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 최고의 건축물인 서울 총독부건물은 철거하고 목포의 목조 적산가옥은 문화재 지정 

- 한식 온돌로 개조된 일제 목조 적산가옥들을 대거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

-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국가가 혈세로 개발 보조금 지원...재산세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

[SR(에스알)타임스 우태영 편집위원] 우리나라에서 골동품 거래의 중심지 중의 한 곳이 서울 인사동 골목이다. 요즘 목포 투기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손혜원 의원은 인사동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손 의원은 친하게 지내는 문화예술인들에게도 목포에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곳에 집을 사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물론 그 지역이 등록문화재인 ‘근대역사문화 공간’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 의원의 권유대로 목포의 일제 적산가옥을 사들인 문화인들은 별로 없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문화인들이 목포의 적산가옥들이 문화재적인 보존가치가 전혀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사실 일제강점기 시절의 건축물 가운데 최고의 작품은 김영삼 대통령이 헐어버린 서울의 총독부 건물이다. 해방 후 중앙청, 국립박물관 등으로 사용되었다. 일제는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이 석조 건물을 지었다.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제 잔재을 청산한다는 이유로 철거하였다. 중앙청 건물 철거에는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근대 건축 걸작으로서의 문화재인 이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철거한 그 조선총독부 건물
▲김영삼 전 대통령이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철거한 그 조선총독부 건물

일제시대 최고의 석조건물을 철거한 나라에서 한옥집도 아닌 거무튀튀한 목조로 된 일제 적산가옥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상식에 맞지 않는 일로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적산가옥이라면 목포 아니더라도 서울의 강북 구도심이나 광주 등 대도시에 아직 얼마든지 남아 있다. 

 

그런데 지난 해 8월8일 문화인들의 눈에는 도저히 문화재로 보이지 않던 일제 적산가옥들이 곳곳에 있는 거리가 통째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일제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던 중앙청도 일제의 잔재라며 한칼에 부수어버린 나라에서 쓰러져 가는 일제의 목조 적산가옥들이 있는 거리를 통째로 등록 문화재로 지정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반인들은 거의 모르는 사이에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문화재청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등록문화재 지정 고시ⓒ문화재청
▲문화재청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등록문화재 지정 고시ⓒ문화재청

이전에도 등록문화재가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단일한 건물들이었으며 누가 보더라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인정되는 것들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그 가치를 금방 알 수 있다. 등록문화재 1호는 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구 한전사옥, 2호는 경기고, 3호는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그리고 구 대구사범학교 건물,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등 누가 보더라도 보존가치가 있는 시설물들이다.

▲등록문화재 1호 서울의 구 한전사옥
▲등록문화재 1호 서울의 구 한전사옥

 

▲등록문화재 3호 서울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등록문화재 3호 서울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등록문화재 구 대구사범 본관
▲등록문화재 구 대구사범 본관
▲등록문화재 전북 진안성당 어은공소
▲등록문화재 전북 진안성당 어은공소

 

그런데 지난 해 8월에는 단일 건물이 아니라 넓다란 면적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당시 문화재청이 발표한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근대문화유산의 입체적‧맥락적 보존과 활용을 통한 도시 재생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선(線)‧면(面)’ 단위 문화재 등록제도를 새로 도입하고, 처음으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3곳을 문화재로 등록 고시하였다.

새로 도입된 ‘선(線)‧면(面)’ 단위 문화재 등록제도는 기존 ‘점’(點) 단위 개별 문화재 중심의 단선적‧평면적 보존관리에 따른 정책의 연계성‧통합성 결여, 가치 활용도 제약 등의 한계를 극복하고, 근대문화유산이 도시재생의 핵심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그 제도적 장점과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등록문화재 제도의 특징으로 “원형보존, 진정성 유지 등을 근간으로 하는 지정문화재 제도보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설정 배제 등 규제는 최소화고 활용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규제는 최소화하고 황용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말은 상업용 부동산으로의 개발을 권장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문화재청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문화재청

이번에 논란을 키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한 문화재청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만호동‧유달동 일원/114,038㎡)」은 1897년 개항 이후 목포가 격자형 도로망에 의해 근대적 계획도시로 변모해 가는 과정과 당시의 생활상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심지역이다. 이 공간 내에는 조선 시대 목포의 시작을 알리는 ‘목포진지’를 비롯해 ‘구 목포 일본영사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구 목포공립심상소학교’ 등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근대건축 유산 등이 자리 잡고 있어 보존‧활용 가치가 높은 곳이다.

또한, 공간 내의 ‘구 목포화신연쇄점’, ‘구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 ‘구 목포부립병원 관사’ 등 근대도시 경관과 주거 건축사, 생활사 등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15건은 별도의 문화재로 등록하였다.”

그런데 당시 문화재청이 고시한 근대역사문화공간 3곳 가운데 일제의 적산가옥들을 대거 등록문화재로 대거 지정한 곳은 목포뿐인 듯하다.

▲등록문화재 제718-1호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 - 1ⓒ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18-1호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 - 1ⓒ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718-1호로 지정한 목포 번화로 ‘일본식가옥-1’에 대한 문화재청의 지정사유는 다음과 같다.

“1920년 목포에서 설립되어 일제강점기 농업 및 임업, 개간 및 정지의 임대차 업무를 취급하였던 후쿠다농업주식회사(福田農業株式會社)의 사택이며 1935년 건축된 지상 2층 일식주택으로 바로 옆 대지의 1층(목포 번화로 일본식가옥-2) 일식주택과 함께 일제강점기 목포 심상소학교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주변에 형성되었던 일본인 주거지의 흔적을 보여주는 공간 요소이며, 광복 후 한국인이 거주하며 온돌설치, 내부를 변경한 내용도 한국 주거건축사에서 중요한 사료로 활용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의 설명에도 나와 있지만 내부에는 해방 후 한국 사람들이 살면서 한식온돌을 깔았다. 적산가옥에 다다미를 뜯어내고 온돌을 깐 집이 건축사에서 뭐 그리 중요한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 적산가옥이라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달라진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 지정문화재와 달리 외관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 내부 수리가 허용된다. 또 건물의 적극적인 활용을 촉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건축기준을 완화해 준다. 이에 더해 수리할 때 정부가 혈세로 보조금도 지원한다. 다 쓰러져 가는 일제 적산가옥을 카페로 개축하는데에도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적산가옥 집주인 입장에서는 손도 안 대고 코 푼다는 말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손혜원 랜드’에 들어가는 예산이 1천억 원이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걷은 혈세를 들여 등록문화재를 카페로 고쳐주고, 도로도 깔아준다. 나라에서 땅값, 집값 다 올려주고 손님들까지 불러준다. 더구나 세제 혜택도 있다. 재산세가 50% 감면되고, 양도세, 증여세, 상속세 등이 크게 감면된다.

뿐만 아니라 주택보유에서도 제외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등록문화재는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다주택보유자로 분류되어 세금폭탄을 맞을 일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집 주인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노나는 투자가 된다.

한 문화인은 손 의원의 권유를 받고도 목포 해당지역의 적산가옥을 사들이지 않은 일을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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