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바람이 전세계적으로 거센 가운데 'K푸드' 또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음식의 맛을 결정짓는 숨은 주역이 있다. 바로 ‘K소스’다. 단 한 방울만으로도 음식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여기에 소주와 막걸리 등 ‘K술’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한 잔에 담긴 흥과 정취는 한국인의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다. K소스와 K술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지금, 관련 업계의 글로벌 경쟁력과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SRT(에스알 타임스) 박현주 기자] 소스는 음식의 맛을 크게 좌우한다. 단 몇 방울만으로도 음식의 향과 풍미를 단숨에 바꿔놓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음식 속에 스며드는 특성 탓에 존재감이 종종 간과되기 쉽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K푸드 열풍 속에서 ‘K소스’의 위상은 점점 커지고 있다.
3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고추장·쌈장·매운맛 소스·불고기 소스 등의 수출액은 2억2,800만달러(약 3,2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8%가 늘었다. 이는 전체 농식품 수출액(51억6,000만달러·약 7조원) 증가율인 8%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같은 기간 수출 1위 품목인 K라면(24% 증가)·K아이스크림(23% 증가)에 이어 소스류가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며 식품 수출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K소스는 단순한 양념을 넘어 우리 고유의 발효 전통을 담고 있는 K푸드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최근에는 제조 기술과 브랜딩이 결합해 해외 소비자 입맛에 맞춘 현지화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글로벌 유통망을 타고 외연 확장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단 몇 방울로 K푸드의 향과 맛을 좌우하는 K소스는 그야말로 ‘숨은 주역’이라 할 만하다.
◆CJ·대상·동원·삼양식품·샘표…K소스 수출 ‘동반 성장’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의 K소스 수출이 일제히 성장세를 타고 있다. 전통 장류부터 테이블·퓨전 소스까지 다양한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실적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소스 해외 매출이 전년 대비 10% 이상 늘었고, 수출국도 약 60개국으로 확대했다. 전통 장류뿐 아니라 편의형 쿠킹소스, 테이블탑 스퀴저블 소스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며 B2B(기업간거래)와 B2C(기업과소비자간거래) 전 채널에서 저변을 넓히고 있다.
대상은 지난해 소스 수출 약 580억원으로 2018년 대비 약 80% 증가했다. 500여 종 라인업을 40여 개국에 수출하며 전통 장류부터 서구 타깃 소스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삼양식품 소스사업부는 2021년 매출 213억원에서 지난해 431억원으로 3년 만에 두 배 성장했다. 지난해 소스 수출액은 259억원으로 전년 대비 61% 증가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252억원을 기록해 이미 전년 연간치에 근접했다.
샘표는 70여개국에서 요리에센스 ‘연두’와 고추장이 성장을 이끌었다. 최근 3년간 연두의 연평균 성장률(CAGR)은 약 20%, 고추장은 약 30%에 달한다.
동원홈푸드는 국내 B2B 조미식품 시장 1위를 기반으로 한 ‘비비드키친’ 매출이 매년 두 배 이상 성장하고 있다. 최근 호주로 소스 수출을 시작했고, 미국 시장 진출도 확정했다.

◆K소스 인기 비결은 “K푸드 열풍 + 현지화”
식품업계는 K소스 인기가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높아진 K푸드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K소스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글로벌 입맛에 맞춘 현지화 전략이다.
된장·고추장·쌈장 같은 전통 장류와 김치 양념, 젓갈 등은 발효식품의 정수라 할 수 있지만, 외국인에겐 종종 강한 냄새와 맛이 부담이 된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해외 소비자를 겨냥해 맞춤형 소스를 개발하며 현지화를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감칠맛’과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K소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한다. 발효와 숙성은 썩음과 한 끗 차이일 만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공정이다. 식품기업들은 이를 강점으로 삼아 국가별 소비자가 선호하는 맵기·단맛·향, 그리고 디핑(찍어먹는)·드리즐(부어먹는)·바르는 방식 등 다양한 취식 패턴에 맞춰 소스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튜브형 고추장과 K-BBQ 드리즐로 미국의 디핑·드리즐 문화에 대응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고기양념장에 쯔란·흑후추를 가미해 고기를 재는 용도가 아닌 볶음용 소스로 포지셔닝했고, 일본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좋아하는 닭갈비 양념 야키니쿠 문화에 맞춘 ‘바르는 소스’로 호응을 얻고 있다.
샘표는 ‘유기농 고추장’을 통해 감칠맛은 살리면서 저염·부드러운 매운맛을 구현했고, 유기농·글루텐 프리를 결합해 글로벌 건강 트렌드를 반영했다. ‘연두’도 건강, 친환경, 동물복지 등 세계적인 트렌드를 담아 100% 콩 발효로 순식물성이면서 고기와 같은 깊은 맛을 내 인기를 끌고 있다. 특유의 향이나 강한 맛 없이 요리의 맛을 끌어올리며 호평받고 있다.
대상은 테이블 소스형 고추장 5종(오리지널·덜 매운·떡볶이·비빔밥 등)과 김치 스프레드(발라먹는), 시즈닝(뿌려먹는) 제품으로 현지 사용성을 강화했다. 또, K푸드 열풍의 주역인 떡볶이의 글로벌 인기를 반영한 ‘떡볶이 소스’를‘ 핵매운고추장’, ‘로제’, ‘간장’ 등 3종으로 선보이고 있다 .떡볶이 떡은 물론 파스타면, 뇨끼 등을 활용한 요리에도 폭넓게 활용할 수있어 출시 후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삼양식품은 불닭 IP를 활용해 챌린지를 전개해 글로벌 Z세대와 문화적 연결을 강화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불닭볶음면의 액상스프만 따로 판매해달라는 소비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2018년 12월 불닭소스를 정식으로 출시한 이래 매운맛 스펙트럼을 까르보·핵불닭소스 등으로 확장해 소스 시장 카테고리를 넓힌 것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기업별 K소스 차별화 전략은
기업들은 발효기술, 브랜드 파워, 건강 지향성, B2B 경쟁력을 무기로 차별화를 꾀하며 K소스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발효 차별화 기술을 앞세워 K소스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新)발효·표준화 기술을 적용해 다양한 글로벌 메뉴에 활용할 수 있는 ‘만능 김치요리용 소스’를 선보였다. 김치 글로벌화의 난제로 꼽히던 맛 변동과 보관 불편을 해결하며 실온 18개월 보관이 가능한 표준 품질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또 베트남에서는 발효 기술을 기반으로 한 테이블탑 핫소스 ‘핫장’을 생산하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CJ제일제당의 강점은 B2B 역량에도 있다. 회사는 B2B-B2C 선순환 구조 확립에 주력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현재 영국의 세인즈버리스·모리슨스, 스웨덴의 ICA, 미국의 월마트·타깃 등 주요 메인스트림 유통망에서 존재감을 강화하고 있으며, 베트남 ‘핫장’은 빅C·롯데마트 입점과 함께 유럽·태국 수출로 외연을 확대 중이다. 영국에서는 퀵서비스 레스토랑 체인 잇슈(Itsu) 80여 개 매장에 쌈장을 공급하며 현지 요리에 활용되고 있는데, 최근 5년간 한식 레스토랑 수가 3배 가까이 늘어난 점이 B2B 수요 확대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양식품의 경우 ‘불닭’ 브랜드 파워가 강하다. 매운맛 IP를 소스로 확장해 2023년 국내 핫소스 시장 매출 1위를 차지했다. 글로벌 페스티벌·SNS 캠페인으로 MZ세대를 집중 공략하고 있다. 최근 미국 최대 중식 레스토랑 판다 익스프레스(Panda Express)와 불닭소스 한정 메뉴 협업, 중국·인니 외식 프랜차이즈와 콜라보 메뉴 확대 등으로 글로벌 침투를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만두 프랜차이즈를 통해 출시한 ‘불닭소스 완탕면’, 인도네시아 레스토랑 ‘파스타리아’의 ‘스파게티 삼양 까르보나라’ 등이 대표적이다.

대상은 69년간 축적해온 발효 기술과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청정원을 통해 전통 장류부터 드레싱, 굴소스, 파스타 소스까지 폭넓게 선보이고 있다. 특히 김치 스프레드와 K-BBQ 소스를 앞세워 미국과 유럽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비건·할랄 인증을 획득한 점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할랄 인증을 받은 대상의 장류는 동남아시아 등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해 전체 할랄 장류 수출액은 2020년 대비 약 190% 증가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샘표는 연두, 유기농 고추장, 완두 간장 등 순식물성 발효 제품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연구소와 컬리너리 스튜디오를 연계해 레시피 개발을 강화하고, 글로벌 박람회에서 수상 실적도 확보했다. 예컨대 글루텐 프리(Gluten free), 비건(Vegan), 논지엠오(Non-GMO, 비유전자변형)로 글로벌 푸드 트렌드에도 부합하는 완두 간장은 독일 쾰른에서 열린 글로벌 식품박람회 ‘아누가(Anuga) 2023’에서 ‘혁신 제품(Anuga Taste Innovation Show Winner)’으로 선정됐다.
동원홈푸드는 B2B 1위 지위를 바탕으로 ‘비비드키친’을 앞세워 대형 외식 프랜차이즈와 소비자 시장을 동시에 공략한다. 호주와 미국으로 수출 저변을 확대하며, 생산라인 증설로 물량 대응까지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아산과 충주 공장에 각각 1개 생산 라인을 추가로 도입했고, 내년 2월 가동을 목표로 생산 라인 1개를 증설 중이다. 이를 통해 올해 비비드키친 소스 생산량은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세계로 뻗는 K소스’…세계인의 일상식 목표
K소스가 교민시장을 넘어 글로벌 메인스트림 유통망에 진입하며 세계인의 ‘일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소스·조미료 시장 규모는 약 456억달러(64조 원)로 전망되며, 오는 2030년에는 595억달러(83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K컬처 열풍을 등에 업은 K소스는 구조적 성장 궤도에 오른 가운데 제품·채널·브랜딩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느냐가 중장기 성장의 핵심으로 꼽힌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앞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현지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전략 채널에 집중해 K소스 인지도를 넓히겠다”며 “B2B 컬리너리 솔루션과 메인스트림 유통 확대를 연계해 B2B-B2C 선순환 구조를 구축, K소스를 세계인의 일상식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삼양식품은 편의점·마트·면세점 등 다채널 전략으로 ‘불닭소스’ 1,000억 브랜드화를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은 “B2C와 B2B를 동시에 공략해 글로벌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불닭소스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상·샘표·동원홈푸드 역시 비건·할랄·글루텐 프리 제품 확대와 생산 거점 확보, 글로벌 메인스트림 채널 입점 확대를 통해 시장 영향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글로벌 트렌드와 소비자 니즈를 반영한 K소스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권역별 생산기지와 전략 채널을 통해 글로벌 시장 입지를 넓혀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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