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과 그 하수인들의 비리가 아니 미친 데가 없지만, 국민들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 하나가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관한 청탁의혹이다.

재벌의 계열사 합병 자체를 시비할 일은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조정을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계열사의 순환출자의 고리를 풀겠다는데 주주가 아니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삼성물산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무려 3000억원에 이르는 손실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국민연금이 어떤 돈인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노후에 쥐꼬리만한 연금이라도 받아서 살겠다고 맡긴 것이 아닌가. 한 푼이라도 늘려서 국민들에게 돌려줄 의무가 있다. 그런데 뻔히 손해날 것을 알면서도 재벌의 승계 놀음에 동참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에 합병 찬성표를 던진 이후, 최근 평가액으로 59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놓고는 전반적인 경제 불황과 경기침체 때문이지, 합병 때문은 아니라는 군색한 변명이나 하고 있다.

투자라는 것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측 불가능한 것도 아닌 뻔히 보이는 손해를 국민연금공단이 스스로 떠안은 것을 누가 납득하겠는가. 나중에 다시 주가가 더 많이 오를 것으로 판단해 합병에 찬성했다고 말할 텐가. 삼성이 장애인이나 소외층을 위한 사회적 기업이면 또 모르겠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국민들은 너그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SRI(사회적 책임투자)이니까.

국민연금의 합병찬성이 삼성이 최순실이 주무른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낸 204억원과 그의 딸 정유라에게 간 것으로 알려진 70억 원과 공교롭게도 겹친다. 검찰은 이 돈이 합병에 대한 대가성이 아닌지 수사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 이미 당시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소환조사를 받았다.

삼성은 대가성이 없다고 하지만, 당시 이례적인 절차를 거쳐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연금과 정유라 개인을 위한 특별지원 등을 감안하면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국민연금은 통상 외부민간 자문기구인 주식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의 견해를 구해 의결권 행사의 방향을 정해왔다.

그런데 이 합병만은 내부투자위원회의 결의만으로 찬성했다. 삼성이 최씨 등에게 돈을 준 것도 합병 전후인 지난해 2월과 7월 이재용 부회장이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였다. 만약 최순실의 요청을 받은 청와대의 개입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밝혀내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회도 이 문제를 어물쩡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어이없는 것은 이런 국민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파헤치는데 거부감을 보인 새누리당이 국민적 비판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뒤늦게 2차 청문회에 국민연금과 삼성 측 증인을 추가로 채택하는 것에 동의했다. 새누리당은 지금 나라가 어떻게 해서 이 꼴이 됐는지 모른다는 것인가. 국민 편인가, 아니면 재벌과 썩은 청와대 편인가.

 이런 추악한 정경유착의 고리부터 말끔히 끊어내는 것도 ‘최순실 게이트’가 안긴 과제이다. 세금도 모자라 국민연금까지. 국민은 언제까지 ‘봉’이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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