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검찰 조사를 앞두고 대기업 총수들이 지난 주말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기금 출연과 관련해 대통령이 개입했는지, 그 과정에 대가성은 없었는지 미리 확인해 보자는 차원이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회장, 구본무 LG 회장, 손경식 CJ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인들이 ‘꺼림칙한’ 이유로 검찰에 불려나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했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뇌물죄 적용을 받을 수도 있다.

삼성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204억 원의 출연금을 내 기업들 중 가장 많은 액수를 기록했다. 도대체 그 많은 돈을 급하게 내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삼성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과 재단 설립과 관련해 독대한 7명의 기업 총수 가운데 한 명이다. 검찰에서도 집중 조사했겠지만 많은 국민들은 삼성이 경영권 승계 과정을 도와달라고 요구하며 재단 출연금을 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한복판에 있는 박 대통령의 혐의점을 분명히 밝혀내기 위해서도 이 부분에 대해 엄정한 조사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문제는 언제까지 ‘글로벌 프라이드’를 내세우는 우리 대기업들이 정(政)과 관(官)의 부당한 힘에 눌려 ‘삥’ 뜯기듯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엄청난 돈을 출연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냐. 기업으로서 한점 부끄러움 없는 ‘정도(正道)경영’을 해왔다면 정권의 가당찮은 요구를 거절할 순 없는 것인가. 과거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절 재계 7위의 국제상사가 공중분해 되듯 지금도 권력에 밉보이면 정직한 기업이 한순간에 절단이라도 난단 말인가. 국민은 냉소부터 보낸다. 그동안 늘 그래왔듯 뭔가 말 못할 꿍꿍이, 검은 뒷거래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다. 이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지긋지긋한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미국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시계 제로의 상황이다. 지난 30년간 지구촌을 휩쓴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반세계화, 보호주의 물결이 압도적인 너울을 이룰 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패러다임 시프트의 시대다. 그야말로 신속 대응팀이라도 꾸려야 할 판에 우리는 흔들리는 경제 컨트롤타워 아래서 한가한 낙관론이나 읊조려서야 되겠는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트럼프 당선자의 인프라 투자 확대, 제조업 부흥 등 정책 방향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공약들이 많이 있어 우리 경제에 긍정적 요인도 있다“고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왠지 공허하게만 들린다. 변변한 액션 플랜도 없는 말의 성찬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권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니 함께 어우러져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이제 결연히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지난 기업의 흑역사를 돌아보라.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검찰에 불려가는 꼴은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더럽기 짝이 없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발을 담근 대기업은 모름지기 이번 사태를 마지막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SR(Social Responsibility) 정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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