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선 현대차 회장, 전략 자금 확보 제동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정 회장이 대규모 지분을 보유한 핵심 비상장 자회사들의 기업공개(IPO) 일정이 줄줄이 지연되면서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이 약 22% 개인 지분을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풋옵션 계약이 다음달로 다가온 가운데 사실상 상장이 무산됐다. 이에 더해 약 11.7% 지분이 있는 현대엔지니어링마저 상장이 무기한으로 지연돼 이들 모두 전략적 자산으로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상장 연기에 적자까지...보스턴다이내믹스 '골치'
현대차그룹은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할 당시 '4년 내 상장' 조건을 걸고 소프트뱅크와 풋옵션을 맺었다. 만약 2025년 6월까지 상장시키지 못하면 소프트뱅크그룹의 잔여 지분을 매입해 줘야한다.
앞서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인수를 위해 현대차그룹 계열사가 60%, 정의선 회장 개인이 20% 지분을 매입했다. 정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2억2,000만 달러(약 2,400억원) 규모의 개인 사재를 투입했다. 정 회장이 최대 지분(11.72%)을 쥐고 있는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이 연기된 만큼 보스턴다이내믹스 IPO(기업공개)는 그룹 차원에서 사활이 걸린 과제다.
상장 예정일은 당장 다음달로 다가왔지만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을 위한 주관사 선정 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앞서 이승조 현대차 기획재경본부 부사장은 올해 초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기업공개(IPO) 계획에 대해 "오픈 마인드로 검토할 것"이라면서도 "현 시점에서는 검토한 내용도 없고 짧은 시간 내에 검토할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 역시 "보스턴다이내믹스 IPO와 관련해서는 일정이나 계획이 확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20% 지분을 인수해야 한다. 문제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인수 이후 기대만큼 실적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지난해 지분법손실 약 674억원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250억원의 손실을 냈다. 특히, 지난해 말 회사는 '현금 부족'의 이유로 전체 직원의 5%에 해당하는 45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최근 나스닥 상장 기준도 까다로워져 향후 상장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나스닥 증권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나스닥 상장 규정 변경안을 제출했다. 해당 변경안은 ▲공개 보유 주식의 해당 시장 가치 ▲OTC 시장에서 상장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금액 증가 등 나스닥의 초기 상장 유동성 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성장 가능성도 '글쎄'다. 로봇 개발 회사인 만큼 주요 제품으로는 ▲4족 보행 로봇 '스팟'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물류 작업 자동화를 위한 '스트레치' 등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상용화가 이루어지기 까지는 멀었다는 분석이다.
테슬라 옵티먼스 프로젝트의 전 리더인 크리스 월티(Chris Walti)는 이달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와의 인터뷰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산업용 작업에 적합하지 않다"며 "대부분의 산업 작업은 반복적이고 속도가 중요한데, 단순한 로봇 디자인이 더 실용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승계 자금 확보 난항...지분 확보 '쩔쩔'
정의선 회장이 개인 최대주주인 비상장사 현대엔지니어링도 2022년 IPO가 무산됐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통해 약 4,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해 승계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약 11.7% 보유 중이다.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가 현대건설이나 삼성엔지니어링보다 높은 수준인 약 4조6,293억원으로 평가됐고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경쟁률이 50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성과를 보여 투자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결국 현대엔지니어링은 "보통주에 대한 공모를 진행해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했으나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제반 여건을 고려해 공동대표주관회사 등의 동의 하에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장외주식 주가도 이미 큰 폭으로 하락한 상태다. 전날 장마감 기준 현대엔지니어링 주가(기준가 기준)는 2만6,950원이다. 이는 사상최고가 140만원보다 약 98% 떨어진 수치다.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은 승계를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준비해 온 '핵심 수단'이었다. 정 회장은 과거 현대엠코 시절부터 지분을 축적했다. 2005년 현대글로비스로부터 261억원어치의 주식을 인수하고, 유상증자에 113억원을 출자하며 엠코 지분 25%를 확보했다.
이후 2008~2012년 동안 배당으로만 476억원을 챙겼고, 2014년 현대엠코가 현대엔지니어링에 흡수합병되면서 정 회장은 합병법인의 지분을 갖게된 것이다.
그러나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주택사업 확장과 경기침체 여파로 1조가 넘은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에만 ▲세종 고속도로 교량 붕괴 ▲평택·아산 현장 사망사고 ▲충남 아산 현장 추락사 등 3번이나 중대재해가 잇따르며 사실상 상장은 올해에도 물 건너 간 셈이다.
다음달 대선 역시 부담 요소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다. 현대차가 국내 제30대 대기업 집단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지 못한 상태인 만큼, 대선 이후 정부에서 압박이 들어온다면 정 회장의 간접 지배 효과가 사라지게 된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그동안 순환출자 해소,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 체제의 투명성 강화 등을 강조하며, 대기업의 편법적 지배 구조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0.33% ▲현대차 2.67% ▲현대글로비스 20.00%를 보유 중인데 실질적 지주회사인 현대모비스의 지분이 미미한 상태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1.4%와 현대제철 5.7% 등을 보유해 그룹 내 지배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그룹 장악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려야 한다.
이날 기준으로 현대모비스 주가가 25만원 선인 만큼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5% 확보하기 위해서는 1조 이상 10%를 확보하여먼 2조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이 정 회장에게로 증여나 상속이 된다면 지분 자산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상속세만 1조 이상이 발생되기 때문에 리스크도 크다.
증여세가 상속세보다는 세율이 낮아 정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등 지분을 정 회장에게 증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현재 정 명예회장의 건강 이슈와 실질적인 공식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기 때문에 증여 여부도 불투명하다.
실제 정몽구 명예회장의 건강 이슈는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 승계에 불안요소 가운데 하나다. 앞서 2024년 정 명예회장의 사망설 루머가 돌았을 때 단기적으로 현대모비스 주가는 장중 14.45%, 현대글로비스는 11.9%가 상승했다. 투자자들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루머였지만 장을 움직일 만큼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여부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한편 정 명예회장은 ▲현대모비스 7.3% ▲현대자동차 5.44% ▲현대제철 11.81% 등을 보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