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데미 시상식 방송화면 캡쳐. ⓒ SR타임스
▲ 아카데미 시상식 방송화면 캡쳐. ⓒ SR타임스

지난달 마지막주 일요일(한국은 다음날인 월요일 오전)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은 남달랐다.

지금까지 아카데미는 작품 그 자체의 가치보다는 미국 우월주의와 애국주의, 인종주의, 미국식 정의와 휴머니즘에 사로잡히거나, 우리의 대종상이 그렇듯 때론 정치적인 선택으로 실망을 안겨주면서 스스로 권위를 잃곤 했다.

이날 역시 ABC 방송 영화평론가인 피터 트래버스는 시상식 직전 올해가 "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대로 너무나‘정치적’이었지만 그 색깔이 달랐다. 이렇게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 목소리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욕하고, 수상자들과 수상작품들이 이에 호응한 적도 없었다.

배우들과 감독들은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과 ‘인종차별주의’를 서슴없이 비난하고 비꼬는 말을 쏟아냈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심사위원들은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영화와 그 작품에서 열연한 흑인과 무슬림들에게 무더기로 상을 안겼다. 지난해 아카데미가 '백인들의 잔치'로 끝나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라는 비판을 완전히 뒤집는 반란이었다.

▲ 아카데미 시상식 방송화면 캡쳐. ⓒ SR타임스
▲ 아카데미 시상식 방송화면 캡쳐. ⓒ SR타임스

이날 트럼프에 대한 비판은 시상식 호스트인 지미 키멜부터 거침없이 입담으로 포문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오스카상에 인종차별적인 얘기가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이제는 사라졌다. 이게 다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다. 정말 놀라운 일들이 많았다”고 비꼬았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케이시 애플렉과 <러빙>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루스 네가 등 배우들은 옷에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파란 리본'을 달았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항의해 소송을 제기하며 법정투쟁까지 불사한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을 지지한다는 뜻이었다. 리본을 달고 레드카펫을 밟은 루스 네가는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그들을 나는 지지한다. 모두 그래야 한다. 그들은 일종의 감시자로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하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 그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세일즈맨>의 무슬림 출신 감독 아쉬가르 파르하디는 아예 시상식에 불참했다. 그는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시상식 불참을) 미국 이민국의 결정에 대한 나의 의사를 표현하는 기회로 삼았다"고 밝혔다.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문라이트’의 흑인배우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와 ‘펜스’의 흑인 여배우 비올라 데이비스가 각각 남·여조연상을 수상한 것도 일종의 메시지였다. 둘의 수상은 유색인종에게 인색한 아카데미에게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는 “나는 무슬림이다. 17년 전 내가 무슬림으로 개종한다고 전화했을 때, 목사인 어머니는 놀라거나 화내지 않으셨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은 성장한다. 종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일침을 놓았다.

▲ 아카데미 시상식 방송화면 캡쳐. ⓒ SR타임스
▲ 아카데미 시상식 방송화면 캡쳐. ⓒ SR타임스

인종차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비올라 데이비스는 수상소감도 늘 인상적이다. 2년 전, 흑인 여배우 최초로 에미상 드라마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그녀는“유색인종을 다른 사람과 구분 짓는 단 한 가지는 기회뿐”이란 유명한 소감을 남겼다. 그런 그녀가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배우로서 자신의 역할과 의미를 진솔하게 고백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지만, 결국 한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바로 묘지이지요. 사람들은 저에게 묻곤 했지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니, 비올라? 나는 그들을 다시 살려내고 싶었어요. 큰 꿈을 가지고 살았지만 실현하지 못한 사람들, 사랑에 빠졌지만 이루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 말이에요.”

이렇게 올해 아카데미는 트럼프를 비판하며, 트럼프 때문에 한 마음이 됐다. 그것도 아카데미가 끝없이 오해와 비판을 받았던 인종과 종교의 차별을 뛰어넘는 곳으로. 배우들은 영화로만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때론 이렇게 현실의 무대에서 멋진 몸짓이나 말 한마디로 세상을 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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