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피해자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기부금을 출연한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그들이 피해자라는 주장하는 이유는 청와대에서 요청해 어쩔 수 없었으며, 대가성이 없고, 최순실 씨가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처음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한마디’도 안하고, 진실을 외면한 기업들이 자기 변명에 나섰다. 기부에 강제성이 있었다는 실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적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와서 “정권 실세(안종범 당시 수석)가 전경련을 통해 좋은 일에 돈을 내라는데 반대할 수 있는 기업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국민 동정 여론과 검찰 수사를 동시에 의식한 것이지만, 국민의 시선을 차갑기만 하다. 특히 그동안 온갖 거짓말로 국민들을 속여 오다 이제야 청와대 요청 사실을 폭로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관련기업들은 출연금 결정은 적법하게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돈을 낸 기업들 가운데 이사회를 열어 기부금을 내기로 결의한 곳은 KT와 포스코 두 곳 뿐이었다. 정관에 따라 재무위원회를 연 곳 역시 대림산업이 유일했다. 나머지 기업들도 정관에 기부금 처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별도로 이사회 등에서 처리하지 않았을 뿐 적법하게 진행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부 대기업이 감사보고서나 사업보고서에 이에 대한 지출 내역을 기록하지 않아 스스로 ‘적법성’을 부인하는 꼴이 됐다.

대가성이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이익도 없는 곳에 우리나라 기업은 돈 한푼 내지 않기 때문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53개 기업 가운데 지난해 적자로 법인세도 못낸 곳이 12곳이나 된다. 이렇게 적자 기업들도 기부를 한 것이야말로 자의가 아닌 강요를 방증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들도 피해자’라고 말할 수 없다. 대한항공, CJ E&M, 아시아나항공 등이 정말 마지못해, 아니면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했다고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해 이들 53개사의 기부금도 전년에 비해 1500억원 가까이 늘었다. 기업의 기부금이 많아지는 것은 사회 공헌 차원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늘어난 근액의 절반을 미르·K스포츠재단에 주었다. 국민들로부터 얻은 이익을 비선 실세에 상납한 셈이니 기부금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물론 기업들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 시체말로 ‘돈 주고, 뺨 맞는’ 격이 됐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번 정부에서만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다가 최순실과 권력실세들의 비리가 드러나고 있는 지금에 와서야 강제성을 내세우면서 “우리도 억울한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은 비겁하고, 설득력도 없다.

또 하나. 이런 상황이 오면 기업들이 버릇처럼 꺼내는 카드가 있다. 국민 경제이다. 자칫 기부금 사태가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경영에 어려움을 주고 나아가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소리조차 이제 국민들은 믿지 않는다. 국민들은 알고 있다. 정말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국가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직도 정경유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들의 잘못된 인식과 자세, 그것을 마음 놓고 악용하는 썩은 권력층에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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