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일상 서사의 재미를 쾌락적 소모로 끝맺음하지 않음에 감탄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더 많은 관객을 만나야 한다는 사명을 지닌 수많은 영화가 이 순간에도 그럴싸한 나름의 서사를 제시하며 영화관에 걸린다. 매우 평범한 일상의 편린들을 모으고 조립해 관객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꽤 녹록지 않은 작업이다. 

영화는 영화관을 찾은 관객에게 제대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관객의 이목을 끌기 위한 극적 모멘트를 강박적으로 내재하려 한다. 일상을 찍어 스크린에 비춰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밋밋함 위에 특별함을 덧칠하기 마련이다. 색 농도를 맞추지 못하면 예외 없이 관객은 서사에 흥미를 잃고 외면한다.

이정홍 감독의 ‘괴인’은 기묘한 감칠맛이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제대로 된 색을 입힌 잘 빠진 영화다.

▲'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목수 기홍(박기홍)은 살갑거나 호감 가는 인물이 아니다. 자신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친구 경준(최경준)을 포함해 자기 밑에서 일하는 이들을 홀대한다. 소통이 부재한 명령투성이 말투가 섞인 안하무인의 태도는 특히나 소심한 경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술자리에서 이어지는 기홍의 스몰토크 안에는 유치하고 자기중심적인 허세가 빼곡하다. 그에겐 사근사근한 인간관계도 안정적 수입도 근사한 집도 없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혀 어떻게든 감추고 자신을 잘 포장해보려고 애쓰지만,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결핍을 모두 가릴 수는 없었다.

▲'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기홍은 피아노 학원 인테리어 공사를 해준 아영(이소정)에게 조금씩 사적인 관심을 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의도가 어떠하든 아영은 관계의 벽을 자꾸 두드리는 기홍이 달갑지 않다. 이 관계의 불편함이 역으로 기홍에게도 벌어진다. 그다지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집주인 정환(안주민)의 기웃거림은 조금씩 기홍의 내적 영역을 침범하려 든다. 

한편 기홍은 차 지붕이 찌그러진 것을 우연히 발견한다. 정환과 그의 아내 현정(전길)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기억을 곱씹다가 얼마 전 피아노 학원 근처에 주차해놨을 때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고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에 반해 삶이 무료했던 정환은 그저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아이처럼 이 사건에 끼어든다. 

▲'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이 영화는 시작점에서부터 사소하고 모호해 보이는 하나의 의문을 일부러 누락시킨다. 그리고 기홍의 되새김으로 그 의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이 흥미로운 미스터리는 의식의 흐름처럼 가지치기를 해나간다. 작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고 물 위의 나뭇잎처럼 기흥은 그사이를 떠돌아다니며 경준, 아영, 정환, 현정 그리고 또 다른 부유의 존재 하나(이기쁨)와 단계적으로 열리고 닫히는 인간관계를 이어나간다. 

마치 정환이 설명한 집의 콘셉트처럼 분리와 연결을 반복하는 인간과 인간의 일상의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스크린을 응시하는 내내 이 흥미로운 긴장감의 지점들이 느슨하지도 조밀하지도 않게 차곡차곡 층을 이뤄간다.

▲'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괴인' 스틸. ⓒ영화사 진진

어쩌면 누구보다 고단한 삶의 극복자일지도 모를 기홍이 결국 가장 마음 통하는 현정과 함께 화면 밖으로 사라졌을 때 관객의 마음속에는 수군거림이 일렁인다. 이 지점에서 대단한 점은 쌓아 올린 서사의 재미를 여느 영화들처럼 쾌락적인 소동으로 소모해 끝맺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없는 드라마는 평범함이라는 군더더기가 없는 공감의 감정선을 갖추고 있다. 그저 착실하게 궁금증이라는 방향성만을 제시해 관객이 결론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충분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만나봐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

▲'괴인' 포스터. ⓒ영화사 진진
▲'괴인'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목: 괴인 (a Wild Roomer)

제작: 영화 '괴인' 제작위원회

제공: 다림질스튜디오

투자/배급: 영화사 진진

감독: 이정홍

출연: 박기홍, 최경준, 이소정, 안주민, 이기쁨, 전길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36분

개봉일: 2023년 11월 8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스크린리뷰 평점: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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