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롯데그룹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 제도 도입

"사외이사가 미등기 임원 견제 쉽지않아"

[SRT(에스알 타임스) 유수환 기자] 롯데그룹이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해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사내이사 위주로 이사회가 운영된 관행을 깨고 사외이사 권한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논란의 여지는 있다. 그동안 사외이사가 주주가치 제고나 견제 감시 보다는 오너 일가에 편향적인 행보를 보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롯데그룹 오너인 신동빈 회장이 여전히 다수 계열사의 미등기임원으로 있는 만큼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제도가 취지대로 작동될 지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등기 임원은 등기이사와 달리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다. 법인 등기부등본에도 등록돼 있지 않지만 명예회장·대표로 불리며 그룹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면서도 등기이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따라서 법적 구조상 주주총회에 선임되지 않는 미등기 임원을 이사회가 견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여기에 더해 금융권에서도 이같은 제도를 도입했으나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활동한 사외이사 가운데 지난해 이사회에서 결의된 162건의 안건 중 반대표를 행사한 경우는 '전무'했다. 

롯데그룹은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제도를 비상장사인 롯데GRS와 대홍기획에 먼저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외이사 의장은 사내이사 의장과 동일하게 이사회를 소집하고 진행을 주관할 수 있고, 대표이사의 경영활동 전반을 견제·감독할 수 있다. 롯데그룹은 사외이사 의장 제도를 앞으로 상장사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롯데그룹은 롯데지주, 롯데웰푸드, 롯데쇼핑, 롯데케미칼, 롯데렌탈, 롯데칠성, 롯데하이마트, 롯데정밀화학, 롯데정보통신, LEM 등 10개 상장사에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한다.

이 제도는 사내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경우 사외이사를 대표하는 선임 사외이사를 임명해 균형·견제를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선임 사외이사는 사외이사회를 단독 소집할 수 있으며, 경영진에 현안보고를 요구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등 중재자 역할을 맡는다. 그동안 금융권만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의무화해 왔다. 롯데그룹은 선제적으로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상장 계열사에 도입할 예정이다. 

다만 이같은 제도 도입이 기업 거버넌스 투명화에 기여할 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달린다.

사외이사는 대주주 견제·감시를 위한 제도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독단적 오너 경영의 부작용이 드러나자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1998년 2월 도입됐다. 

하지만 국내 상장기업에서 감시와 견제를 담당하는 사외이사의 역할은 극히 드물었다. 되레 정치권이나 고위공무원들의 재취업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30대 그룹 소속 상장기업 사외이사의 경력별 분포를 보면, 감독기관(국세청, 금융감독원, 공정위원회, 감사원, 금융위원회), 사법기관(검찰, 법원), 장·차관·청와대 등 소위 3대 권력기관 출신 비중이 지난 2016년 정기주주총회 때 31.8%, 2019년 30.2%, 2020년 27.9% 등으로 여전히 일부 분야로 집중되고 있다. 

주주총회에서도 사외이사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 데이터 연구소인 CEO스코어는 이달 13일 국내 500대 기업(매출 기준) 주주총회소집공고 보고서를 제출한 181곳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100%인 기업은 163곳(90.1%)에 달했다. 국내 기업 사외이사 대부분이 주주를 대신해 독립적으로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지표로 풀이된다.

오너 일가의 견제 감시는 커녕 방패막이 도구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윤식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과 국찬표 전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사외이사 독립성의 중요성’이라는 논문에서 “현실에서는 사외이사 비율의 증가에 대한 의구심 또는 회의적인 비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비판은 단순히 사외이사 수를 늘리는 것은 눈속임(window dressing)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라며 “내부자 또는 최고경영자가 법률상의 독립성 정의에 부합하지만 실제로는 경영진과 친분이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신동빈 회장이 미등기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천문학적 연봉'을 받아가는 것도 모순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총수일가가 등기임원으로서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미등기 임원으로서 권한만 누리는 회사가 여전히 많다”며 “제도적 장치의 실질적 작동 측면에서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크다”고 평가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하는 경우는 기존 금융지주에 이미 도입된 제도"라며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을 참석했을 때는 공식석상에서 부딪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상 사외이사가 미등기 임원을 견제하기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롯데그룹 관계자는 "좋은 취지에서 자발적으로 제도 도입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주주 행동주의 흐름이 거세지면서 사외이사가 오너 일가에 끌려다니진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주주 행동주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외이사가 쉽게 오너일가에 편승되는 분위기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며 “롯데그룹이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 시도는 기업 투명성에 있어서 표면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