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 “수년간 1위 전략산업”…법제화 목소리
[SRT(에스알 타임스) 윤서연 기자] 최근 정부가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 33조원 규모의 재정투자 확대 방안을 내놨다. 송전선로 지중화, 투자보조금 신설, 미니팹 구축, 기술보증 확대, 세액공제 상향 등 인프라부터 팹리스, 인재 양성까지 전방위적 지원이 이뤄진다. 반면 디스플레이 산업은 여전히 별도의 지원책 없이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디스플레이 산업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과 함께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돼 있지만 조세특례제한법상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에 대한 공통 세제 지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가 별도 특별법을 통해 세액공제율 인상, 인프라 지원, 기술 인력 육성 등 독립적인 정책체계를 갖춘 것과 달리, 디스플레이는 아직 단일 산업을 위한 전용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이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 디스플레이 산업에 적용되는 관련 법은 2023년 시행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조치법’이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모두 적용 대상이지만, 반도체는 최근 세액공제율 상향, 송전선로 지중화, 미니팹 구축, 고성능 장비 지원 등 구체적인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반면, 디스플레이는 추가적인 구체 실행 방안 없이 공통 수준의 법 적용에 그치고 있다.
산업보안 행정지원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가핵심기술 중 반도체는 11개가 지정돼 있는 반면 디스플레이는 2개에 불과하다. 국가첨단전략기술 항목 지정도 4개인 디스플레이는 반도체(8개)의 절반 수준이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기술 구조나 투자 규모 면에서 반도체와 유사한 산업임에도 지원 격차가 있다고 지적한다. 디스플레이 역시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수적인 장치산업이며, 주문형 생산 구조, 소재·부품·장비 의존도 등에서도 구조적 유사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근 LG디스플레이의 광저우 공장 매각에 더해 삼성, LG 등에서 신규 투자 검토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책적 기반이 없다면 투자 유치나 기술 확장에도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디스플레이는 한때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온 전략산업이며 대부분의 생산이 국내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절실하다”며 “중국은 정부주도의 ‘이구환신’(구형기기의 신제품 교체 지원) 정책으로 압도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는 만큼 격차를 좁히기 위한 실효성 있는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는 현재 ‘디스플레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다. 디스플레이협회는 기업들의 애로사항과 요구 사항을 산업부에 전달한 상태이며, 법제화를 위한 업계 의견 수렴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입법 일정이나 추진 로드맵은 마련되지 않았으며, 국회 차원의 논의도 본격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제도적 요구 사항 중에서는 세액공제율 상향 외에도 현행 10년인 세액공제 이월기한을 20년으로 연장하는 안 등이 거론된다. 연구개발 분야 지원도 절실하지만 당장 실효성 있는 정책 도입을 위해선 현실적인 지원책에 집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격차로만 버티기에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특히 중국의 ‘이구환신’ 정책도 국내 산업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디스플레이 패널 기업의 전체 매출은 전년 비 13.3% 증가한 442억 달러를 기록 했다. OLED 매출은 362억8,000만 달러로 15.1% 늘며 전체 매출의 82.1%를 차지했다. 글로벌시장 점유율은 33.1%로 중국에 이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OLED 시장과 LCD 점유율은 각각 67.2%, 10%다. 중국에 OLED 시장은 앞서고 있지만 LCD 시장은 뒤쳐진 상태다.
어느 정도 선방한 실적이지만, 업계에서는 중국이 정부 지원책을 업고 시장 공략을 지속할 경우 기술력으로만 방어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스마트폰용 OLED에서는 중국 저가 공세에 밀려 국내 기업 점유율이 62.8%로 하락했다.
디스플레이 소부장 업계 역시 피해를 체감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투자 위축이 공급망 전반으로 이어지면서 일부 중견 기업은 수익성 악화로 신제품 개발이나 공정 고도화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소부장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디스플레이 산업 위축으로 공급망 전반에 타격이 컸다”며 “반도체에는 전방위적인 정부 지원이 진행되고 있는데 디스플레이는 대응책조차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디스플레이는 대부분 국내에서 셀 공정이 이뤄지는 만큼, 타 산업 대비 국내 일자리 기여도가 높다”며 “반도체나 배터리처럼 글로벌 분산 투자도 많지 않아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17년간 세계 1위를 지켜온 산업이지만, 지금은 중국의 압도적인 정부 지원 속에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며 “조금만 정책적 지원이 따라주면 충분히 다시 1위를 탈환할 수 있는 분야인 만큼 전략적인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