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덕희'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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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연출과 연기력으로 일궈낸 가독성 높은 소시민 영웅 서사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경찰청은 지난해 7월까지 악성사기 척결을 위한 종합대책을 추진해 총 3만1,142건의 사기사건에 연루된 3만9,777명을 검거하고 그중 2,990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전세 사기, 보이스피싱 사기, 가상자산 사기, 사이버 사기, 보험 사기 등이 포함된 7대 사기범죄는 단속이 강화될수록 점점 더 악질적이고 지능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민덕희'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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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시민덕희’는 치밀한 수법으로 수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에게 사기를 친 조직원이 구조 요청을 해왔던 거짓말 같은 실화를 모티브로 한 범죄 추적극 ‘시민 덕희’에는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장윤주, 이무생, 안은진이 참여해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절대 고객님에게 돈달라고 요구 안 해요.” 덕희(라미란)는 은행직원 설명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운영하던 세탁소 화재로 아이들과 길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었던 덕희. 그런 상황에서 목돈을 대출해주겠다는 은행직원의 전화가 걸려왔다. 절망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절박한 마음이 앞선 덕희는 직원의 안내에 따라 송금을 시작했다. 그게 사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큰 돈이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어간 후였다. 

▲'시민덕희'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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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피해자를 오히려 조롱하는 현실

뒤늦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경찰서를 찾아간 덕희. 하지만 담당자인 박형사(박병은)는 8번이나 입금하면서 이상하다는 걸 눈치 못챘냐며 오히려 피해자인 덕희를 책망하듯 대한다. 심지어 인생의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하라며 포기를 종용해 덕희의 가슴에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때 덕희에게 사기를 쳤던 보이스피싱 조직원 재민(공명)이 또다시 연락을 해온다. 이번에는 놀랍게도 SOS 요청. 재민은 자신도 피해자이며, 아는 걸  전부 제보할테니 경찰에 신고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그 말에 따라 덕희는 경찰에 협조를 요청한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수사 종결로 재수사를 못 한다는 속 터지는 말뿐. 정 답답하고 억울하면 보이스피싱 조직의 콜센터 주소를 직접 찾아오란다.

▲'시민덕희'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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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X끼 형사 맞아요?” 

경찰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전해 듣자 재민도 분통을 터트린다.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까지 온 그는 협박과 폭행이 난무하는 조직의 비밀 아지트에서 강제로 보이스피싱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철저하게 감시 당하고 있는 재민이 알아낼 수 있었던 보이스피싱 조직의 단서는 중국 칭다오에 있고 건물 밖으로 춘화루 간판이 보인다는 것 뿐이었다. 

세탁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자매 같은 정을 쌓은 조선족 봉림(염혜란)과 아이돌 홈마 숙자(장윤주)는 덕희의 이런 딱한 사정을 전해 듣고는 의기투합, 곧바로 중국 칭다오로 향한다. 과연 덕희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재민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도 포기한 보이스피싱 총책을 찾아낼 수 있을까.

▲'시민덕희'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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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놓은 경찰...피해자가 직접 나선 보이스피싱 수사 실화극

‘시민덕희’의 시놉시스는 얼핏 보면 황당한 내용이다. 사기 피해자가 경찰도 포기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총책을 추적한다는 정말 만화같은 스토리다. 하지만 분명한 실화 기반의 이야기다. 2016년 경기도 화성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던 김성자 씨가 실제로 겪었던 보이스피싱 사건을 모티브로 ‘선희와 슬기’(2019), 단편 ‘1킬로그램’(2015)을 연출했던 박영주 감독이 첫 상업영화에 도전한 작품이다.

▲'시민덕희'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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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덕희’는 소재와 스토리, 감독의 연출, 배우의 연기 어떤 면을 둘러봐도 상업영화로 합격점이다. 평범한 소시민이 피해자로 전락해 법과 사회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이자 스스로 자경단원이 되어 거대 조직에 맞서 싸우는 영웅 서사와 가독성 높은 선명한 연출이 시선을 잡아끈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한 누아르적 폭력 묘사 연출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현실에 근접한 실생활 대사 또한 귀에 쏙쏙 박힌다. 여기에 인물들의 내외를 능숙하게 입체화해내는 라미란, 염혜란, 장윤주 등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민덕희' ⓒ쇼박스
▲'시민덕희' ⓒ쇼박스

특히 라미란은 벼랑 끝에 내몰린 삶, 모성의 가슴 저린 애환 그리고 포기를 모른채 분연히 떨쳐 일어서는 현실 영웅의 모습을 각각 체화해 스크린 속에서 종횡무진 대활약을 펼친다. 이 영화에서 라미란의 연기가 차지하는 지분은 절대적이다.

사이드킥 역할을 맡은 염혜란은 수준급 중국어와 함께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장윤주의 하이텐션 코믹 연기는 지루함 없는 서사 구조와 맞물려 극의 재미를 강화한다. 현실적인 문제에 묶여있는 박형사 캐릭터는 속터지는 답답함과 분노를 유발하며 드라마의 텐션을 상승시키는 감초 역할을 효과적으로 해낸다.

▲'시민덕희'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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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성 갖춘 사회고발물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 ‘보이스’(2021)가 보이스피싱 사기 과정과 수법을 상세히 알려주는 교육적인 영화였다면 ‘시민덕희’는 대한민국 공권력 작동방식의 개선점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사회고발물이다. 

이런 사회고발물은 자칫 메시지 전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영화적 재미가 반감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작품은 그러한 함정을 효과적으로 압축·편집된 연출을 통해 잘 피하고 있다.  

목숨을 건 용기있는 여정의 주인공인 평범한 소시민 덕희를 통해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동시에 관객이 만족할 만한 오락성을 제공하는 것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는 작품이다.

P.S. 영화에서처럼 당시 경찰은 보이스피싱 제보자에게 1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진행했다. 하지만 경찰은 보이스피싱 총책을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실제 인물 김성자 씨의 공로에 대해서는 보도자료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경찰은 보상금마저 미루다가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김성자 씨는 그 돈을 받지 않았다. 현실은 영화보다 씁쓸하다. 

 

▲'시민덕희'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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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민덕희(Citizen of a Kind)

감독: 박영주

출연: 라미란, 공명, 염혜란, 박병은, 장윤주, 이무생, 안은진

제작: 씨제스스튜디오, 페이지원필름

제공/배급: 쇼박스

개봉: 2024년 1월 24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3분

스크린 평점: 7.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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