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울산 현대미포조선소에서 작업하던 40대 근로자 A씨가 6,600볼트 고압변전실에서 홀로 일하다 작업복에 불이 붙어 3도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독자
▲11일 울산 현대미포조선소에서 작업하던 40대 근로자 A씨가 6,600볼트 고압변전실에서 홀로 일하다 작업복에 불이 붙어 3도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독자

- 현장 관계자 "소화기 오작동만 아니었어도 큰 변 안 당했을 것"
- 사측 "2인 1조 작업장이 아니다…소화기는 1년도 안 된 제품"

[SRT(에스알 타임스) 최형호 기자] 경남 울산시 현대미포조선소에서 일하던 근로자 A씨(45)가 6,600볼트 고압변전실에서 나홀로 전류 테스트작업을 하던 중 합선으로 자신의 근무복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9년 각 기업의 현장 내 '안전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강화 대책'을 확정, 위험 작업장에는 2인 1조로 근무하도록 의무화했다. 반면 현대미포조선 측은 6,600볼트 고압선이 흐르는 이 작업장에서 A씨 혼자 일한 것에 대해 큰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14일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1일 오전 11시께 현대미포조선 울산 본사 건조 현장 변전실에서 6,600볼트 고압변전실 홀로 일하다 자신의 몸에 불이 붙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작업실 밖으로 이동했다. 이를 본 다른 근로자가 소화기를 작동하려 했으나 오작동됐다. 또다른 소화기로 A씨의 몸에 붙은 불을 끄려 했으나 작동되지 않았다. 인근에 있던 또다른 근로자의 도움으로 A씨의 몸에 붙은 불을 껐다. 소화기 3대 중 2대가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그 사이 A씨는 다리부터 얼굴까지 여러 곳에 3도 화상을 입었고,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돼 1년에 걸쳐 수차례 수술을 받게 됐다. 첫 수술은 오는 14일 예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있던 한 근로자는 "소화기만 잘 작동됐어도 이렇게까지 큰 변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이날 논평을 내고 "작동하지 않은 소화기는 한국 기업의 안전 실태를 보여주는 참담한 증거"라며 "중공업이 아니라 중대재해공업"이라고 비판했다.

현대중공업 그룹 및 계열사 현장에서는 한달도 안돼 산재사고가 3건 발생했다. 지난달 19일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 작업현장 근로자 추락사에 이어 같은달 24일에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현장에서 50대 근로자가 철판에 끼여 숨지는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이달 11일에는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근로자 화상사고가 터졌다. 

금속노조는 "소화기 같은 기초 안전장비조차 제대로 점검하지 않고 작동하지 않는 것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조선소의 안전 수준"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최고임원을 신설했다느니 안전 투자를 얼마 늘렸느니 얘기가 나오지만 정작 소화기조차 손보지 않은 현장에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현대중공업 그룹 및 계열사들의 현장 사고는 매년 일어나고 있다는 게 심각성을 더한다. 2인 1조로 근무하는 위험 작업장 분류도 까다로워 회사 측이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지난달 24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근로자 철판 끼임 사망사고는 2일 1조가 아닌 근로자 혼자 일하다 변을 당했다. 노조 측은 당시 사고 예방을 위해 회사에 2인 1조 작업을 요청했으나 회사 측이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현대미포조선도 A씨의 사고 현장을 사실상 '위험 작업장'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규정상 위험 작업장에는 2인 1조로 근무하도록 의무화하고 신입직원의 단독 작업도 제한하도록 돼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A씨 사고 현장 작업은 전기 정비 쪽이어서 2인 1조 근무 작업장은 아니다"며 "2인이 필요한 작업장일 경우 2인 1조로 근무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소화기 오작동은) 원인 조사가 진행 중인 단계라서 뭐라 단언할 수 없다"면서도 "우리가 확인해본 결과 소화기는 1년도 안 된 새 제품이 맞고, 소화기 작동 미숙 여부는 추정은 되지만 아직까지 정확이 나온 것은 없다. 불량이 나올 수 있을 확률도 높아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측은 "사측은 언론에 대고 소화기 불량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 작동 미숙 때문이라고 둘러댔다"며 "위험도 책임도 모두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추악한 모습"이라고 힐난했다.

한편 현대중공업 그룹 및 계열사 현장의 사고는 해마다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20년 4건의 근로자 끼임·추락 등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고용노동부로부터 '안전관리 불량 사업장'으로 지정, 특별근로감독을 받은 바 있다. 특별감독은 만 1년 새 한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3건 이상 발생할 경우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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