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배당 유도 지침’ 안건 통과에 주력

[SR타임스 이행종 기자] 국민연금이 이르면 내년 2~3월 주총 시즌에 국내 주요기업의 배당 결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기업의 배당에 있어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배당 수준을 정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이고 국민연금이 관여하는 것은 경영 전략에 간섭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 의결권행사전문委 역할 확대
 
하지만 연금이 줄어들고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이 감소한 상황에서 더 이상 수비형만을 고집해서는 안 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기업의 배당을 요구하는 국민연금의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
 
8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다음달 회의에 ‘국민연금 배당 유도 지침 신설’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이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 역할을 확대해 배당 관련 주주제안을 비롯 적극적인 주주권행사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배당유도 지침 신설’ 내용을 보면 보유한 현금과 영업이익 등과 비교해 적정배당률에 미치지 못한 기업 명단을 외부에 공개하고 이후에도 변화가 없을 경우 배당과 관련해 주주제안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안에 반드시 배당 유도 지침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미 지난 2월 관련 안건이 정족수 미달로 표결에 부쳐지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는 오는 5월 회의에 또 한번 안건을 상정시킬 예정이다.
 
배당 유도 지침이 통과될 경우 이르면 내년부터 국민연금이 국내 주요기업의 배당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써스틴베스트로부터 의결권 자문서비스를 받으면서 예년보다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위한 준비 작업을 마친 상태다.
 
그동안 200개가 넘는 상장사의 주총 안건을 국민연금 내부에서 검토했지만 이를 외부 기관에 맡겨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 수익률 확보 차원 배당 확대 요구 불가피
 
경기 불황이 지속되자 국내 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국내 주식에 투자해서는 예전만큼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서 투자를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은 6%가 채 안 되는 5.25%였다. 이 같은 성적표는 국내 주식 손실이 영향을 미쳤다. 수익률이 –5.43%를 기록하며 4조7545억원의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삼성전자(7.81%), 현대차(7.01%)를 비롯해 268개사다 이 가운데 보유 지분율이 10%를 넘는 기업도 총 57곳이나 된다.
 
특히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기업은 신한지주, KB금융, 하나금융지주, KT, 포스코, 등이다. 하지만 지난해 평균 배당률은 1.4%에 불과하다. 이는 세계배당수익률 평균인 2.5%에도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태광, SK브로드밴드, 대한항공, CJ대한통운 등 37개사는 무배당 업체다.
 
때문에 국민연금이 수익률 확보 차원에서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국내 주식 투자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투자 비중을 줄일 수도 없다”면서 “보유 주식 가치를 높이려면 배당이라도 늘어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 기업들 초긴장
 
국민연금이 ‘배당 유도 지침 신설’ 안건을 이번에 반드시 통과 시킬 것이란 강한 의지를 표명하자 기업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 같은 국민연금의 자세에 대해 기업 측은 한 자릿수 지분율을 들고도 이미 국민연금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며 지난해 삼성그룹이 추진했던 합병이 국민연금의 결정으로 무산된 전례를 들었다.
 
당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이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두 회사의 지분을 5% 정도씩 들고 있던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며 결국 없던 일이 됐다.
 
물론 국민연금이 모든 주총에서 의결권 행사를 한다고 해서 안건이 통과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머지 주주들이 찬성하면 통과됐던 것이다.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가 가진 특성으로 오너가(家)가 보유한 지분이 많은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오너가(家)를 제외한 나머지 기관 투자자들의 표를 모을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국내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표를 모을 목적으로 의결권 행사 내역을 사전 공시했을 때 국민연금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표를 던질 수 있는 기관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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