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 점유율 둔화, 미래에셋 하락·한투 소폭 개선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국내 증권사들이 해외 전략의 중심축을 아시아 신흥국으로 옮기고 있다. 한때 미국·영국·홍콩 등 선진시장에 집중됐던 해외 진출은 이제 인도·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성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이동 중이다. 빠른 인구 증가와 금융 인프라 확충, 모바일 트레이딩 확산이 맞물리며 신흥 아시아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부상했다.
이 가운데 베트남은 인구 1억 명의 내수시장과 빠른 디지털 전환을 기반으로 한국 증권사들의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 개방과 외국인 투자 완화 움직임 속에 브로커리지(위탁매매)에서 IB(투자은행)·WM(자산관리)로 사업 영역이 확장되고 있지만, 경쟁 심화와 환율 변동, 제도 개편 지연 등 리스크도 공존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해외점포 중 아시아 지역 비중은 69.6%로 가장 높다. 동남아시아만 놓고 보면 36.7%로, 중국(9.6%)·인도(6.4%)·홍콩(5.3%)보다 압도적이다. 특히 베트남은 한국 증권사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공을 들이는 시장으로, 이미 주요 대형사들이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미래에셋증권 베트남(MAS)과 한국투자증권 베트남(KIS)은 호찌민거래소(HoSE)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어 ▲NH투자증권(NHSV) ▲KB증권(KBSV) ▲신한투자증권(SSV) ▲한화투자증권(Pinetree Securities) 등도 각각 리테일·IB·디지털 중개 등 영역에서 기반을 다지고 있다.
다만 시장 내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HoSE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베트남 증권사 상위 10곳이 전체 거래의 69%를 차지했으며, 현지계 VPS증권(17.05%)과 SSI증권(11.1%)이 절대 강자로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도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미래에셋증권 베트남의 점유율은 하락세다. HoSE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 베트남 증권시장 점유율을 보면,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지난해 전체 시장 점유율이 4.54%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3.74%로 0.8%포인트 하락했다. 2023년 상반기 5.9%에서 5.16%로 떨어졌던 전례를 감안하면, 경쟁 격화 속 성장세가 둔화된 모습이다.
한국투자증권 베트남 법인은 지난해보다 점유율이 0.2%포인트 높아진 3.16%를 기록하며 소폭 개선 흐름을 이어갔다. 그러나 시장 전체로 보면 여전히 현지계 VPS증권(17.05%)과 SSI증권(11.1%)이 선두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 한국계 증권사들은 중상위권 방어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여기에 더해, 올해 상반기 실적에서는 베트남 법인들의 수익성이 지난해 상반기 보다 일제히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투자증권 베트남 법인의 올해 상반기 영업수익은 약 63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9% 감소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12억원의 흑자를 냈던 총포괄손익은 마이너스(-)230억원으로 돌아서며 적자로 급전환했다.
NH투자증권 베트남 법인은 영업수익이 27% 늘었지만, 순이익은 4억7,000만원에서 3억8,000만원으로 약 19% 감소했다. 총포괄손익은 약 97억원이 줄며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됐다. SSV는 영업수익이 3% 늘었음에도 순이익이 35% 가까이 감소, 총포괄손익은 73억원 흑자에서 110억원 적자로 바뀌었다.
KB증권 베트남 법인은 하락 폭이 더 컸다. 영업수익이 전년 대비 33.9% 줄었고, 순이익도 절반 가까이마이너스(-)48% 감소했다. 총포괄손익은 146억원 흑자에서 마이너스(-)205억원 적자로 급감했다.
신한투자증권의 베트남 법인도 실적이 전년 대비 주춤했다. 2025년 상반기 영업수익은 172억2,900만원으로 전년 동기(167억2,100만원) 대비 3%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40억9,400만원에서 26억7,500만원으로 34.6% 감소했다. 특히 총포괄손익이 73억3,600만원 흑자에서 마이너스(–)110억2,500만원으로 돌아서며 적자 전환했다.
반면 한화투자증권의 베트남 법인은 예외적이었다. 영업수익이 11% 증가했고 순이익도 38% 늘어 소폭 개선세를 보였다. 다만 총포괄손익은 31억원 흑자에서 마이너스(-)7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업계에서는 총포괄손익 적자를 곧바로 '영업부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총포괄손익은 참고용 손익일 뿐, 실제 영업 성과를 의미하는 지표는 아니다. 총포괄손익은 '당기순이익+기타포괄손익'으로 구성되며, 해외사업장의 경우 대부분 기타포괄손익이 마이너스로 반영된다"며 "이는 원화 환전을 통한 해외투자 이후 환율 변동으로 발생하는 재무제표 환산손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손실은 사업장을 청산하기 전까지는 실현되지 않는 회계상 손익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운영 중인 해외법인의 실적 비교에는 큰 의미가 없다"며 "특히 올해는 베트남 증시 호조로 영업 성과가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베트남 대표지수(VN-Index)는 2025년 들어 연초 대비 약 30% 상승해 동남아 시장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증시 호조에도 불구하고 회계상 손익이 악화된 것은 원화 강세와 환산손실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김인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베트남 증시는 최근 미-중 갈등 심화 국면에서도 글로벌 증시 대비 견고한 흐름을 보였다"며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이에 대한 미국의 맞대응 조치로 지정학적 불안이 급격히 확대되며 글로벌 주요 지수가 대부분 조정을 받았지만 베트남 증시는 같은 기간(10/9~10/14) 2.6% 상승하며 차별적 강세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형과 별개로, 구조적 리스크는 여전히 잠재돼 있다.
베트남은 외국인 투자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환율 변동성과 규제 리스크가 상존한다. 외국인 자금 유출입 속도가 빠르고, 금융당국의 일시적 규제 강화 시 시장 유동성 위축 가능성도 거론된다. 고금리 기조와 부동산 부채 부담이 겹치며 변동성이 확대되는 점도 부담이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베트남 주요 주가 지수는 지난 20일 4월 세계 시장 매도(Global Sell-off) 이후 가장 큰 일일 낙폭인 5.5% 하락을 기록했다.
이는 2015년부터 2023년까지 발행된 462조 동(약 170억 달러) 규모의 국내 회사채에 대해 정부 감사원(State Audit Office)이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한 이후, 시장 내 부실 채권 및 회계 불투명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유엔개발계획(UNDP)은 최근 보고서에서 "대미(對美) 관세 강화 시 베트남 수출 손실이 연간 최대 25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상 대외 변수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한국 증권사들의 베트남 법인 역시 단기 수익보다 리스크 관리 중심의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베트남 시장은 단기적으로 환율·유동성 등 거시 변수에 흔들릴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금융산업 성장성과 내수 확장성이 가장 높은 신흥시장 중 하나"라며 "단기 실적보다는 현지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강화해 '로컬 플레이어'로 자리 잡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