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맹목적 탐욕으로 얼룩진 비극의 역사를 헤집는 통렬한 플래시백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비트', '태양은 없다', '감기',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은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군사반란 실화를 모티브로 인물과 사건을 상상의 영역에서 재창작해 영화 ‘서울의 봄’을 선보인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18년간 권좌에 있던 대통령이 돌연 살해된다. 그날 서울 육군본부 벙커에는 대한민국 국방을 책임지던 장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비상국무회의가 시작되고 최한규 국무총리(정동환)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나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계엄사령관인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이성민)은 굳은 표정으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전두광 보안사령관(황정민)을 호명한다. 은밀하게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꾸려나가며 자신만의 세력을 키우고 있던 전두광. 그가 모반의 날개를 다는 순간이었다. 

전두광은 10.26 사건 이틀 후인 28일 TV를 통해 중간 수사 보고를 하며 국민 앞에 처음으로 날카롭고 매서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곁에는 항상 절대적 충성을 맹세한 부하들이 무리를 지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때때로 전두광은 우리가 깡패냐며 흥분한 부하들을 어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 모습은 조직폭력배들과 진배없다.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정상호 총장은 권력의 빈자리를 노리고 활개 치는 그런 전두광을 좌시하지 않는다. 하루빨리 전두광을 견제할 대항마를 찾아내야 했다. 곧바로 그는 전두광의 목줄을 쥘 요직인 수도경비사령관에 이태신 소장(정우성)을 낙점한다. 

이태신 소장은 육사 출신인 전두광의 하나회 무리와는 하극상 사건으로 척을 지고 있는 꼿꼿한 비육사 갑종 장성이었다. 그 역시 정상호 총장과 마찬가지로 참 군인은 정치판에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 이태신 소장은 정상호 총장의 간곡한 부탁과 설득에 마지못해 수도경비사령관 자리를 수락한다.

한편, 전두광 무리는 눈엣가시 같은 이태신 소장이 수경사령관에 오르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더구나 정상호 총장이 전두광과 그의 동기인 노태건 9사단장(박해준)을 한직으로 좌천시켜 하나회를 군에서 완전히 축출하려 하자 구석에 몰린 생쥐들처럼 전전긍긍한다. 

결국, 전두광은 수족이 다 잘린 채 군복을 벗느니 차라리 권력을 쥐기로 마음먹고는 지지세력을 모두 불러모아 비밀회동을 갖고 ‘생일잔치’ 작전을 계획한다.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2월 12일, 전두광이 이끄는 신군부는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에게 대통령 살해 공모 누명을 씌워 납치하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에 이태신 수경사령관을 중심으로 김준엽 육군본부 헌병감(김성균), 공수혁 특전사령관(정만식) 등 진압군 세력은 전두광과 하나회의 군사반란을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12.12 군사반란은 제주도를 제외한 ‘부분 계엄’이 결정된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군 통제권을 사실상 오국상 국방부 장관(김의성)에게 일임하면서 군과 계엄사령부에 지나치게 많은 권력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맹목적 권력욕에 취한 전두광은 비상계엄 상황을 이용해 중앙정보부를 비롯해 검찰, 경찰을 모두 손에 움켜쥐고 국가정보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영화에서는 전두광의 신군부가 쿠데타 당일 군의 주요 통신을 감청해 진압군이 내부로부터 무너지게끔 치밀한 정보전과 심리전을 펼치는 모습을 담았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죄의식 없는 권력 찬탈의 집단적 광기가 서울을 뒤덮었던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은 9시간 동안 국가기능을 멈춘다. 

일개 사조직일 뿐인 하나회가 권력욕에 사로잡혀 북한과 대치 중인 최전방 병력을 미군 동의 없이 빼돌려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린 부분도 스크린에 재현해 공분을 산다. 

영화 ‘서울의 봄’은 신군부가 자행한 반국가 범죄행위를 재조명해 고발하는 영화다. 국가와 국민을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 속으로 몰아넣으려 했던 국가반역 행위가 벌어졌었음에도 철저하게 오랜 세월 동안 은폐되었던 과거가 김성수 감독의 연출을 통해 영화로는 최초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김성수 감독이 12.12 군사반란 실화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극적 장면들의 몰입감은 뛰어나다. 그 몰입감에 비례해 답답함과 강한 분노의 감정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가장 관객의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는 역할은 반란의 주범인 전두광과 노태건일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속을 뒤집어 놓는 감정유발자들은 관객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오국상 국방부 장관의 언행과 신군부에 유화책을 펼치는 민성배 육군참모차장(유성주)의 우유부단함이다. 진압 성공의 결정적 순간들이 매번 그들의 졸렬함에 난도질당해 끌어 내려지는 부분에서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훗날 이 불행의 연쇄반응은 멈추지 않고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낳게 된다.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에는 이태신과 전두광의 복도 대면, 전두광 비밀회동, 최후의 대치, 전두광의 화장실 신 등 황정민과 정우성 배우의 강렬한 연기로 꽉 채워진 하이라이트 명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전차를 몰고 가서 박살 내버리겠다”는 김기현 배우의 강력한 일갈 연기로 유명한 ‘장포스’ 장면도 재현됐다. 정우성 배우는 이 장면을 차분하고 무거운 톤의 대사로 소화한다. 

전두광 역의 황정민은 극의 기승전결의 주요 포인트마다 깡패 우두머리처럼 헤집고 다니며 사나운 연기를 펼친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과거 유행했던 '신세계' 대사 밈 수준으로 귀에 착 붙는다.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구멍 없는 연기도 극의 재미를 더 한다. 등장시간이 짧아도 각자의 단단한 개성으로 한 명도 빠짐없이 제대로 된 1인분 연기를 해낸다. 관객이 영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복잡한 상황을 브리핑하듯 설명하는 그래픽 연출도 장점이다. 

영화는 진압군과 반란군 간의 엎치락뒤치락 반전 연출에 많은 자원을 투입해 공을 들였다. 극적 긴장감은 두텁게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태신과 전두광의 숨 막히는 공방전 끝에 벌어지는 최후 대치 장면에서 영화는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다. 러닝타임 2시간 21분이 오히려 짧다고 느껴질 만큼 마지막까지 극의 호흡과 서스펜스 설계에는 빈틈이 없다.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역사의 통렬한 플래시백을 담고 있는 이 영화은 엄혹한 현실 그대로의 서사적 봉합으로 마무리한다. 전쟁의 역사에는 슈퍼히어로 서사와 같은 권선징악이 없다. 패자의 흔적은 말살되고 승자의 기록만이 정의로 남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신군부의 쿠데타는 비록 성공했지만, 승리가 아닌 비극의 역사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반란군 진압에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2.12 군사반란에 대해 1995년 7월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화 도입부에서 전두광은 세상을 바꾸려고 대통령을 죽였다는 중앙정보부장에게 “세상은 그대로야”라고 말한다. 영화 ‘서울의 봄’은 마지막 스크린 위의 신군부 단체 사진을 보면서 44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연 변했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서울의 봄'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목: 서울의 봄 (12.12: THE DAY)

감독: 김성수

출연: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외

특별출연: 정만식, 정해인, 이준혁

제공/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기획/제작: 김원국

러닝타임: 141분

상영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3년 11월 22일

스크린 리뷰 평점: 8.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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