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 전두광, 이태신 있어...어떤 자아 발현될지 몰라”

“김성수 감독은 스승, 형, 동료...배우를 넘어 영화인 될 동기부여 해준 존재”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비트', '태양은 없다'에서는 청춘의 아이콘으로 '무사'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신의 한 수', '강철비'에서는 액션 배우로 그리고 '내 머리 속의 지우개', '호우시절'에서는 로맨스 영화의 남주로 각인되어온 배우 정우성. 그는 이외에도 '아수라'에서는 비리 형사, '증인'에서는 자폐 소녀와의 진심 어린 동행을 하는 변호사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개봉 10일 만에 300만 관객을 넘어선 김성수 감독의 화제작 ‘서울의 봄’에서는 전두광 신군부에 맞선 진압군의 핵심 인물 이태신으로 분해 신념과 책임감의 군인정신에 투철한 인물로 열연을 펼친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정우성 배우를 만나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태신 캐릭터 해석과 구축에 중점을 두신 부분에 관해 말씀 부탁드린다.

감독님이 처음 저에게 자료 참고하라고 보내준 영상들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할 때 뉴스 인터뷰였어요. 저한테 뭘 바라시는 거지 했는데 그 인터뷰에 임하는 자세를 원하신 것 같더라고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답을 해야 하죠. 강요돼서도 안 되고 단어 선택도 굉장히 신중해야 합니다. 이태신이 12.12사태를 대하는 자세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말씀 주신 것 같았습니다. 

전두광 패거리가 불이라면 이태신은 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저쪽은 사심으로  감정의 폭주를 하고 있을 때 이테신은 좀 더 이성적으로 사태를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태신에게 접근했습니다.

Q. 관객들이 이태신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리 모두에게는 전두광이 있을 수 있고 우유부단한 장군들도 있을 수 있고 이태신처럼 자기 직무에 충실한 소신 있는 우리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자아가 발현될지는 몰라요. 

말이 정해져 있는 사건이고 자기 본분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이태신을 우리와 일맥상통하는 감정으로 바라봐 주시기 때문에 더 응원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군복을 입고 있는 저 사람 이 할 수 있는 정당한 선택에 대한 응원의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는 것 같아요.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Q.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연기했는데 주안점이 있다면.

전두광 같은 경우에는 실존 인물의 특징을 분장으로 덧입혔죠. 황정민 배우의 고민과 해석 그리고 감독님과의 긴 논의로 만들어진 캐릭터죠. 처음에는 감독님도 불과 불의 뜨거운 대립을 상상하시다가 불과 물의 싸움이 돼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더 차분하고 신중해지려는 자세로 연기했고 확신을 가지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완성이 됐을 때 어떤 모습으로 전달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불확실했습니다. 이태신 만큼 불확실한 캐릭터는 없었던 것 같네요. 늘 매 순간 내가 지금 잘 한 건가 했죠. 

사실 늘 궁지에 몰리는 답답한 상황이죠. 맨날 전화로 “와 주셔야 됩니다! 이기든 지든 그게 군인 본분 아닙니까!”하고 ‘앵벌이’하잖아요. (웃음) 

지금 수행하고 있는 직무에 맞는 타당한 결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이태신으로 만들려고 노력 했죠. 답답하고 궁지에 몰린 심정을 감정적으로 표출하지 않기 위해 자꾸 되새기고 안으로 집어넣고 극복해내려고 하는 감정들이 있어요. 그게 연기 후에 뭔가 해치운 느낌이 아니라 답답한 감정이 계속해서 유지가 되니까 잘한 건가하는 질문을 스스로 계속하게 된 상황이 됐던 것 같아요. 결국 연기할 때는 상대가 이태신을 봤나가 중요하거든요.

황정민 배우와 붙는 몇 신이 몇 번 없어요. 복도에서 마주치는 장면 리허설할 때는 뭔가 형 표정에서 지금 이태신을 봤구나하는 걸 느낀 거죠. 그런 것에서 스스로에게 계속 확신의 기운을 얻는 거죠.

Q. 김성수 감독님이 바리케이트 넘어가는 장면에 대해 상징성을 가진 장면이라고 하셨다. 연기 포인트는 무엇이었나.

“야 다리 길잖아”라고 하시면서 제게는 정우성이 키 커서 만든 신이라고 하셨거든요. (웃음) 

인간은 각자 소신들이 다 있잖아요. 이태신은 바리케이트가 몇 개 있든 가고자 하는 길이면 그냥 가는 사람이죠. 그게 형성화된 장면이고 감독님이 이태신을 상징하는 신이라 말씀하신거죠.

Q. 대사에 신경 많이 썼을 것 같다. 

감정이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장면을 촬영할 때 감독님이 진짜 옆에서 계속 말씀하시길래 “제발 저리 좀 가세요”하고 소리 지를 뻔했어요. (웃음) 

정말 감독님이 많은 얘기를 했죠. 끝까지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게 이태신의 완성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Q. 배우들과 연기하면서 놀랐던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정민이 형이 놀라웠죠. 징글징글하더라고요. 진짜 타 죽을 뻔했어요. 부럽기도 했고 배우가 의상을 입는 순간 얻어지는 기운이 있거든요. 정민이 형은 분장의 기운까지 도와주는구나 했죠.

대립각에 있는 인물이라서 자꾸 시선 마주치고 기싸움하는 게 부담되거든요. 그래도 더 많이 보고 계속 관찰했던 것 같아요. 저렇게 연기하니까 이태신은 이렇게 해야지하고 분석적으로 본 게 아니라 그냥 전두광이구나 하고 봤어요. 결국 답은 저렇게 감정의 폭주를 하는 사람한테는 감정적인 이태신이면 안 되겠구나 했어요.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Q. 캐릭터들의 연기가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다.

정말 자신 있게 얘기하는데요. 김성수라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너무 잘 한 거예요. 톤앤매너에 누구 하나가 맞지않다면 좋은 협주가 될 수 없거든요. 위험 요소가 많은데 감독님이 모든 배우들에 대해 엄청난 관찰을 하고 접점을 찾고 그 접점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서 미팅을 진짜 몇 시간씩 하셨던 것 같아요.

Q. 김성수 감독님과는 다섯 번째 작업이다. 서로의 성장 과정을 봐왔을 것 같다. 집요한 디렉팅이 특징이신데 이번에 함께 작업했을 때는 어땠나.

감독님은 저의 성장을 봤죠. 저는 감독님의 노화를 봤습니다. 제 젊은 시절에 감독님은 어쨌든 아저씨였으니까요. (웃음) 

감독님은 변함없이 늘 공부하세요. 본인의 연출부 출신 감독을 내 연출부의 누구였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로 봅니다. 그가 생각하는 영화관은 뭐지?하고 궁금해하시고 배우려고 하시죠. 20대 배우였던 저도 그렇게 대해주셨고 영화적 동료로 성장시켜 주신거죠.

하지만 현장에서는 죽이고 싶을 때도 많아요. 아수라 때 감독님이 뛰어다니다가 발목이 부러졌을 때 좋아서 박수치면서 웃은 사람이 저예요. (웃음) 

Q.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이태신 역을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헌트’ 직후였는데 캐릭터가 다르고 담고자 하는 관점도 다르긴 하지만 김정도나 이태신이나 어떤 동일 인물을 대척점에 두고 있다는 피상적인 형태가 있잖아요.

이태신이라는 인물에게는 하나의 허들이 돼 불리할 수 있고 대한민국에 좋은 배우 많으니까 다른 배우 찾으시라 했더니 “알았어! 엎을게!” 이러시더라고요. 협박에 넘어갔습니다. (웃음) 집요하게 설득하시라고 일부러 밀당을 좀 했습니다. 어쨌든 불리함을 안겨드리고 싶지는 않았죠.

Q. 감독님이 부부 싸움한 것 같이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찍었다고 하셨다.

제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계속 얘기를 하시니까 대구를 안 했죠. 제가 계속 거리를 유지하니까 감독님은 삐졌다고 하셨을 겁니다. 사실 감독님 이야기를 한마디도 외면할 수 없었던 캐릭터가 이태신입니다. 

집요함과 성실함에 있어서 감독님은 최고죠. 지치지 않아요. 감독님은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셨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총량을 다 쓰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 분이죠.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Q. 감독님은 정우성처럼 이상하게 생긴 사람은 자신의 페르소나가 절대 아니라고 하셨다. 

잘 생긴 게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웃음) 감독님에게 제일 미남 배우는 정만식입니다. 이해가 되니까요. 페르소나라는 건 영광이죠. 20대 시절 유연하지 못한 젊은 친구를 영화적 동료로 받아주시고 계속해서 작품을 하실 때 첫 번째 배우라고 생각해 주시고 말씀해 주시기에 저도 감사드립니다. 김성수 감독님이 앞으로 몇 작품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더 많이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Q. 김성수 감독은 배우 정우성에게 어떤 존재인가.

스승이기도 하고 형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배우를 뛰어넘어 영화인이 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주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님을 누구보다 가장 응원합니다.

Q. 정우성의 이태신과 ‘제5공화국’ 김기현 배우의 캐릭터는 톤앤매너가 다르기에 관심을 받고 있다. 

저도 어린 시절에 잠깐 본 이미지들만 있어요. 김기현 배우님께서는 아마 불과 불의 대결처럼 연기를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전혀 다른 톤앤매너의 이태신이라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김기현 배우님께서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Q. 정우성의 인생 연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부담됩니다. 빨리 떨쳐내야죠. 예전에 ‘비트’ 때도 청춘의 아이콘이라 할때 제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과 똑같아요. 이태신 같은 캐릭터들을 관객분들이 마음속에 담으시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 캐릭터와 동일하게 관객분들에게 계속해서 남아 있을 수는 없어요. 새로운 캐릭터를  해야하고 찾아가야하죠. 각인되는 캐릭터가 크면 클수록 그걸 뛰어넘기는 어려우니까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어려운 싸움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해요.

Q. 감정을 억누르고 연기하셨다고 했지만, 전두광의 화장실 신과 대비되는 이태신 장군의 후반 장면에서는 분노를 느끼지 않았나. 

그 신은 좀 길게 찍었어요. 전두광과 대면했을 때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려고 했죠. 그 장면에서도 이태신은 본분을 잃지 않았어요. 편집을 해 오열하는 장면은 안 보여드리는데 그 장면도 다시 지금 생각해 보면 감독님이 그만큼 이태신은 본분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으로 계속해서 남겨주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냥 혼자 패배감과 상실감에 울분을 터뜨리는 울음이 아니라 총장님께 죄송한 상황인거죠.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서울의 봄' 정우성 배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Q. 올해 카메오 출연도 많이 했고 오랜만에 멜로 드라마로 복귀한다.

카메오는 마음이 약해서 거절을 못한 것 같아요. 출연했던 작품들이 다 저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인데 잘못 출연하면 본편의 톤앤매너를 훼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조심스러웠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질투 많은 감독님들은 그런 걸 알면 화도 내거든요. 김성수 감독님처럼 “‘서울의 봄’ 촬영하시면서 그걸 하신건가요? 훌륭하게 잘 봤습니다. 연기 좋았습니다”라고 하시죠. (웃음)

앞으로 (거절할) 정확한 명분은 생겼죠. 더 이상 카메오는 나에게 부탁하지 마라! 

Q. 이번에 새로운 멜로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촬영했다.

잘 돼야 합니다. 거의 13년 정도 된 인연이 긴 작품입니다. 그 시대에는 청각장애를 가진 남자 주인공으로 드라마를 하기 힘들었죠. 목소리 연기로 채워줘야 하니까요. 굉장히 운 좋게 이 시대 시청자분들이 그런 역할도 받아들여 주시는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Q. ‘서울의 봄’ 같은 시나리오나 기획이 있다면 직접 감독 연출할 의향이 있나.

시대물이고 역사성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시나리오가 중요하죠. 어떤 의미를 가지고 뭔가 선택한다면 그건 결과적으로는 안 좋더라고요. 의미가 앞장서기 때문에 개인적 의미는 뒤로 제쳐놓고 어떻게 잘 표현해서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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