 기반을 다지는 구상도 세웠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면서 “내년에는 1만명 채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SK그룹은 2028년까지 128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600조원대 투자가 이뤄진다. 최근 메모리반도체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용인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추가 투자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소부장 테스트 플랫폼 ‘트리니티 팹’을 공동으로 구축 중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용인 팹(공장)에만 600조원 투자가 이어지는 등 예상 비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LG그룹은 향후 5년간 100조원을 투자한다. 이 중 60조원을 소부장 기술 개발과 확장에 투입한다. 이를 위해 협력업체에 설비 자동화, AI 노하우를 전수할 계획이다.
구광모 LG 회장은 “협력사 역량도 함께 올라가야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D현대와 한화그룹은 조선과 방산 분야를 중심으로 각각 15조원, 11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에너지·로봇 분야와 조선·해양의 디지털 전환에 각각 8조원, 7조원을 투입한다.
한화그룹은 미국 필리조선소에 약 7조3000억원(5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신규 조선소 건설도 추진 중이다.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은 “미국 조선 시장에 대한 투자는 국내 생산 기반이 미국으로 이전하는 게 아니다”라며 “한화해운이 필리조선소에 발주한 선박의 경우 설계부터 핵심인 기자재까지 선박 가격의 약 40%가 국내에서 공급된다”고 강조했다.
한화는 이번 투자로 협력업체 매출이 2024년 9조원에서 2030년 21조원으로 2.3배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여승주 부회장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을 끌어내는 등 이번 관세 협상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를 했던 필리조선소에 만족하지 않고 추가적인 미국 투자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아울러 2030년까지 협력사 매출을 2배 이상(21조원) 성장시키겠다고 제시했다.
셀트리온은 약 4조원의 투자 방침을 밝혔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투자금을 송도·오창·예산에 투입해 생산 능력을 확충하고, R&D 비용을 1조원 규모까지 늘릴 방침이라고 전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국내 투자의 상당부분이 헬스케어 AI에 투입된다”고 말했다.
다만 7개 기업의 800조원 투자 계획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규제 개혁이 필수 과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계는 인허가와 금융, 노동 등에서 족쇄 역할을 하고 있는 각종 규제를 한국 경제의 저성장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실제 SK하이닉스가 2019년 발표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은 환경영향평가 등 다양한 규제가 중첩돼 어려움을 겪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투자가 위축돼 제조업 공동화 우려가 심해지고 있다”면서 “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의 생산 기반을 강화하려면 정부의 규제 개혁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