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대와도 연결된 이야기”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 “의복은 모두 100년 전 다이쇼 시대의 것...새것 쓰지 않고 제작”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서민들의 분뇨가 농촌의 비료가 되고 작물로 자라나 우리의 식탁에 올라와 다시 분뇨가 되는 19세기 에도 시대 순환경제 사회에 주목, 지금껏 누구도 그린 적 없었던 분뇨업자 두 청춘의 삶을 순수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조명하며 유머와 재치, 시대적 고찰, 자연의 이치와 인생의 지혜, 여기에 낭만주의까지 모두 담아낸 웰메이드 연출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에서 영화 ‘오키쿠와 세계’를 연출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과 하라다 마츠오 프로듀서 겸 미술감독을 만나 이번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한국에는 여러번 오셨다.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오셨나.

서울국제독립영화제에 ‘빌리켄’(1996)이라는 영화로 처음 초청을 받았었고, 그 이후에는 부산 영화제에 ‘멍텅구리: 상처입은 천사’(1998)를 초청받아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DMZ다큐멘터리 영화제 트레일러를 맡기도 했었고 전주영화제에도 초청을 받았었습니다. 

‘얼굴’(1999)이 산세바스찬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갔는데 아시아 게스트로 한국에서 온 젊은 감독이 1명 있다고 해서 누군지 모른 상태로 식사요청을 해서 만났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났던 게 봉준호 감독입니다. 봉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로 초청을 받아 왔었습니다. 그뒤로 일본 시네카논이라는 회사가 ‘살인의 추억’을 수입배급하기 시작하면서 그때마다 한국 게스트분들이 일본에 오시면 식사 자리를 많이 가졌어요. 박찬욱 감독, 김지훈 감독, 이창동 감독, 정윤철 감독도 일본에서 뵈었습니다. 

한국과의 가장 큰 인연은 2002년에 개봉한 ‘KT’입니다. 로케이션 헌팅과 촬영 그리고 홍보를 위해 한국을 계속 방문했습니다. ‘어둠의 아이들’이 한국 개봉을 할 때 엣나인 대표님이 수입배급을 해주셔서 그 인연이 이번 ‘오키쿠와 세계’까지 이어졌습니다.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Q. 영화를 흑백으로 만드신 이유와 부분적으로 컬러로 연출하신 것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있나.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흑백 영화 찍어보고 싶다는 동경이 오랫동안 있었어요. 일본 영화계에서는 흑백 영화라고 하면 저예산 같은 느낌이 나서 그런지 기획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이번에는 독립 영화 같은 형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사 윗사람들의 간섭을 받거나 이런 일 없이 도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번에는 미술 감독을 겸하고 계시는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께서 4년 전에 사비를 털어서 단편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파일롯판으로 장편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서 자금을 마련을 하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단념을 했다가 또다시 3년 전에 단편을 또 사비를 털어서 만들었고 자금을 모으려고 했지만 역시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 영화는 시작했기 때문에 결국 완결된 작품이 계속 이어지는 단편집 같은 형식을 취하게 됐습니다. 

결국 영화계와 전혀 상관이 없는 곳에서 자금 조달을 하게 됐고 그렇게 해서 장편으로 완성됐습니다. 처음에는 1화 완결의 단편으로 완성이 됐었기 때문에 마지막을 좀 도드라지게 하려고 컬러를 삽입하게 됐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영화가 에도 시대의 분뇨와 관련된 순환형 사회를 주제로 삼고 있는데 저희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러한 순환형 사회라는 것이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뭔가 요구하고 있는 부분 그리고 뭔가 던져지는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대와도 연결된 이야기라는 것을 관객들이 알 수 있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모두 흑백으로 만들 경우에는 옛날 이야기로만 느껴지기도 하고 그냥 오래된 과거의 작품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현대와도 이어졌다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컬러를 넣게 됐습니다.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Q. 분뇨를 직접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쾌하게 여기는 관객도 있다.

이 영화는 분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분뇨를 불쾌하게 느낀다면 분뇨를 수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불쾌하게 느낀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저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는 정반대의 것이 됩니다. 천하게 업신여기는 분뇨 수거업자들이 굴하지 않고 자유를 갈구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러한 근간을 피해갈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고 정면에서 다루게 됐습니다.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진 일본 영화계에 뭔가 싸움을 걸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었습니다. 일본에 분뇨 투쟁이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나리타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학생과 노동자 중심으로 결성이 됐지만, 실제 피해 입은 것은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었습니다.

농민 중에는 경찰들과 싸우기 위해서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본인의 분뇨를 경찰들에게 던지는 황금 분뇨 투쟁이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도 일본 영화계에 이 분뇨 폭탄을 던지고 싶었던 거죠. 이 이야기를 지금 한국에 왔다고 하고 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일본에서도 인터뷰할 때마다 일본 영화계에 똥을 던지고 싶었다고 항상 얘기하고 있습니다.

Q. 어떤 매너리즘인가.

창작자들에게 매너리즘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조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지금 일본 영화계에서 많이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주로 시청률이 잘 나왔던 TV 시리즈물을 영화화하는 등 안전하게 흥행 수입이 보장이 돼 있는 것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스크를 피해가고자 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독립 영화라든지 아니면 오리지널 각본 작품들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감독들은 클라우드 펀딩에 의지를 하거나 직접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뛰어야 하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환경이라 피라밋의 정점과 가장 바닥에 있는 부분의 격차가 상당합니다. 그것이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매너리즘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불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Q. 에도 시대의 시대상을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에도 시대는 270년 간 이어졌던 시대라 아무시기여도 상관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에도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서구 열강의 압력에 의해서 쇄국 정책을 폈었던 일본이 세계의 강요에 의해 개국을 해야만 하는 그런 혼란스러운 동란의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민은 중앙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현실이었고 그런 점의 대비를 그려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서민들은 다들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시면서 눈치를 채셨을지 모르겠지만  문에 자물쇠가 없이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공동체적인 삶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태풍도 있고 불이 나고 자연재해가 많았었던 가운데 가난하지만 공동체에서 서로 돕는 생활형태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는 분명히 행복감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자원이 없기 때문에 분뇨도 재활용의 대상이 됐고 순환형 사회를 구축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나무 통이나 수레가 고장이 나면 수리를 해서 또 다른 형태로 쓰기도 하죠. 종이도 재생해서 사용했습니다. 자원이 없기 때문에 물건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낭비 없이 쓰는 시대였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그런 생활 방식을 보고 느끼는 부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낭비가 굉장히 많으니까요. 한국에서도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네요. 저도 어릴 때는 변소에 가면 신문지를 사용했습니다. (웃음)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오키쿠와 세계’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Q. 에도시대에는 수어가 없었을 텐데 표정과 움직임만으로 소통하는 방법이나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했고 어떤 형태로 영상화해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궁금하다.

당시 수어는 없었어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배우에게 맡겼던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썼던 대본에는 만약에 이때 목소리가 나왔다면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명기를 해놨어요. 

오키쿠는 아버지한테도 굉장히 도도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쾌활한 캐릭터였잖아요. 그래서 목소리를 잃었다고 해도 쾌활한 성격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본에는 주먹밥이 수레 바퀴에 깔려서 망가진 것에 대해 강하게 손짓발짓으로 표현을 한다며 오키쿠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의성어까지 써넣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에 깨닫게 된 것도 있을 것이고  변화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어떤 장벽처럼 느껴졌던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도 생긴 것이죠. 그중에 하나가 신분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Q. 쿠로키 하루는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나.

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하라다 프로듀서께서 쿠로키 하루 배우 이름을 말씀하시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앞서 한 번도 같이 일해본 적이 없는 배우지만, 하라다 프로듀서는 미술 감독으로서 같이 일해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배우라고 제안을 했기에 쿠로키 하루 배우를 전제로 대본을 쓰기 시작했었습니다. 쿠로키 배우의 어떤 부분이 훌륭한지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요. 연기를 할 때 평범한 사람의 생활 연기는 정말 어려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라면 아무래도 카메라가 앞에서 뭔가를 더 표현해야지 하는 부분이 있는데 쿠로키 배우 경우는 적극적으로 뭔가를 보여주려 하는 것 보다는 오히려 뭔가를 덜어가고 빼가는 그런 연기를 하는 타입입니다. 또 하나는 정말 이 시대의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연출을 하면서 시대성에 적응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탄했었습니다.

▲‘오키쿠와 세계’ 하라다 마츠오 프로듀서(왼쪽)와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오키쿠와 세계’ 하라다 미츠오 프로듀서(왼쪽)와 사카모토 준지 감독. ⓒ엣나인필름

Q. 자원을 재활용하는 제작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사카모토 준지: 그 부분은 미술 감독과 의상 감독을 겸하고 있는 하라다 프로듀서에게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라다 미츠오: 이번 영화에서 사용됐던 화장실과 세트는 새로운 재료로 쓰여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래된 낡은 재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제작을 했고 재활용 방식으로 제작을 했습니다. 공동주택 세트도 원래 촬영소 안에 기존에 있었던 건물들에 저희가 낡은 또 재료들을 가지고 와 더해서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또 모든 출연자들이 입고 있는 의복들은 100년 전 다이쇼 시대 기모노를 재활용했습니다. 옷감을 풀어서 그것을 다시 리사이클 해서 제작을 한 거죠. 쿠로키 하루 배우가 입고 있는 것도 엔틱 기모노입니다. 염색료도 친환경적인 식물성 염색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가능한 쓰지 않고 제작을 해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습니다. 

Q. 영화 속 에도 시대의 ‘세계’라는 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영화 제목에서의 세계라는 건 무슨 의미인지 답변 부탁드린다.

당시 에도 시대에 쇄국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웃의 조선, 중국이나 폴란드, 네덜란드와는 교역이 있었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서민들도 일본 밖에 다른 나라들과 다른 인종이 있다는 의식 정도는 있었을 겁니다. 근데 실생활에서 그것을  피부로 느낄 만큼의 상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세계라는 의식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거나 그런 상태는 아니고 막연하게 존재했을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에도시대 말에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있었을 겁니다. 서민들 사이에서 세계라는 어떤 구체적인 인식이나 그런 말은 당시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사계급에서는 적어도 서구 열강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당시 무사들 저택에 가보면 지구본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라는 의식은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세계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된 것은 아무래도 이 영화를 만들던 시기가 코로나 팬데믹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뉴스를 보면 세계 각국에서 공동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죠.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이 영화를 구상하고 시나리오를 썼기에 세계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제가 넣게 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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